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현지 취재] “기업살인법은 위험의 외주화를 줄일 수 있다?”…팩트체크 5문5답
  • 오종탁·공성윤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0.01.22 10:00
  • 호수 1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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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로퍼 영국 노섬브리아대 로스쿨 부교수(왼쪽)와 스티븐 오도허티 전 영국검찰청 검사 ⓒ 시사저널 오종탁
빅토리아 로퍼 영국 노섬브리아대 로스쿨 부교수(왼쪽)와 스티븐 오도허티 전 영국검찰청 검사 ⓒ 시사저널 오종탁

1. ‘기업살인법’은 잘못된 번역이다? 

한국에서 ‘기업살인법’이란 말을 처음 쓴 곳은 노동계다. 노동건강연대는 2003년 영국의 기업살인법 제정 움직임을 국내에 처음 소개했다. 당시 이들이 한국에도 기업살인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자 일각에선 “어떻게 기업에다 살인이란 말을 갖다 붙이느냐”고 비판했다. 잘못되거나 과장된 해석으로 기업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덧씌우려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박혜영 노동건강연대 활동가는 언론 인터뷰에서 “(기업살인법과 의미가 비슷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법적 용어는 될 수 있겠지만 현장의 노동자들에게는 잘 안 와닿고 취지가 정확히 전달되지 않는다”며 “우리가 기업살인법을 처음 소개했을 때의 취지는 ‘노동자의 사망은 기업의 살인’이라는, 이거 딱 한 가지였다. 그래서 자체적으로 기업살인법이란 용어를 사용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지금은 기업살인법 용어에 대한 비판이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표현을 좀 순화할 필요는 있지 않느냐’는 의견도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2007년 제정된 영국 법안의 정확한 명칭은 어떨까. ‘Corporate Manslaughter and Corporate Homicide Act’는 직역하면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이다. 기업살인법이란 말 자체가 영국 법안 명칭에도 들어가 있다. 노동계가 2003년 명명한 기업살인법이 ‘틀린’ 용어는 아닌 것이다. 

다만 김재윤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014년 발표한 ‘영국의 과실치사법에 대한 고찰과 시사점’이란 논문에서 “‘기업살인’을 ‘법인살인’으로 번역하는 게 보다 정확한 번역에 해당한다는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면서 “영국의 법안은 명문 규정을 통해 당해 법률이 단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법인격을 가진 단체에 대해 일반적으로 적용된다는 것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니콜라스 릭비 영국 보건안전청(HSE) 수석감독관 ⓒ 시사저널 오종탁
니콜라스 릭비 영국 보건안전청(HSE) 수석감독관 ⓒ 시사저널 오종탁

2. 기업살인법은 기업의 ‘고의적 살인’을 처벌하는 법이다? 

노동계 일각에선 영국의 기업살인법 제정 과정을 두고 ‘기업이 고의적으로 살인을 저지른다는 사실을 천명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물론 영국 법안 명칭에 ‘기업살인’이란 말이 실제로 들어가 있으나, 그것이 ‘기업이 고의적으로 저지르는 살인’인지에 대해서는 곱씹어볼 여지가 있다. 

영국은 기업의 형사 책임을 강화하는 새로운 법안에 대한 요구가 제기된 가운데 2007년 7월 기업살인법을 제정해 2008년 4월6일부터 시행해 왔다. 앞서 1974년 제정된 보건안전법(Health and Safety at Work etc Act·이하 HSWA)도 노동자가 다치거나 사망에 이르게 되면 회사의 이사나 현장 관리자 등을 상해 또는 과실치사 혐의로 처벌할 수 있었다. 하지만 법원에서 그 과실 혐의를 입증하긴 어려웠다. 

이에 개인뿐 아니라 기업에도 과실치사죄나 살인죄를 적용해 처벌하도록 하는 기업살인법이 도입됐다. 영국의 ‘Corporate Manslaughter and Corporate Homicide Act’, 즉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 명칭을 보면 ‘과실치사(Manslaughter)’란 말이 ‘살인(Homicide)’에 앞서 있다. 이 법률상 ‘Manslaughter’는 사망 재해가 발생했으나 그 발생을 '의도치 않은' 범죄를 대상으로 한다. 그래서 우리 형법 개념으론 고의적인 살인보다 과실치사로 해석하는 게 보다 정확하다고 김재윤 교수는 논문을 통해 밝혔다. 

영국 현지 분위기도 김 교수의 견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영국 보건안전청(HSE)의 니콜라스 릭비 수석감독관은 “영국의 경우 산업재해 사망 사고 대부분은 살인이 아닌 산재의 영역으로 본다. 굉장히 특수한 사안에 대해서만 살인이라 규정하고 경찰 등 사법기관이 이를 (기업살인법 하에서) 조사·수사한다”며 “경찰과 HSE의 초동 공동 조사 과정에서 해당 산재 사망이 살인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즉시 조사 주권이 HSE로 넘어간다”고 설명했다. 

이후 HSE는 기업살인법이 아닌 HSWA 하에서 관련자를 처벌할 방안을 찾는다. 산재 사망사고 발생 시 기업살인법의 적용 비중이 전체의 5%도 채 되지 않는다고 릭비 수석감독관은 전했다. 영국 킹슬리 네플리 로펌의 산재 전문 변호사인 조너선 그림스는 “산재 사고 발생 시 기업살인법이 적용되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다. 그래서 기업살인법이 큰 이슈였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기업살인법 도입의 의미와 의의를 묻자 릭비 수석감독관은 “이전엔 살인이란 죄에 대해 사람만 기소할 수 있었는데 기업살인법 도입 후 기업도 할 수 있다는 정도”라며 “산업재해란 분야에서 기업살인법은 굉장히 작은 비중을 차지하며 HSWA를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고 밝혔다. 기업살인법에 관한 한국 노동계의 해석 내지 기대와는 거리가 있다. 

 

3. 기업살인법은 무한대로 벌금을 물려 과실 기업을 심각한 경영 위기에 빠뜨린다? 

국내에선 기업살인법 벌금 부과에 따라 파산했거나 심각한 경영 타격을 입은 영국 기업 사례가 소개되며 기업살인법의 ‘상한 없는 벌금’이 자주 회자되고 있다. 기업이 망할 정도로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하기 때문에 기업에 경각심을 줄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이라는 기대와 함께다. 

실제로 영국 기업살인법에 따르면 위법 요건이 충족되는 기업에 대해 상한 없는 벌금, 구제 명령(remedial orders), 위반 사실의 공표 명령(publicity orders)으로 처벌할 수 있다. 상한 없는 벌금이란 정확히 말하면 일반적인 벌금형과 다르게 구체적인 벌금 상한선이 나와 있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기업살인법에 의해 벌금형을 받은 기업이 모두 엄청난 액수를 부과받은 것은 아니다. 

빅토리아 로퍼 영국 노섬브리아대 로스쿨 부교수는 “2007년 기업살인법 제정 당시에는 높은 벌금에 대한 일각의 예상이 없지 않았는데, 도입 이후 실제로 부과된 사례를 되짚어보면 최대 120만 파운드(약 18억2200만원) 정도에 그쳤다”고 말했다. 릭비 수석감독관은 “1974년 제정된 HSWA도 이미 상한 없는 벌금 규정을 두고 있다”며 기업살인법의 상한 없는 벌금이 영국 산업계에 일대 전환을 가져올 만한 규정은 아니었다고 했다. 

2011년 2월 회사 근로자의 근무 중 사망사고로 기업살인법 적용을 받은 영국 토목회사 코츠월드 지오테크니컬에는 연매출의 250%에 해당하는 벌금이 부과됐다. 이 회사는 기업살인법에 의한 기업과실치사죄로 유죄를 선고받은 최초의 기업이었다. 벌금형 이후 해체됨으로써 한국에선 기업살인법 벌금의 위력을 상징하는 사례로 여겨졌다. 이 회사에 부과된 벌금은 총 38만5000파운드(약 5억8400만원)였다. 연매출이 3억원이 안 되는 작은 기업이었던 것이다. 다른 기업살인법 벌금형 처벌 사례 기업들을 봐도 대부분 중소기업이고, 중견기업 이상은 한 곳에 불과하다. 2008년 법 시행 이후 10여 년 동안 기업살인법으로 처벌받은 기업도 26곳으로 지극히 수가 적다. 

한국과 영국의 원·하청 비교
한국과 영국의 원·하청 비교

4. 기업살인법 도입은 위험의 외주화를 줄일 수 있다? 

1월16일부터 시행되는 개정 산업안전보건법, 이른바 김용균법의 핵심은 원·하청 구조로 유발되는 '위험의 외주화'를 막자는 것이다. 그런데 ‘김용균법에 정작 김용균이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김용균법이 도급을 금지한 것은 도금이나 수은·납·카드뮴 관련 작업뿐이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영국의 기업살인법 등 제도적 대안이 더욱 부각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기업살인법처럼 강력한 법안을 도입해 기업의 책임을 강화하면 안전불감증, 위험의 외주화 등 문제가 해결될 거란 막연한 기대감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영국의 기업살인법은 우리나라와 다른 산업 토양에서 시행되고 있는 법안이다. 영국 기업살인법에는 도급 금지 등 위험의 외주화 관련 규정이 없다. 영국에선 1974년 제정된 HSWA에 따라 이미 원·하청에 합당한 안전 책임을 부여하는 구조가 갖춰져 있다. 릭비 수석감독관은 “영국의 기업들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도급 등 하고 싶은 방식을 마음대로 택하면 된다. 그 과정에서 안전 목표(goal)만 지켜주면 정부는 관여하지 않는다”며 “원청업체와 마지막 하청업체 사이에 몇 개의 기업이 끼어 있더라도 모든 주체가 각각 다 책임을 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철저한 안전의식과 강력한 HSWA 아래서 영국의 기업들은 하청을 줄 때 적합한 업체인지를 체크하고, 작업에 들어가면 모니터링하거나 보험에 드는 등 의무적으로 추가 조치를 진행한다. 원청이 하청에 책임을 떠넘기기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릭비 수석감독관은 강조했다. 

 

5. 기업살인법 시행으로 영국의 산재 사망이 획기적으로 줄었다? 

영국의 기업살인법이 산재 사망을 획기적으로 줄였다고 소개한 일부 국내 언론은 근거로 노동자 1만 명당 사고로 숨지는 비율을 나타내는 사망 만인율을 제시했다. 영국 사망 만인율이 2007년 0.7에서 2009년 0.4로 대폭 줄었다는 것이다. 이 데이터는 기간이 2년으로 짧을뿐더러 10여 년 전을 최신으로 설정해 적절한 근거라 볼 수 없다. 

시사저널이 HSE를 통해 확인한 결과, 영국 내 일터에서 사망한 노동자는 2008~09년 179명에서 2018~19년 147명으로 줄었다. 줄어든 게 사실이나, 획기적 감소라고 보기엔 무리다. 노동자 10만 명당 사망자 수를 나타낸 비율(10만인율)도 1988년에서 1994년 사이 가장 많이 떨어졌고, 이후 2019년까지는 완만한 하향 추세를 나타내 왔다. 스티븐 오도허티 전 검사는 “노동자 10만 명당 사망률이 1981년 2.1명에서 점차 내려와 지금은 0.5명 수준(2016년 기준 0.53명, 한국은 9.6명)”이라며 “기업살인법 시행 전후로 뭔가 크게 달라진 게 아니라 30여 년간 지속돼 온 트렌드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살인법은 (산재 사망사고에 경종을 울리는) 상징적 의미를 준 건 있지만, 실질적으로 산업재해율이나 산업사망률을 낮추는 데 크게 영향을 준 것 같진 않다”고 덧붙였다.

릭비 수석감독관 역시 “영국의 사망 10만인율이 최근 몇 년간 0.5명 수준을 유지하며 한국의 20분의 1에 불과한 것은 (기업살인법이 아니라) 산업 안전에 관해 기업에 자율성과 책임을 효율적으로 부여하는 방식을 오래전부터 이어온 영향이 크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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