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훈 목사의 ‘미친 자 운전대’, 본회퍼의 뜻 왜곡했다”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20.01.14 10:00
  • 호수 157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본회퍼 연구자들, 전광훈 목사의 오역에 심각한 우려 표명
‘사회 약자 보호’가 반정부 구호로 돌변

전광훈 목사가 주도하는 문재인하야범국민투쟁본부(범민투)가 조선일보에 싣고 있는 지면광고에 자주 등장하는 문구가 있다. “미친 자에게 운전대를 맡길 수 없다”.

광고를 보면 이 말은 독일 개혁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가 한 것으로 돼 있다. 이 문구를 통해 범민투는 ‘미친 자=문재인’ ‘운전대=정권’임을 강조한다. 과연 그럴까.

본회퍼는 1906년 2월4일 독일 동남부의 브레슬라우에서 정신과 의사 칼 본회퍼와 평범한 가정주부 파울러 본회퍼 사이에서 태어났다. 루터교회를 다닌 본회퍼는 21세 때인 1927년 12월 ‘성도의 교제(Sanctorum Communio)’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는다. 본격적인 활동은 1930년 교수 자격을 얻은 뒤 베를린 훔볼트대 신학부 강사에 임명되면서부터다. 당시 독일은 1차 세계대전에 패해 연합군에 막대한 배상금을 물어야 했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다.

1933년 히틀러는 ‘아리안법’을 만들어 유대인을 배척하기 시작한다. 패전으로 상처 입은 독일 국민들을 다시 하나로 결집시키기 위해 희생양이 필요했는데, 그 대상이 당시 유럽의 돈줄을 쥐고 있던 유대인이었다. 아리안법에 따르면 유대인과 결혼한 독일인은 공직에 나갈 수도 없었다. 이런 일방적 조치에 독일 교회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더 자세히 말하면 히틀러의 광기를 방조했다. 히틀러가 정권을 잡은 1933년부터 본회퍼는 방송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야 할 교회가 오히려 히틀러를 그리스도로 따르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한다. 본회퍼에 대한 나치의 감시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2109년 12월3일 시사저널 회의실에서 이상철 크리스찬 아카데미 원장(왼쪽)과 김성호 박사가 독일 개혁주의 신학자 본회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2109년 12월3일 시사저널 회의실에서 이상철 크리스찬 아카데미 원장(왼쪽)과 김성호 박사가 독일 개혁주의 신학자 본회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본회퍼, 히틀러 암살 모의한 모임 참여로 사형당해

자신이 책임자로 있던 핑겔발트 신학교가 히틀러에 의해 문을 닫게 되자 본회퍼는 본격적인 반(反)나치운동에 뛰어든다. 1940년 히틀러 암살 모임에 참여하게 된 본회퍼는 3년 뒤 관련 사실이 발각돼 체포된 후 수용소에 수감됐다. 이때 수용소 밖에 있는 지인들과 편지를 주고받는데 그걸 엮어서 쓴 것이 바로 책 《저항과 복종》(Widerstand und Ergebung)이다. 패전 직전인 1945년 4월 본회퍼는 사형선고를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본회퍼에 대한 독일인의 사랑은 각별하다. 사변적인 독일 신학계에서 ‘책임과 행동’을 강조한 그의 사상은 후대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책임윤리라는 개념이 독일 교회에 뿌리내릴 수 있었던 데도 본회퍼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이런 이유로 전광훈 목사 측이 본회퍼의 말을 인용하며 문재인 정부와 각을 세우는 것에 대해 한국 교회는 물론 본회퍼 연구자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전 목사와 범민투가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본회퍼를 이용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전 목사는 한 보수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악과 싸우는 데 두려움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을 무시하는 행태를 넘어 전체주의의 길로 가고 있다”면서 자신의 정치적 행동을 본회퍼와 동일시하는 모습이다. 이러한 전 목사의 주장에 대해 김명혁·김동호·박종화·홍정길 목사 등 한국 교회 원로들은 큰 우려를 표시하며 “나치의 행태와 유사한 주장을 펴는 장본인(전 목사)이 스스로 본회퍼의 순교를 따른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 흔한 적반하장의 도를 넘어도 한참 넘은 신학적 궤변”이라고 비판했다.

범민투와 전 목사가 주장하는 본회퍼의 말은 사실일까. 본회퍼 연구자인 김성호 박사는 “전 목사의 완벽한 왜곡”이라고 주장했다. 김 박사에 따르면 본회퍼는 1933년 4월15일 쓴 ‘유대인 문제 앞에서의 교회’라는 제목의 글에서 국가에 대한 교회의 세 가지 책임적 행위에 대해 지적했다. 마지막 세 번째 행위를 언급하면서 본회퍼는 “교회의 가능성은 더 이상 바퀴 아래 깔린 희생자의 상처를 감싸주기 위함이 아니라, 바퀴 자체를 멈추기 위함에 있다”고 주장했다.

‘미친 운전사 이야기’는 본회퍼가 사형당한 후 1년이 지난 1946년 3월 한 편지를 통해 소개됐다. 김 박사는 “함께 감옥에 수감된 이탈리아 장교 출신 수감자가 자신의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본회퍼 목사는 ‘만약 쿠담거리(베를린 시내의 한 거리)에서 한 미친 사람이 그의 자동차를 인도를 넘어 운전한다면 저는 목사로서 죽은 자들을 위해 장례를 치른다거나 희생자들과 관련된 이들에게 위로를 하는 일만을 하지는 않을 겁니다. 만약 제가 이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면, 저는 차 위로 뛰어올라 운전대에서 운전자를 끌어내려야만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주장했는데, 전광훈 목사가 이를 ‘미친 자에게 운전대를 맡길 수 없다’로 오역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엄밀히 말하면, 이 역시 본회퍼의 기록에 있는 것은 아니다. 김 박사는 서울신대를 졸업하고 독일 오스나브루크대에서 박사학위를, 2013년에는 세계본회퍼학회로부터 최우수논문상을 받았다. 김 박사는 “저항신학자인 본회퍼의 비판 대상은 히틀러라는 독재자뿐만 아니라, 나치정권의 만행에 침묵한 독일 교회도 해당됐다”면서 “‘저항과 복종’이라는 그의 신학 체계를 대입시키면 오늘날 한국 교회는 물질과 세속화에 ‘저항’하지 않고 ‘복종’만 하는 존재로 전락했다”고 안타까워했다.

디트리히 본회퍼(오른쪽 두 번째)의 생전 모습 ⓒ Dietrich Bonhoeffer Institute
디트리히 본회퍼(오른쪽 두 번째)의 생전 모습 ⓒ Dietrich Bonhoeffer Institute

“사회가 정치판이나 기웃거리는 교회를 걱정하는 세상이 됐다”

이처럼 독특한 주장과 생애 때문에 본회퍼는 1970~80년대 문익환·박봉랑·전경연 목사가 활동한 진보 성향의 교회를 통해 국내에 소개됐다. 독재정권과 그 독재정권에 침묵한 한국 교회의 당시 시대 상황이 본회퍼가 항거한 1930년대의 독일 사회와 흡사했던 탓이다. 이상철 한백교회 담임목사는 “본회퍼가 강조한 타자성(他者性)은 현대 철학계가 치열하게 고민하는 철학적 주제”라면서 “그가 말한 ‘타자’(Being forward other)의 개념은 시스템 밖에 내몰린 사회적 약자들”이라고 설명했다. 한신대를 졸업한 뒤 미국 시카고신학대학에서 기독교윤리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 목사는 현재 크리스찬아카데미 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김성호 박사와 함께 한국본회퍼학회(회장 강성영 한신대 교수) 정식 회원이다.

이 목사는 “올해 10월말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이 개신교인 1000명을 대상으로 인식조사를 했는데, 응답자의 64.4%가 ‘전광훈 목사가 한국 교회를 대표하지도 않고 기독교 위상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고 응답했다”면서 “당시 조사에서 전 목사의 언행에 동의를 표시한 교인은 13.4%에 불과했는데, 결국 이들이 전체 한국 교회의 얼굴에 먹칠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박사는 “고통받은 자들에게 다가가야 할 기독교 목사들이 정치판이나 기웃거리면서 사회가 교회를 걱정하는 세상이 됐다”며 안타까워했다.

☞연관기사

광화문에 노상교회 세우고 정치 뛰어든 한국 기독교

“목사가 주인 노릇 하는 게 한국 교회 가장 큰 문제”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