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 재심 결정
  • 김재태 기자 (jaitaikim@gmail.com)
  • 승인 2020.01.14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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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한 옥살이’ 윤아무개씨 의견 받아들여…자백 등 증거 많아 이례적 신속 결정

'진범 논란'을 빚어온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에 대한 법원의 재심 결정이 14일 내려졌다. 이로써 범인으로 몰려 20년간 옥살이를 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해 온 윤아무개씨(53)에게 30여 년 만에 누명을 벗을 기회가 생기게 됐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이례적으로 신속한 재심 결정이 내려졌다고 평가했다.

수원지법 형사12부(김병찬 부장판사)는 이날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의 재심 청구인인 윤씨 측의 의견을 받아들여 재심을 열기로 결정했다. 재판부는 "이춘재가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받으면서 자신이 이 사건의 진범이라는 취지의 자백 진술을 했다"며 "여러 증거를 종합하면 진술의 신빙성이 인정된다"고 재심 결정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재심은 피고인 윤씨에 대해 무죄를 인정할 명백한 증거가 새로 발견된 때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화성 8차사건'의 범인으로 검거돼 20년간 복역한 윤아무개씨가 지난 10월26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경기남부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에 출석하는 모습 ⓒ 시사저널 고성준
'화성 8차사건'의 범인으로 검거돼 20년간 복역한 윤아무개씨가 지난해 10월26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경기남부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에 출석하는 모습 ⓒ 시사저널 고성준

과거사 사건이 아닌 일반 형사사건에서 재심 결정이 내려지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재심의 개시는 과거 수사기관의 수사는 물론 법원 판결에 오류가 있었음을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사건의 경우 이춘재의 자백이 나온 것이 재심 개시 결정에 결정적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그밖에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연구원)의 감정에 심각한 오류가 있었고, 불법체포·감금 및 구타·가혹행위를 한 수사기관의 행위 역시 중대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법원이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형사소송법 420조는 재심 사유로 △법원 판결의 증거가 된 증거물이 위·변조 또는 허위인 것이 증명된 때 △무죄를 인정할 명백한 증거가 새로 발견된 때 △판결의 기초가 된 조사에 참여한 자가 직무에 관한 죄를 범한 것이 증명된 때 등 7가지를 규정하고 있다. 결국 수사기관에 의해 신속하게 '새로운 증거'가 발견된 것이 이번 재심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 셈이다.

수원지법 관계자는 "이 사건은 이례적으로 수사기관에 의해 진범의 진술이 확보되고, 그 과정에서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할 만한 자료가 구체적으로 나와 재심 결정이 빨라졌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내달 중 공판 준비기일을 열어 검찰과 변호인 쌍방의 입증 계획을 청취하고 재심에 필요한 증거와 증인을 추리는 절차를 밟기로 했다. 또 오는 3월께에는 재심 공판기일을 열어 사건을 재심리할 계획이다. 현 재판부는 내달 법원 정기인사에서 모두 인사이동을 할 가능성이 있어 정식 공판 진행은 새로 구성되는 재판부의 몫이 될 전망이다.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은 1988년 9월16일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 박아무개양(당시 13세)이  집에서 성폭행당하고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을 지칭한다. 당시 범인으로 검거된 윤씨는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상소해 "경찰의 강압 수사로 허위 자백을 했다"며 혐의를 부인했으나, 2심과 3심은 이를 모두 기각했다.

20년 동안 복역하고 2009년 가석방된 윤씨는 이춘재(57)가 범행을 자백한 이후인 지난해 11월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으며, 법원으로부터 의견 제시 요청을 받은 검찰은 한 달 후에 재심 개시 의견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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