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대 받은 판사, 왜 처벌할 수 없었을까
  • 남기엽 변호사 (kyn.attorney@gmail.com)
  • 승인 2020.01.1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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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엽 변호사의 뜻밖의 유죄, 상식 밖의 무죄] 22화
640만원어치 접대 받은 판사, 구체적 청탁만 없다면 알선뇌물수수죄가 되지 않는다

거의 모든 분쟁은 법으로 귀결된다. “법대로 하자”는 것은 선언적 결별이다. 가족 간에 법적 분쟁이 있다는 것은 이미 ‘인간관계’에서 ‘인간’이 제거됐다는 신호다.

그러나 판사가 모든 사실을 다 알 수는 없다. 어떤 음악이 표절인지, 구조물이 잘 시공되었는지, 응급 수술이 적절하였는지 무슨 수로 판단한다는 말인가. 그럴 때 ‘감정’이라는 절차를 거친다. 원고 피고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그 분야의 전문가를 데려다가 파악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이런 전문지식이 필요한 소송은 감정인의 감정서에 의존하여 결론이 나는 것이 보통이다. 응급 수술이 적절하지 않았다는 흉부외과 권위자의 의견을 해당 감정을 요청한 판사가 뒤집는 일은 없다. 그래서 감정인의 역할은 재판에서 매우 중요하다.

예전 사건의 일이다. A는 목조주택을 지어 산천을 벗 삼아 사는 게 꿈이었다. 그래서 B에게 맡겼다. B는 바닥편과 내력벽에 의하여 건물을 일체화시키는 경골공법의 권위자였고 그 중 자신 있는 플랫폼 공법으로 주택을 지었다. 그런데 1년 뒤 주택의 바닥에 균열이 갔다. 하층부와 상층부는 어긋나 바람이 분다. 서러운 마음에 텅 빈 풍경이 불어오자 A는 B에게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했고 B가 집을 ‘제대로’ 지었는지가 쟁점이 됐다.

재판부는 경골공법을 처음 들었다. 그래서 A와 B의 동의를 얻어 또 다른 경골공법의 권위자 C를 감정인으로 지정했다. 그런데 C는 알고 보니 B의 선배의 친구의 지인이었다. 그리고 목조주택을 검사하러 갈 때 B의 차를 얻어 타고 갔다. A는 항의했고 현명했던 재판부는 강력하게 경고했다. 차를 얻어 타고 갔는데 공정한 감정결과가 나올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팔은 ‘돈’으로 굽는다”는 말이 있다. 받은 게 있으면 어떻게든 영향이 있다. 정부나 기업의 요청으로 이루어지는 용역 연구나 연구비를 지원 받는 과학자들의 연구는 대개 목표가 정해진 설계이지, 열린 결말을 예비하는 연구가 아니다. 와인에 함유된 비타민과 무기질 등의 영양소가 다이어트 하는 이들에게 필수라는 연구 결과는 와인회사의 지원 속에 나타났지만 연구자 본인조차 다이어트 식품으로 권하지는 않을 것이다.

판사가 자신이 일하는 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 D를 만나 회당 70만원의 술·식사 접대를 9차례나 받았다면 어떨까? D는 당시 지방소재 법원에서 조세관련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었고 판사는 이 지방법원 소속이었다. D는 판사를 유흥주점에 데리고 갔으며 판사는 술자리에 법원직원들을 합석시키기까지 했다.

알선뇌물수수죄가 성립하지 않았다. 쟁점은 뇌물을 주며 ‘구체적 청탁을 했느냐’였는데, D는 조세범처벌법 위반으로 재판받고 있다고 말했지만 구체적으로 말하지는 않았다는 것. 게다가 판사는 D에게 공판검사를 소개해주기까지 했다. 법원은 이런 행동이 심히 부적절하다면서도 형님과 돈 많은 동생 사이로 볼 수 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실제로 D와 판사는 서로 형님·동생으로 불렀다. 다만 어릴 때부터 친한 형․동생이 아니라 D가 재판받는 피고인이었을 때 형․동생 사이가 시작됐다.

신문을 보면 기획·섹션이란 면이 있다. 살균세탁 하셨냐며 획기적인 기술을 쓴 세탁기가 보도되었다면 3면 뒤쯤에 반드시 그 세탁기 광고가 있다. 친환경 자동차기술을 찬양하는 기사가 있다면 후면 전면광고에 그 자동차 광고가 있을 확률이 높다. 이런 기사는 차라리 솔직하다. 광고와 객관을 가장한 기사를 동일섹션에 배치한 것은 능동적인 ‘자기부정’이다. “나를 믿어줘”가 아닌 “나를 봐줘”여서 정감이 간다.

얼마 전 지자체 소속 공무원이 카지노 인허가를 대가로 자녀 채용을 청탁했으나 받은 액수가 미미했고 직무상 부정한 청탁이 없었다고 보아 무죄가 선고된 사례도 있다. 재판부는 어김없이 "무죄를 선고하기는 했지만 피고인들의 행동이 죄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고 제3자가 봤을 때 깨끗한 행동이라고 할 수 없다”며 부적절하였음을 지적했다.

판사의 따끔하고도 잇따른 지적은 보기엔 좋지만 이런 것은 언론과 여론의 몫이다.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 그 말은 무거워서 감히 다른 음식을 허용해선 안 된다. 감정인을 차로 태워준 그 배려까지 오인 받는 일반 당사자들에게, 유독 엄격하게 해석되는 위 사례들은 국민들로 하여금 단단하게 실망할 준비를 하게 만든다.

640만원어치 접대 받은 판사, 구체적 청탁만 없다면 알선뇌물수수죄가 되지 않는다.

ⓒ pixabay

※사족: 위 일은 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 시행 전의 일이다. 따라서 청탁금지법에 의해서는 처벌된다.

남기엽 변호사대법원 국선변호인남부지방법원 국선변호인서울지방변호사회 공보위원서울지방변호사회 형사당직변호사
남기엽 변호사
대법원 국선변호인
남부지방법원 국선변호인
서울지방변호사회 공보위원
서울지방변호사회 형사당직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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