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모 드러나는 카를로스 곤의 ‘일본 탈출 대작전’
  • 류애림 일본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1.10 17:00
  • 호수 1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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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주팀’과 수개월간 '탈출 시나리오' 점검...일본 사회는 충격에 빠져

도쿄에서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까지 약 9000km. 일본 닛산자동차의 카를로스 곤 전 회장은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도쿄 자택에서 베이루트 고급 주택지의 저택까지 도주했다. 영화 같은 스토리의 탈출극이 연말연시 일본, 그리고 전 세계를 뜨겁게 달궜다. 한때 최고의 CEO라는 극찬을 받던 곤은 언제, 어떻게, 어떤 이유로 대탈출극을 감행하게 됐을까.

카를로스 곤 전 닛산 회장이 보석 허가를 받아 2019년 4월 도쿄 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 REUTERS 연합
카를로스 곤 전 닛산 회장이 보석 허가를 받아 2019년 4월 도쿄 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 REUTERS 연합

10~15명의 다국적자로 이뤄진 ‘도주팀’

수수께끼 같았던, 추측만 무성했던 카를로스 곤의 도주 경로와 방법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일본 언론의 취재에 따르면 곤이 출국한 것으로 보이는 작년 12월29일 오후, 그는 도쿄 롯폰기의 호텔에 잠시 들른 뒤 고속열차 신칸센을 타고 오사카로 이동했다. 새해를 앞두고 귀성 인파로 역과 열차가 북적이던 시기였다. 그리고 간사이 공항 근처의 호텔에 들어갔다. 미국 국적의 남성 2명이 곤과 동행했다고 한다. 두 남성은 호텔에서 악기 운반용으로 추측되는 커다란 상자를 가지고 나와 자가용 비행기에 오른다. 이 과정에서 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상자 속에 몸을 숨겼으리라 추측하고 있다.

레바논 정부가 지난해 12월31일, 곤이 레바논에 입국한 사실을 공식적으로 발표한 뒤 일본 언론은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모든 언론들이 일제히 그의 도주 관련 내용을 앞다퉈 다루고 있다. 일본 한 방송은 곤이 도주에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악기 상자에 사람이 직접 들어가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주목받고 있는 것은 보안검색대 통과 방법이다. 흔히 국제선을 타기 위해서는 엄격한 보안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곤이 어떻게 검사를 뚫고 지나갔는지에 언론 보도의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곤의 도주 뒤에는 10~15명 정도의 다국적자로 이루어진 팀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들은 수개월 전부터 도주 계획을 세웠고, 일본을 20회 이상 방문해 일본 국내 10개 이상의 공항을 조사했다. 그중 간사이 공항의 경우, 자가용 비행기가 도착할 때 외에는 거의 관리·감독자가 없다는 점, 엑스레이 검사 기계가 큰 화물에 대응하지 못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곧바로 간사이 공항을 낙점하고 실행에 옮겼다.

이를 계기로 지난 1월6일 일본 국토교통성은 도쿄의 하네다와 나리타, 오사카의 간사이, 나고야의 주부 등 네 곳의 국제공항에서 자가용 비행기 등의 대형 화물의 보안검색을 의무화했다. 항공법에 따르면 자가용기의 경우 보안검색 여부는 기장이 결정한다. 따라서 자가용 비행기 전용 게이트가 있는 위 네 곳의 국제공항에서는 보안검사 없이 대형 화물이 비행기에 실리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곤의 도주를 계기로 엄격한 보안검사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자가용 비행기 전용 게이트를 통과하는 대형 화물의 보안검사를 뒤늦게나마 의무화했다.

카를로스 곤은 왜 위험을 무릅쓰고 보석 중 도주를 감행했을까. 도주를 실행에 옮기기로 결심한 것은 작년 말이라고 한다. 곤의 보석 조건은 다음과 같다. △도쿄 도내의 제한된 주거지에서 거주할 것 △도망가거나 숨거나 증거 은폐로 의심받을 행위를 하지 않을 것 △3일 이상 여행을 할 경우 재판소의 허가를 받을 것 △해외로 출국할 수 없으며 소지하고 있는 모든 여권은 변호인에게 맡길 것 △거주지의 현관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하고 녹화할 것 △변호인이 제공하는 휴대전화 한 대만을 사용할 것 △마지막으로 사건 관계자나 증인과는 접촉을 금지하고 아내와의 접촉은 재판소의 허가를 받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금지한다는 것 등이다. 곤은 연말인데도 불구하고 아내와의 연락을 재판소가 허락하지 않자 끝내 도주를 결심했다고 전해진다. 또 몇 년 이상 걸릴지 모를 재판에 부당함을 느끼고 있었고, 주변인들에게 일본에서 공정한 재판을 받기 힘들다고 하소연해 왔다고 한다. 도주 후에도 곤은 일본의 사법제도가 유죄를 전제로 기본적 인권을 부정하고 있으며, 정치적이고 옳지 못한 박해로부터 도망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곤 “日 사법부의 부당함으로부터 도망간 것”

곤은 2018년 11월 처음으로 체포됐다. 금융상품거래법 위반이 이유였다. 경영난에 빠진 닛산자동차를 비용절감 조치로 다시 일으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던 전문경영인이 비리를 저질러 체포됐다는 소식은 당시 일본을 충격에 휩싸이게 했다. 곤은 2011년부터 2015년까지 회사로부터 99억9800만 엔(약 1081억원)의 보수를 받았지만, 유가증권 보고서에는 49억8700만 엔(약 539억원)으로 기재했다. 이후 2019년 1월에는 특별배임죄로 추가 기소됐다. 구속 중이던 곤은 3월6일 보증금 10억 엔(약 108억원)을 내고 석방된다. 당시 도쿄지방재판소의 보석 결정에 대해 도쿄지검의 차석검사가 보석 조건에 실효성이 없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보석 후 한 달도 되지 않은 시점인 4월4일, 특별배임 혐의로 다시 체포된다. 오만에서의 부정한 자금 유용이 의심된다는 이유였다. 4월25일 앞서 언급한 조건을 전제로 이번에는 보증금 5억 엔(약 54억원)에 다시 보석으로 풀려났다.

브라질에서 레바논 부모 아래 태어난 곤은 대학 교육을 프랑스에서 받은 후 유명 타이어 제조회사 미쉐린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레바논·브라질·프랑스 다중 국적을 가진 그는 모국 레바논에서 ‘영웅’으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물론 위법행위를 비판하는 레바논인도 있지만, 레바논에 많은 투자를 한 그의 귀국을 환영하는 사람들도 있다. 레바논 정부는 곤이 도주하지 전까지도 여러 차례 일본 정부에 그의 송환을 요청한 것으로 밝혀졌다. 곤의 도주를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일이었다며 전혀 알지 못했다고 관여를 부정한 레바논 정부는 여전히 도주극 개입을 의심받고 있다.

일본 언론은 일제히 곤 전 회장의 도주를 법질서를 유린하는 행위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피고가 없으면 재판은 열릴 수 없고, 사건의 진상은 밝혀질 수 없다는 것이다. 범죄인인도조약을 맺지는 않았지만 레바논 정부와 교섭해 곤의 신병을 인도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연일 펼치고 있다. 다만 일본 일각에선 곤이 해외 언론을 통해 주장하고 있는 ‘불공정한 일본 사법제도’에 대해서도 적극 해명하고 신뢰를 높일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곤은 자신이 체포된 일련의 사건들이 자신을 끌어내리기 위한 쿠데타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 FOX비즈니스의 마리아 바르티로모와 만난 자리에서 곤 전 회장은 “닛산과 프랑스 르노를 통합하려고 했기 때문에 쫓아내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음모론을 다시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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