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지 도착한 패스트트랙 1호 열차…선진화법 자리 잡나
  • 이민우 기자 (mwlee@sisajournal.com)
  • 승인 2020.01.14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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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제·검찰개혁 법안의 출발부터 본회의 통과까지 ‘험난한 여정’
첫 패스트트랙 상정에 고소·고발 난무…첫 충돌 이후 동물국회도, 식물국회도 없었다

험난한 여정이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길이었다. 뻥 뚫린 고속도로일지,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일지도 불확실했다. 출발할 때부터 삐걱거렸고, 여정 중간에 멈춰서는 일도 많았다. 그 모든 변수를 감내하고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처음으로 패스트트랙 열차를 탄 선거제·검찰개혁 법안 얘기다.

국회는 13일 본회의를 열어 검·경 수사권 조정법안인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유치원 3법인 사립학교법, 유아교육법, 학교급식법 개정안도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자유한국당은 그간 최후의 방어전략이었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조차 하지 않고 불참했다.

이로써 1년 넘게 끌어온 이른바 '패스트트랙 정국'은 마무리됐다. 유치원3법 등 패스트트랙 안건 지정이 시작된 지는 13개월, 또 선거법 등을 두고 여야가 극한 대치를 시작한 지는 8개월 여 만에 모든 절차가 마무리 됐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개혁 입법 과정을 완수할 수 있어서 참 다행으로 생각한다"며 "선거 제도 개혁과 검찰 제도 개혁이라는 국민의 명령을 집행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12월4일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왼쪽 네 번째)가 국회에서 자유한국당을 뺀 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 및 대안신당과 4+1 예산안 실무회동을 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12월4일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왼쪽 네 번째)가 국회에서 자유한국당을 뺀 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 및 대안신당과 4+1 예산안 실무회동을 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한국당 버리고 군소정당 손 잡자 벌어지는 일들

패스트트랙 열차를 탄 이들 법안들은 정치의 난제였다. 국회가 열릴 때마다, 선거가 있을 때마다 익숙하게 테이블에 올랐던 법안들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선거제를 개혁해야 한다고 했다. 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도 노무현 정부 때부터 반복적으로 협상 테이블에 올랐다. 늘 이슈의 중심에 섰지만 해결할 수 없는 법안들이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 있어서였다. 여의도 정가에선 헌법 개정만큼이나 처리되기 어려운 법안들이라고 봤다.

민주당의 카드는 '4+1 협의체'와 국회선진화법(2012년 개정된 국회법)이었다. 민주당은 집권여당임에도 과반 의석을 차지하지 못했다. '여소야대' 국회였다. 제1야당인 한국당의 동의 없이는 어떤 법안도 처리할 수 없었다. 문재인 정부 초기 압도적 여론 지지에도 불구하고 여당이 입법적 보조자 역할을 하지 못했던 이유였다. 한국당과의 협상에 목매달던 전략을 포기했다. 대신 '4+1 협의체'로 무게중심을 이동했다. 국회보다 광장을 선호하고, 협상보다 투쟁을 외치는 황교안 체제의 자유한국당을 배제하겠다는 전략이었다. 

위기의 순간도 있었다. 의석수가 소수에 불과한 군소정당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양보해야 하는 부담 때문이었다.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을 수도 있었다. 지난해 4월 패스트트랙 지정 당시 선거법을 우선 처리하기로 했다가, 이를 뒤집으면서 위기가 왔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캡'을 씌우거나 석패율제 도입 등 세부 의제를 놓고 이견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대의(大義)'에 충실했다. 조금씩 양보하는 협상 다운 협상을 보였다. 

그들은 선진화법을 최대한 활용했다. 선진화법은 다수의 일방적인 국회 운영, 그리고 그에 대한 소수당의 폭력적 의사진행 방해를 막는 이중적 성격이 있었다. 그들은 다수를 점한 이들의 최소한의 보장 장치인 '패스트트랙'을 꺼내들었다. 2012년 선진화법이 도입된 이후 사실상 처음이었다. 일정 시한이 지나면 법안을 상정하도록 한 신속처리안건 제도를 활용해 난제들을 본회의장으로 끌여들었고, 199개 법안에 필리버스터를 신청하는 한국당의 '허용된 반발'도 뚫었다. 민주당과 군소정당의 '합종(춘추전국시대 약소국이 힘을 합쳐 강대국을 상대한다는 전략)'이 성공한 셈이다.

(왼쪽) 4월29일 사개특위 전체회의에서 공수처 법안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되자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회의장 앞에서 항의 시위를 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왼쪽) 4월29일 사개특위 전체회의에서 공수처 법안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되자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회의장 앞에서 항의 시위를 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선진화법 덕분일까, 선진화법 때문일까

패스트트랙 본궤도에 오르기까지도 험난했다. 이들 법안을 패스트트랙을 지정하는 과정에서 강하게 충돌했다. 19대 국회가 '식물국회'였다면 20대 국회는 '동물국회'라는 오명까지 들었다. 한국당은 패스트트랙 지정을 막기 위해 의원을 사무실에 가두는 등 폭력을 불사했다. 민주당과 군소야당도 다르지 않았다. 익숙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선진화법은 여기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폭력 국면이 진정되자 여야는 고소·고발로 맞섰다. 검찰은 2일 한국당 의원 23명과 황교안 대표, 민주당 의원 5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선진화법이 도입된 이후 첫 기소였다. 이들에게 가장 큰 두려움의 대상은 피선거권 박탈이다. 국회회의방해 혐의로 500만원 벌금 이상의 형이 확정될 경우 피선거권을 5년간 박탈당한다. 총선에서 당직돼도 의원직을 내놔야 한다. 패스트트랙 상정땐 강하게 충돌했지만, 처리 과정에서 몸싸움을 볼 수 없었던 한국당의 '두려움'은 선진화법에서 비롯됐다.

선진화법이 없었다고 가정해 보자. 민주당은 일부 야당과 협상을 통해 '직권상정'으로 개혁 법안들을 처리하려 했을 것이다. 여기에 맞선 한국당은 의장실 점거, 본회의장 농성 등 육탄방어에 나섰을 것이다. 국회의장은 질서유지권을 발동해 법안을 처리하고, 이 과정에서 온갖 주먹질 등이 난무했을 개연성이 높다. 그간 우리가 보아왔던 '익숙한' 국회의 그림이다.

지난해 4월 패스트트랙 안건 지정 과정에서 벌어진 국회 내 몸싸움 현장 ⓒ 연합뉴스
지난해 4월 패스트트랙 안건 지정 과정에서 벌어진 국회 내 몸싸움 현장 ⓒ 연합뉴스

시작은 험난했을지 모른다. 누구나 처음은 어색하다. 그래서 시행착오도 있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스스로 만든 국회법을 짓밟아 버리는 짓은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의원들에게 각인시켰다. 앞으로 국회 폭력은 줄 것이고, 막무가내식 반대로 발목을 잡는 일도 사라질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는 이유다. 협상 테이블조차 거부하던 정당은 외면을 당했다. 제1당과 다른 야당들은 한발씩 양보를 해 타협의 산물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국민들이 말하는 '협상의 정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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