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태근, 이 무죄는 저 무죄와 다르다
  • 노혜경 시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1.18 18:00
  • 호수 1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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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인사보복’이 ‘직권남용은 아니다’라는 대법원에게

놀래라. 무심코 있다가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안태근 전 검찰국장에 대한 무죄 취지 파기환송이라는 뉴스를 보고 너무 놀라서 찾아보니, 안 전 국장의 기소 사유는 성폭력이 아니라 직권남용이었다. 대법원은 1, 2심에서 사실로 인정된 성폭력에도 불구하고 인사발령을 ‘그 따위로’ 한 것이 보복은 아니라는 거다. 아니 보복인지 아닌지는 모르겠고, 그 일을 부하에게 시킨 것이 직권남용은 아니라는 거다. 헌법재판소의 ‘관습헌법’만큼이나 말 많을 가능성 있는 판결이다. 어디 한 번 말해 보자.

안태근 전 검사장이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안태근 전 검사장이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1심과 2심에서는 두 가지가 명백했다. 첫째 안태근의 성폭력, 둘째 인사보복. 그런데 대법원은 1, 2심의 법리 적용이 잘못되었다면서 직권남용, 즉 인사보복은 아니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이 파기환송한 주제는 두 가지다. 첫째, 이는 직권남용이 아니라 직권의 재량 범위 안에 있다. 안태근이 자기 부하에게 서 검사를 멀리 보내버리라고 한 것은 안태근의 업무재량에 속하므로 그 부하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 둘째, 검사 인사원칙 기준의 하나인 ‘경력검사 부지지청 배치제도’는 엄격한 의무조항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 제도를 위반했다고 의무에 반한 일이 될 수 없다는 이야기. 많은 것을 부수었다. 앞으로 직장 내 성폭력 피해자를 사표 내지 않을 수 없는 험지로 발령 내도 보복 아니니 괜찮다는 신호다.

1심과 2심에서 눈여겨볼 것은, 안태근의 성추행 사실이 인정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인사발령이 이상했던 이유가 바로 성추행을 숨기고자 하는 안태근의 의도 때문이라는 점이 충분히 드러나고 있다. 직장 내 성폭력은 언제나 이와 비슷하게 인사상 불이익을 주어 피해자를 내쫓고 싶어 하는 가해자의 의도가 있다. 그래서 법률상 원칙은 아닐지라도 나름 엄격하게 지켜지던 ‘배치제도’를 무시할 수밖에 없었음이 분명하게 보인다. 즉 인사보복이다.

그런데 대법원은, 안태근이 직권남용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안태근이 부하 검사에게 어떤 일반적이지 않은 인사안을 작성하게 하는 것이 업무재량 범위 안이고, 그 무리한 명을 받들어 이상한 짓을 하는 것도 담당검사의 재량이라는 것. 1심은 검찰국장 안태근이 인사담당 검사의 권한을 침해한 것으로 본 데 비해 대법 재판부는 그것은 담당검사의 재량이라고 말했다. 검찰로선 자존심 상할 일이지만 진실일지도 모르겠다. 부하 검사에게 재량권이 없다면 마구 이상한 걸 시켰다고 ‘의무 없는 일’ 시킨 것은 아닐 테니까. 검사동일체라는 말도 있으니까 말이다.

 

많은 것을 부숴버린 대법원 판결

다음, 1심에서 ‘경력검사 부지지청 배치제도’를 주로 다루기는 했지만, 검사 인사원칙집에 의하면 여성 검사를 발령할 때의 원칙도 있고 본인 의사를 물어보는 절차도 있다. 다른 원칙을 거론하지 않은 것은 저 한 가지만으로도 워낙 통상적인 인사와는 다르다는 것이 명백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대법은 딱 그 한 가지 사안만을 지목해서 반박하고 있다.

일이 이렇게 되면 말의 뒤에 들어 있는 사연과 맥락을 들여다보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대법 판결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혹시, “검찰은 한통속이기 때문에, 아니 남자 검사들은 한통속이기 때문에 인사보복 하려고 굳이 직권남용씩이나 할 필요조차 없다”라는 뜻은 아닐까? 달리 말하면 공범.

대법에게 묻고 싶은 말이 생긴다. 그 ‘조직’이 검찰 아니라면 직권을 남용한 인사보복 맞는 거지요? 그렇다면 검찰을 어떻게 해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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