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수(數)는 세(勢)다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1.20 09:00
  • 호수 158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실체적 힘은 다수결이다. 각종 선거나 표결에서도 수의 힘이 결과를 좌우한다. 물론 불순한 의도를 지닌 집단이 다수를 차지해 횡포를 부릴 경우 엄청난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지만, 수(數)에서 밀리면 지고 앞서면 이기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민주적 의사결정의 요체다.

지난해 한국 사회를 요동치게 했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정국은 선거법 개정안과 공수처 설치 법안에 이어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 ‘유치원 3법’까지 국회에서 통과됨으로써 우여곡절 끝에 일단락됐다. 결국 한국당은 수 싸움에 지고 여론전에서도 졌다. 당 지도부는 수적 열세 탓에 법안 저지에 실패했다고 강변하지만, 그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실질적 노력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다. 두 법안 처리를 위해 ‘4+1’ 공조가 꿈틀거릴 때 한국당이 무엇을 했는지는 왜 돌아보지 못할까. 한국당이 집권당과 손잡은 그 정치세력들을 설득해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지 못한 것은 불편하더라도 꼭 되새겨봐야 할 패인이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2019년12월23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선거법 개정안을 상정한 뒤 자유한국당 주호영 의원에게 무제한 토론을 허락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문희상 국회의장이 2019년12월23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선거법 개정안을 상정한 뒤 자유한국당 주호영 의원에게 무제한 토론을 허락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에 더해 개정 선거법과 공수처법을 지지하는 국민이 반대하는 국민보다 더 많다는 현실도 무시할 수 없다. 집권을 목표로 하는 공당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더 뼈아플 수 있다. 그럼에도 한국당은 애초부터 반대하는 국민들을 자기편으로 끌어오려는 설득의 정치를 전혀 보여주지 않았다. 광장의 깃발이나 구호가 아닌 논리의 힘으로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다. 그런 마당에 삭발을 하고 단식을 한들 무슨 효과가 있겠는가. 국민들의 마음이 가 닿지 않은 곳에서 일어나는 구호나 시위는 그저 ‘찻잔 속 태풍’이 될 뿐이다.

‘여대야소(與大野小)’ 상황에서 야당이 살려면 전적으로 국민에게 기대는 수밖에 없다. 여당이 수의 우세를 내세울 때 야당은 대중적 지지의 우위로 맞서야 한다. 이전에 DJ(김대중)가 그랬고, YS(김영삼)가 그랬다. 야당이 우군으로 삼아야 할 대중은 극단적 이념에 치우친 사람들이 아니라 야당이 잘하기를 바라고 야당이 새로워지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이다. 죽기 살기로 한다고 모든 일에서 다 잘되는 것은 아니다. 여든 야든, 방향을 잘못 잡으면 죽을 각오조차도 소용없게 된다. 지금은 국민에게 감동을 줄 일만 생각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란다. 연초 여론조사에서 한국당이 4월 총선에서 ‘절대 찍고 싶지 않는 정당’ 1위(49%)에 꼽혔다는 소식은 결코 흘려들을 수 없는 경고다.

‘공감’이 없으면 ‘감동’도 없는 것은 당연하다. 공감은 동시대를 사는 보편적 다수의 마음을 읽고 헤아리는 과정을 통해 이뤄진다. 이 단순한 이치를 놓쳤다면 이유는 간단하다. 시야가 편협하고 공감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당이 한때나마 총선 1호 공약으로 국민의 지지를 받는 공수처를 폐지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꼼수’ 지적을 받는 위성 정당 창당에 연연해하는 모습은 ‘공감’으로부터 꽤나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이제 며칠 후면 민족의 큰 명절인 설이다. 총선을 앞두고 있는 정치권에서도 자연스럽게 전국 각지에서 표출될 설 민심에 촉각을 곤두세울 것이다. 그 민심에 얼마나 진정성 있게 귀 기울이고 공감하느냐가 각 정당의 운명을 좌우할 변수가 될 수 있다. 결국 선거는 공감의 싸움이다. 공감이 수(數)를 만들고, 수가 힘을 만든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