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루언서 신드롬’은 여전히 현재진행형
  • 하재근 문화 평론가 (ls@sisajournal.com)
  • 승인 2020.01.13 10:00
  • 호수 1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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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얼짱’에서 파워 블로거 거쳐 펭수로 진화…정치ㆍ사회ㆍ문화적으로 영향력 확대 전망

한국판 인플루언서의 시초는 인터넷 ‘얼짱’이라고 할 수 있다. 인터넷 시대가 시작되자 커뮤니티, 게시판 등에서 얼짱이라는 사람들이 회자됐고 대중매체가 이를 받아 기사화하면서 하나의 현상이 됐다. 몇몇 얼짱은 지상파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대중문화계 주류는 아니었고, 약간의 신기한 화젯거리 수준이었다.

또 김어준이 ‘딴지일보’라는 사이트를 만들어 총수라고 자칭했는데, 누리꾼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면서 대안 언론처럼 발전했다. 비속어, 욕설을 마다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내지르는 글들에, 점잖은 기성 매체에 답답함을 느끼던 젊은이들이 특히 후련함을 느꼈다. 당시 생소한 필명을 쓰는 인터넷 논객들이 유명해지면서 잇따라 도서 시장에 데뷔하기도 했다.

2002년 대선 즈음엔 인터넷 논객들의 전성기가 펼쳐졌다. 인터넷 사이트가 노무현 후보 측의 민간 선거 지휘본부처럼 활동하면서 인터넷 필자들이 스타처럼 변해 갔다. 그때 떴던 논객 중에 변희재는 우파 활동가가 됐고, 정청래는 국회의원이 됐다.

블로그 시대가 열리면서 본격적으로 SNS 스타들이 탄생하기 시작했다. 이때는 SNS 스타들을 보통 ‘파워 블로거’라고 했다. 이들의 영향력이 업계의 주목을 받긴 했지만 아직 보편적인 대중 스타 수준은 아니었다. 뒤이어 트위터, 페이스북 시대가 되면서 많은 팔로워를 거느린 SNS 유명인의 영향력이 점점 커져 갔다.

ⓒ 연합뉴스·뉴스1·시사저널 고성준
ⓒ 연합뉴스·뉴스1·시사저널 고성준

트위터ㆍ페이스북 시대부터 영향력 커져

이명박 정부 때 방송 장악 등으로 기성 매체에서 비판적인 목소리가 줄어들자 본격적으로 인터넷 방송이 부흥했다. 하지만 이때는 인터넷 속도 때문에 동영상 방송은 무리였고, 대신 라디오 방송이 각광받았다.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던 사람들이 이른바 팟캐스트라는 인터넷 개인 라디오에 데뷔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나꼼수’라는 대형 히트상품이 터졌다. 2002년 대선 때 인터넷 사이트 논객들이 정치적인 영향력을 발휘했다면, 이명박 정부 때는 나꼼수 라디오의 김어준, 주진우, 정봉주 등이 그 이상의 힘을 발휘했다. 이들은 모두 나중에 기성 방송사가 진행자로 ‘모셔’갔고, 심지어 ‘나꼼수’의 제작기술을 담당했던 김용민 PD까지도 기성 방송사의 MC가 됐다. 팟캐스트 라디오 스타였던 최욱도 현재 방송가의 핫한 MC로 각광받는다. 

일단 인터넷 개인방송의 물고가 트이자 라디오는 빠르게 동영상으로 발전해 갔다. 먼저 활성화된 건 아프리카TV였다. 아프리카TV 전까지는 인터넷 스타가 유명해진 것으로 만족하는 시스템이었다. 어느 정도의 수익 구조가 있었지만 미미한 수준이었다. 아프리카TV는 별풍선이라는 직접 수익 시스템을 만들었다. 시청자가 방송자에게 금품을 선물하는 것이었는데, 이로 인해 개인방송 활동이 취미나 부업이 아닌 본업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아프리카TV에선 잇따라 억대 수입의 스타들이 탄생했다. 대도서관도 이때 나타난 스타 BJ였다. 하지만 아프리카TV에선 별풍선을 받기 위한 자극적인 방송 내용이 계속 물의를 빚었다. 심지어 성범죄와 연관되기도 했다. 그래서 아프리카TV는 지속적으로 질타를 받았고 주류 플랫폼의 위상을 인정받지는 못했다. 일부 마니아들의 B급 세계 같은 느낌이었다.

유튜브가 인터넷 개인방송의 ‘끝판왕’으로 등장했다. 유튜브는 미국 구글이 운영하는 안정적인 서버와 동영상 송출 기술을 발판으로 양질의 스트리밍 영상을 제공했다. 누구나 아주 쉽게 개인방송 채널을 열 수 있었고, 처음부터 광고를 통한 수익 기회를 제공했다. 구글 광고 수익은 이명박 정부 시절 파워 블로거들이 먼저 받기 시작했다. 이때 전업 스타 블로거들이 나타났다. 하지만 수익이 연 1억원을 넘기가 쉽지 않았고, 영향력도 제한적이었다. 유튜브 방송은 연 10억원 이상의 광고 수입도 가능한 ‘노다지’ 시장이었다. ‘유튜버’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젊은 누리꾼들의 취향이 빠르게 동영상 위주로 재편됐다. 활자는 물론이고 소리까지 답답해하면서 동영상 시청만 선호하는 세대의 등장이었다. 거대한 시청층이 나타나자 유튜브 방송은 날개를 달았다. 연예인보다 더 인기를 끄는 유튜브 스타들이 속출했다.

연 20억원 가까운 수익을 올린다는 대도서관, 초통령 도티, 먹방 쯔양, 뷰티 씬님 등 다양한 유튜버 스타들이 지상파에 입성해 새로운 스타군을 형성했다. JTBC 아나운서였던 장성규는 퇴사하고 시작한 유튜브 방송 ‘워크맨’으로 일약 대세 MC 자리에 올라섰다. GOD 출신의 박준형도 유튜브 ‘와썹맨’으로 제2의 전성기를 열었다. 2019년 최고의 스타 중 하나인 펭수도 유튜브에서 떴다. 유튜브는 뉴트로 복고 현상도 이끌었는데, 여기서 시간여행자 양준일 신드롬이 터졌다. 1991년에 데뷔한 양준일의 영상을 누리꾼들이 찾아 보면서 양준일이 인플루언서가 됐고, 결국 방송국이 미국에서 살던 그를 ‘모셔’왔다. 방송사들은 개인방송 쓰나미에 대응할 수밖에 없었고, 《마이 리틀 텔레비전》 《신서유기》 《라면 끼리는 남자》 등 신종 장르가 탄생했다.

기존 연예인들도 잇따라 유튜브에 진입했다. 유튜브로 인해 대형 기획사와 지상파의 영향력이 축소되자 대형 기획사 소속 일부 연예인들이 이탈하는 경향도 나타났다. 유튜브는 한류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한국 연예인 싸이와 방탄소년단은 해외에선 유튜브를 통해 인플루언서로 알려졌다. 인터넷 스타로 떠서 한국 역사상 최대의 국제 스타가 된 것이다. 개인 맞춤형 동영상을 주로 시청하는 젊은 세대가 점점 더 성장하기 때문에 유튜브 유명인의 영향력은 새해에 더 커질 것이다.

 

싸이와 BTS도 유튜브 통해 유명해져

젊은 세대만이 아니다. 중노년층도 유튜버에 가세했다. 이명박 정부 때 민주당 지지층이 인터넷 라디오로 몰려갔던 것처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후 문재인 정부 출범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중노년층이 이번엔 유튜브로 몰려갔다. 듣고 싶은 정치적 견해를 듣기 위해서. 여기서 보수 유튜버 스타들이 탄생했다. 이들은 수십만 명에 달하는 구독자를 거느리고 노무현 정부 당시의 인터넷 논객, 이명박 정부 당시의 팟캐스트 스타를 훨씬 뛰어넘는 영향력을 발휘한다. 수익도 상당하다고 알려졌다. 한국당 황교안 대표, 나경원 전 원내대표도 보수 유튜버를 중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 바 있다.

이미 개인방송 유명인들이 한국 대중문화계와 공론장을 뒤흔들고 있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인터넷 기술이 발달하고 사람들이 개인 미디어에 익숙해지면서 인플루언서 신드롬은 더욱 뜨거워질 것이다. 그렇게 영향력이 커지는데도 규제 사각지대에서 무책임하고 자극적인 방송을 한다거나, 일부 일탈을 일삼는 인플루언서들의 행태는 우리 사회가 앞으로 고민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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