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군부 힘 빼고 경제 엘리트 기 살려
  •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 (softpower@sejong.org)
  • 승인 2020.01.21 10:00
  • 호수 1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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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시대 실세들 상당수 은퇴 시켜…50~60대 전문가 그룹 중용

2008년 10월 시사저널과 세종연구소 남북한관계연구실(현 북한연구센터)이 공동 기획으로 ‘북한을 움직이는 파워 엘리트’를 보도했던 당시 상황을 복기하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와병설에 휩싸여 있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 정부를 비롯해 해외 주요 정보기관들이 베일에 가려진 김 위원장의 건강과 관련해 갖가지 해석을 쏟아낸 것은 당연했다. 만약 김정일이 갑자기 사망하고 권력의 공백이 발생한다면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 질서의 중요한 변수가 될 수밖에 없었다. 후계자가 공식 결정되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시사저널과 세종연구소가 함께 북한을 이끌어갈 권력층을 분석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판단했다. 당시 기획에서 시사저널과 세종연구소는 리제강·리용철 당중앙위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장성택 당중앙위 행정부장, 김정일의 부인 역할을 했던 김옥을 ‘핵심 4인방’으로 지목했다. 동시에 파워 엘리트 26인의 면면을 분석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새해 첫 현지지도 일정으로 평안남도 순천시 순천인비료공장을 찾았다고 조선중앙TV가 1월7일 보도했다. ⓒ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새해 첫 현지지도 일정으로 평안남도 순천시 순천인비료공장을 찾았다고 조선중앙TV가 1월7일 보도했다. ⓒ 연합뉴스

10여 년 사이 북한 권력 시스템 대폭 교체돼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지금, 북한 체제는 놀라울 정도로 변했다. 10년 사이 강산이 변한다고 하지만 북한은 강산이 아니라 최고지도부까지 거의 전면적으로 바뀌었다. 당시 외부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2008년 10월 김정일 위원장은 아들인 김정은을 후계자로 세우기로 결정하고 그해 말 군부에서부터 후계자 추대 모임을 열었다. 그러고는 2009년 4월 김정은을 국가안전보위부장이라는 공안기관 수장에 임명했다. 이는 모든 파워 엘리트에 대한 감시를 수월하게 하기 위해서다. 후계 체제 수립에 앞장섰던 리용철(심장마비)·리제강(교통사고) 당중앙위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 2010년 4월과 6월에 갑자기 사망했지만 그 결과 김정은의 권력승계에 특별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2011년 김정일 사망 직후 상당수 북한 전문가들은 김정은 위원장이 경험 부족으로 북한을 이끌어가기 힘들 것으로 봤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기우였다. 김 위원장으로의 안정적인 권력 승계가 가능했던 것은 그의 강력한 권력의지와 리더십, 김경희 등 친인척 세력 및 최룡해로 대표되는 항일 빨치산 2세대의 지원, 그리고 최고지도자에 대한 절대적 충성과 복종을 요구하는 스탈린식 정치문화, 공안기관에 의한 철저한 통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스탈린식 정치문화에서 파벌은 절대로 용납되지 않는다. 고모부 장성택이 2013년 12월 처형당한 데는 그와 그의 측근들이 24시간 감시하에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 후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영구차를 호위했던 7인은 장성택 당중앙위 행정부장, 김기남·최태복 당중앙위 비서, 리영호 총참모장, 김영춘 인민무력부장, 김정각 총정치국 제1부국장, 우동측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이었다. 이 중 장성택은 김정일이 사망한 지 2년도 지나기 전인 2013년 12월 반당반혁명 혐의로 처형됐다. 우동측은 2012년 3월 뇌출혈로 쓰러졌고, 리영호는 과거 군부가 하던 외화벌이 사업을 당과 내각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반발하다가 2012년 7월 해임됐다. 김영춘도 2018년 8월 사망했다. 김기남, 최태복, 김정각은 대략 2018년까지 고위직에 있다 지금은 모두 은퇴했다.

최고지도자의 여동생으로서 사실상 2인자 또는 3인자 지위를 갖고 있는 인물도 김경희에서 김여정으로 교체됐다. 2010년 김경희는 당중앙위 정치국 위원이었고 김여정은 2020년 현재 당중앙위 정치국 후보위원이다. 김경희가 당중앙위 경공업부를 지도했다면 김여정은 현재 노동당 핵심 부서인 조직지도부 또는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을 맡고 있다.

 

김정일 시대엔 김경희, 김정은 시대엔 김여정

김정은 시대 북한 파워 엘리트 변동 요인은 다음과 같다. 첫째, 파워 엘리트에 대한 김 위원장의 지배력 강화 차원에서 상대적으로 젊은 인사들로 교체됐다. 이 같은 세대교체 현상은 특히 군부에서 뚜렷하게 나타났다. 김영춘 전 인민무력부장, 김격식 전 총참모장 등이 2선으로 물러난 게 대표적인 예다. 둘째, 군대에 대한 최고지도자와 당의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군 수뇌부 교체와 계급 강등 등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셋째, 김 위원장의 유일독재체제 강화 차원에서 일부 간부들의 해임과 숙청이 단행됐다. 2012년 리영호 총참모장 해임, 2013년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과 측근들에 대한 숙청이 대표적 사례다. 넷째, 김 위원장의 경제·핵 병진노선 또는 경제 총력노선을 뒷받침할 인물들이 중용되거나 위상이 높아졌다. 북한이 경제·핵 병진노선을 공식적으로 천명하기 전인 2012년 2월 핵과 위성 개발 등을 담당하는 군수공업 분야 엘리트들의 군 계급이 높아진 것은 핵과 위성 보유에 대한 김 위원장의 강한 의지를 보여준다. 현재 김 위원장은 여전히 군수공업 분야 간부들에게 높은 자리를 보장하고 있다.

그리고 개혁 성향의 박봉주를 2013년 4월 총리에 임명한 것은 김 위원장의 경제 개혁과 개방 의지를 보여준다. 단적으로 박봉주에 대해서는 그가 2019년 4월 총리직에서 물러난 이후 당중앙위와 국무위 부위원장 직책을 함께 줬다. 후임자인 김재룡 내각 총리보다 지위가 높은 것이다.

김 위원장 집권 이후 노동당 중앙위 정치국 구성원의 변화를 분석해 보면 군부의 위상이 지속적으로 낮아져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2012년 4월 열린 제4차 당대표자회에서 당중앙위 정치국 상무위원 5명 중 군부를 대표하는 인사들은 최룡해 총정치국장, 리영호 총참모장 등 2명이었다. 그러나 2012년 7월 리영호 총참모장의 해임 이후 상무위원 중 군부 인사는 한 명으로 줄었으며 황병서 총정치국장 해임 이후 현재는 한 명도 없다. 인민군 총정치국장은 2012년 4월만 해도 당중앙위 정치국 상무위원 지위를 가지고 있었는데 현재는 정치국 위원에 불과하다. 김 위원장 집권 초기 총정치국장은 계급이 차수였는데 현재 대장이다. 또 다른 핵심 보직인 인민군 총참모장은 2012년 4월만 해도 당중앙위 정치국 상무위원 지위를 갖고 있었는데 현재는 정치국 후보위원 지위밖에 갖고 있지 못하다. 2012년 4월 당중앙위 정치국 위원이었던 인민무력부장(인민무력상)도 지금은 정치국 후보위원에 불과하다.

김정일 시대 최고의 국가기구였던 국방위와 그 후신인 국무위(2016년 6월 최고인민회의 제13기 제4차 회의에서 국방위가 국무위로 개편) 구성원을 봐도 군부 위상 약화 현상이 뚜렷하다. 2014년 4월 최고인민회의 제13기 제1차 회의에서 선출된 국방위 면면을 보면 김정은을 제외하고는 모두 군과 군수, 공안 분야 엘리트다. 그런데 2019년 4월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 회의에서 선출된 국무위 구성원들은 이들 외에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전·현직 내각 총리, 당중앙위 조직지도부장·국제담당 부위원장·대남담당 부위원장, 외무상과 외무성 제1부상 등이 모두 포함돼 있다. 이러한 인적 구성 변화는 김정은 위원장의 주된 관심이 그동안 안보에서 경제와 외교 분야로 이동해 온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북한은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 회의에서 국무위 제1부위원장직을 신설해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부위원장에 전 내각 총리인 박봉주 당중앙위 부위원장을 임명했다.

군부 위상 약화시키고 전문 분야 엘리트 중용

김 위원장이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에 뽑힌 2010년 제3차 노동당 대표자회의 이후 북한 지도부에서 세대교체는 매우 점진적으로 진행돼 왔다. 지난해 91세인 김영남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직에서, 89세인 최태복은 최고인민회의 의장직에서 각각 물러났다.

지난해 북한은 3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4월 당중앙위 제7기 제4차 전원회의,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 회의, 8월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2차 회의, 12월 당중앙위 제7기 5차 전원회의가 잇따라 열렸다. 그러면서 파워 엘리트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특히 베트남 하노이 회담 결렬은 북한의 비핵화 협상 라인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을 주도했던 김영철 당중앙위 부위원장과 측근들의 영향력이 급속도로 축소된 반면, 그 자리를 리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 등 외무성 간부들이 차지한 것이다.

또 지난해 3월10일 실시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대의원 선거에서는 김일성의 동생 김영주를 비롯해 최영림, 최태복, 리용무, 오극렬 등 고령 간부들이 대의원에 재선출되지 못했다. 그리고 이들은 4월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 회의에서 국가기구의 핵심 직책에도 오르지 못하면서 지도부 세대교체는 거의 완료됐다고 봐야 한다. 이 밖에도 북한은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 회의에서 상임위원장을 김영남에서 최룡해로, 내각 총리를 박봉주에서 김재룡으로 교체하는 등 큰 폭의 국가기구 지도부 개편을 단행했다. 그 결과 항일 빨치산 2세의 대표주자인 최룡해의 영향력은 더욱 커졌다. 되레 위험한 직책인 당중앙위 조직지도부장 자리를 리만건에게 넘겨주고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과 국무위 제1부위원장 자리로 옮겨감으로써 영향력이 확대됐다.

82세 김영대 전 사회민주당 중앙위원장 대신 53세로 추정되는 박용일이 위원장으로 뽑힌 지난해 8월29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2차 회의 역시 세대교체의 의미로 해석된다. 또 지난해 12월28일부터 4일간 열린 당중앙위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는 당중앙위 정치국과 정무국 간부 상당수가 교체됐다. 북한에서 당중앙위 전원회의는 당대회 다음으로 중요한 정치행사다. 그동안 북한은 이 회의를 통해 경제·핵 병진노선, 경제 총력노선과 같은 굵직한 정책이나 대규모 인사 교체를 실시해 왔다.

북한은 이번 전원회의에서 새로 선출·임명된 인사의 명단을 발표했다. 반대로 소환·해임된 인물이 누구인지는 공개하지 않아 아직까지 자리 변동 여부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다. 지금으로선 올 1월1일자 노동신문에 실린 전원회의 참석자 기념사진을 토대로 살펴볼 수밖에 없다.

이번 인사 역시 세대교체가 특징이다. 만 71세의 박광호가 맡고 있던 선전선동부장에는 만 60세의 리일환 전 근로단체부장이 임명됐다. 만 84세인 태종수가 맡았던 당중앙위 군수공업부장은 만 72세의 리병철 전 군수공업부 제1부부장으로 교체됐다. 전(前) 항공 및 반항공군 사령관으로 당중앙위 군수공업부에서 핵과 미사일 개발에 깊숙이 관여해 온 리병철의 당중앙위 정치국 위원 승진, 당중앙위 부위원장·군수공업부장 임명은 전략무기 개발에 대한 김정은 위원장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듯하다. 만 80세의 리수용이 맡았던 당중앙위 국제부장은 만 71세인 김형준 전 러시아 대사로 바뀌었다. 또 만 72세의 안정수가 맡았던 당중앙위 경공업부장에는 만 59세의 김덕훈 내각 부총리가 임명된 것으로 추정된다. 내각 부총리 겸 국가계획위원회 위원장 자리도 만 70세의 로두철에서 상대적으로 젊은 김일철 전 국가계획위 부위원장으로 교체됐다.

외무성도 유럽 라인 빼고 러시아 라인 중용

지난해 총참모장과 인민무력상에 임명된 박정천과 김정관이 당중앙위 정치국 위원이 되지 못하고 후보위원에 이름을 올렸다는 점은 군부 위상 강화에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김정관은 과거 김정은 위원장의 려명거리 건설장,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건설장 현지지도 등에 자주 동행한 인물이다.

유럽 외교 라인이 몰락하고 러시아 라인이 대거 임명된 것도 주목받는다. 우리 정보당국은 주스위스 대사를 지낸 리수용이 당중앙위 국제부장에서 해임된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주영국 대사를 지낸 리용호도 김정은 위원장과 전원회의 참석자들이 함께 찍은 사진에 나오지 않았다. 반대로 주러시아 대사를 지낸 김형준의 당중앙위 국제부장 임명은 우방인 러시아와의 관계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이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직에 임명됐을 가능성도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김여정은 북한 엘리트와 당원, 주민에 대한 정치사상 학습을 전담하는 선전선동부에서 제1부부장직을 맡고 있었다. 그런 김여정을 다시 제1부부장에 임명했다는 것은 소속 변경 가능성을 시사한다. 만약 김 위원장이 김여정을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직에 임명했다면 이는 그가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을 포기한 상황에서 경제 악화를 우려하는 내부 동요를 적극 통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2010년 4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건군절’ 78주년을 맞아 군사훈련을 참관하고 있다. ⓒ 조선중앙통신 연합
2010년 4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건군절’ 78주년을 맞아 군사훈련을 참관하고 있다. ⓒ 조선중앙통신 연합

달라진 파워 엘리트 분석

시스템보다는 자신을 중심으로 북한 체제를 권위주의적으로 통치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94년 아버지 김일성으로부터 권력을 승계받은 이후 당중앙위 정치국 위원이나 후보위원직에 결원이 생겨도 이를 거의 대체하지 않았다. 따라서 김정일 시대에는 당중앙위 정치국 위원과 후보위원들에 대한 분석만 갖고 파워 엘리트를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김정일 시대 파워 엘리트의 영향력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최고지도자와의 개인적 관계(형제, 친인척 등), 파워 엘리트가 속한 조직의 위상·역할·지위, 핵심 요직의 겸직 여부, 각종 행사에서의 주석단 서열, 최고지도자의 공개 활동 시 수행 횟수 등을 고려해야만 했다. 물론 이러한 요소들은 지금도 북한 파워 엘리트의 영향력을 파악하는 데 유용하게 쓰인다. 다만 지금은 해당 인사가 당중앙위 정치국에서 어떤 지위와 직책을 갖고 있는지만으로도 영향력을 파악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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