안철수, 미워하는 마음 아닌 품어주는 마음의 정치 해야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1.13 08:00
  • 호수 1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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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선의 시시비비] 정계에 복귀하는 안철수, 삼세번 도전의 숙제

만약 2017년 대선이 끝난 뒤 안철수 전 대표가 당 대표로 나서지 않고 일선에서 물러나 현재의 정국을 맞았다면 어떠했을까. 그래서 39석의 국민의당이 산산조각 나지 않고 보존되어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진영 대결 구도에 대한 식상함과 회의감이 확산된 지금이라면, 아마도 새로운 정치적 기회를 맞았을 가능성이 크다. 내려놓을 줄 모르는 집착의 정치인 모습이 아니라, 뒤로 물러나 ‘성찰과 채움’의 시간을 충실히 갖고 있었다면 지금쯤은 안 전 대표를 소환하고 싶어 하는 여론도 제법 있었을 것이다.

스탠퍼드대 방문학자 자격으로 미국에 체류 중인 것으로 알려진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2019년 11월3일(현지시간) 뉴욕시티마라톤에 참가해 달리고 있다. ⓒ 연합뉴스
스탠퍼드대 방문학자 자격으로 미국에 체류 중인 것으로 알려진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2019년 11월3일(현지시간) 뉴욕시티마라톤에 참가해 달리고 있다. ⓒ 연합뉴스

안철수 주변의 사람들 갈수록 줄어드는 모습 보여

그러나 안 전 대표는 국민의당을 깨고 바른정당과의 통합으로 바른미래당 만들기를 밀어붙인 뒤 뒤늦게야 뒤로 물러나는 시간을 가졌다. 마침 안 전 대표의 복귀 선언이 나온 다음 날, 바른미래당에서는 바른정당 출신 의원들의 탈당 선언이 있었다. 안 전 대표가 그 길이 아니면 안 된다며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밀어붙였던 합당은 결국 자신의 리더십에 대한 평가만 실추시키는 자해행위가 되었던 셈이다. 그 결과를 의식해서인지, 안 전 대표도 복귀 선언을 한 이후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영호남 화합과 국민 통합이 필요하다는 신념으로 추진했던 바른미래당이 결과적으로 실패한 것도 제 책임”이라며 사과를 하기에 이르렀다.

안철수의 재기는 과연 가능한 것일까. 안 전 대표가 일단 복귀의 타이밍은 잘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황교안 체제가 한국당의 지지율 상승을 스스로 막고 있어서 그렇지,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민주당에 대한 지지가 전 같지 않다. 두 정당 모두 싫다는 중도 성향의 부동층이 크게 늘어난 환경에서 제3세력을 표방하는 정당들은 여럿 있지만, 막상 대안이라고 꼽을 만한 정당은 없는 지리멸렬의 상황이다. 구심 없이는 어떤 제3세력도 갈 곳을 잃은 부동층을 끌어들이기 어려워 보인다.

안 전 대표는 그렇게 비어 있는 공간의 입지를 보면서 복귀의 결단을 내렸다. 비록 안철수 개인에 대한 지지는 전 같지 않지만, 제3세력의 필요성에 대한 여론을 잘 활용한다면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둘 수 있는 환경이다. 게다가 한국당과 새보수당을 중심으로 중도보수 통합에 대한 관심이 크다. 이제는 ‘안철수계’라고 불리는 의원도 몇 명 되지 않을 정도로 세력은 왜소화되었지만, 중도보수 통합론자들에게 안 전 대표의 존재는 아직 탐나는 상품이다. 안 전 대표 자신의 리더십과 여론의 추이에 따라서는 다시 한번 재기의 기회를 맞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그동안 있었던 실패의 원인을 제대로 성찰하지 못한 채 같은 잘못을 반복한다면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안 전 대표가 제대로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면 어째서 자신과 함께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줄어들었는가를 깊이 생각했어야 할 일이다. 대망을 가진 정치인이라면 계속 사람들이 붙어도 모자랄 일인데, 어떻게 된 일이 ‘안철수의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드는 모습을 보여왔다. 윤여준·최장집·박선숙·금태섭 등 많은 인물이 그에게 기대를 걸고 왔다가 결국 떠나갔다. 이제는 그와 정치를 같이하는 사람도 많이 줄어들었다.

더구나 이제는 개혁을 떠올리게 만드는 얼굴들이 주변에서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안 전 대표가 정치를 시작한 초기에는 개혁성에 대해 대중적 신망을 가진 사람들이 주변에 많았지만, 이제는 그런 인물들을 찾아보기 힘든 변화가 결국 정치인 안철수의 변화를 말해 주는 것 같다. 안 전 대표를 떠난 사람들이 단지 대선에서 실패했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한 것이었을까. 계속해서 자신을 던질 만한 더 이상의 의미를 안 전 대표에게서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무엇을 성찰하고 무엇을 채웠는가 보여줘야

대선이 끝난 뒤 다시 당 대표로 나서고 국민의당을 분열시키면서까지 바른정당과의 통합을 밀어붙인 일련의 사건은 그래도 남아 있던 사람들마저 등을 돌리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성찰과 소통을 모르는 독단적 리더십의 모습으로 적나라하게 비쳤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람들을 만나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다 해도, 결국 자기 고집대로 결정하는 것은 소통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나의 생각을 바꿀 자세가 되어 있는 사람만이 진정한 소통을 할 수 있다.

지난 대선에서 드러난 모자람은 노력해 채우면 되는 것이지만, 신의를 저버리는 것은 배신과 다름없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안 전 대표에게 절망했던 것은 대선에서 패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패배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조금도 겸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장 가까웠던 동지들에게 그런 배신감의 상처를 안겨주는 정치란 도대체 무엇을 위한 정치일까. 안 전 대표 주변에 어디 그런 사람이 한둘이었을까. 그때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던 것인지, 이제라도 진심으로 깨닫지 못한다면 같은 잘못이 다른 모습으로 되풀이될 뿐이다.

원래 안철수는 참 좋은 사람이었다. 두 차례 대선판에 뛰어들었지만, 그 많은 재산을 갖고도 부동산 투기나 편법증여 같은 것 하나 드러난 것이 없었다. 참으로 모범적인 삶을 살아왔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전형이었다. 그런 안철수의 얼굴 표정이 언제부터인가 달라졌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제는 정치인다워졌다고 얘기하는 게 맞을까.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에 소환된 이래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에게 온갖 수모를 당해 온 그인지라, 당한 만큼 갚아주고 싶은 마음이 앞설지 모른다. 하지만 그동안 사람들에게 드러낸 그런 마음이 자신에게 독이 되었음을 이제는 성찰할 때다. 안 전 대표는 최근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의 정치 위기는 분열적 리더십과 이념에 찌든 낡은 정치 패러다임, 기득권 정치인들의 득세 때문”이라고 진단하며 “문재인 정권의 무능과 낡은 사고로는 미래로 갈 수 없다”고 했다. 한편으로는 맞는 얘기이기도 하지만 막상 자신의 진단에 대한 처방은 무엇인지는 여전히 모호하다.

살다가 스텝이 계속 꼬일 때는 초심으로 돌아가 앞길을 생각하는 것이 정도다. 사람들이 좋아했던 것은 《무릎팍 도사》에서 보여주었던 안철수의 맑은 모습이었는지 모른다. 그랬던 사람들의 마음이 왜 떠나갔는지, 세상을 탓하기 이전에 자신에게서 문제를 발견하려는 사람만이 달라질 수 있다. 누구를 미워하는 마음이 아니라, 품어주는 마음으로 정치를 하는 것. 정치를 재개하는 안 전 대표가 그런 마음을 가져야 그 자신도, 우리 정치도 좋아질 수 있다. 진심으로 비우고 나면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는 것이 사람이지만, 자기가 살아왔던 방식을 고집하면 좀처럼 달라지기 어려운 것이 사람이기도 하다.

안 전 대표는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성찰과 채움의 시간’을 갖겠다고 했다. 돌아온 그가 무엇을 성찰하고 무엇을 채웠는가를 정치적 행동으로 보여주지 못한다면 삼세번의 도전도 소용없을 것이다. 그의 또 한 번의 행보를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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