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년 만에’ 여순사건 민간인 희생자 재심서 무죄
  • 호남취재본부 박칠석·전용찬 기자 (sisa613@sisajournal.com)
  • 승인 2020.01.21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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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판결집행, 위법한 공권력”…첫 무죄 선고 각계 ‘환영’
“민간인 희생자 명예회복·진상 규명 위한 특별법 제정해야”

1948년 여수·순천 사건 당시 사형을 당한 민간인 희생자가 72년 만에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법원의 첫 재심 무죄 선고 소식이 전해지자 전남도를 비롯한 지자체, 정치권, 시민단체 등이 일제히 환영하고 나섰다. 특히 이들은 여순사건 민간인 희생자들의 명예회복과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영록 전남도지사가 2018년 10월 19일 오전 여수시 이순신광장에서 열린 ‘여순사건 70주기 희생자 합동 추념식’에서 추모사를 하고 있다. ⓒ전남도​
​김영록 전남도지사가 2018년 10월 19일 오전 여수시 이순신광장에서 열린 ‘여순사건 70주기 희생자 합동 추념식’에서 추모사를 하고 있다. ⓒ전남도​

재판장 “억울한 피해, 이제 바로잡아 송구”

광주지법 순천지원 형사합의1부(부장판사 김정아)는 20일 여순사건 민간인 희생자 재심 선고 공판에서 여순사건 당시 철도기관사로 일하다 반란군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사형당한 민간인 장환봉씨(당시 29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장 씨에게 적용한 내란과 국권 문란죄에 대해 “범죄 사실이 증명되지 않았다”며 “사법부 구성원으로 이번 판결의 집행이 위법한 공권력에 의한 것이었음을 밝히며 사과드린다. 여순사건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특별법이 제정돼 구제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번 무죄판결은 ‘여수, 순천 시민들을 반란군에 협조했다’는 누명을 씌워 제대로 된 범죄증명 절차도 거치지 않고 사형시킨 것에 대해 국가의 잘못이 명백하다는 것을 사법부가 인정한 것이다.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19일 여수에 주둔하던 국방경비대 제14연대 소속 군인 일부가 제주 4·3사건 진압을 위한 제주 출병을 거부하면서 발생한 사건이다. 이후 정부군의 진압과 사후 토벌과정에서 무고한 민간인과 군경 일부가 희생됐다. 장환봉 씨는 1948년 10월 국군이 반란군으로부터 전남 순천을 탈환한 뒤 반란군을 도왔다는 이유로 체포돼 22일 만에 군사법원에서 내란 및 국권 문란죄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고 바로 형이 집행됐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여순사건을 직권조사해 군경이 순천지역 민간인 438명을 반군에 협조·가담했다는 혐의로 무리하게 연행해 살해했다고 인정했다. 이에 장씨 유족 등은 2013년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으며, 대법원은 지난해 3월 당시 장 씨가 적법한 절차 없이 체포, 구속됐다고 보고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남은 과제는 ‘진실규명’ 

여순항쟁 71주년 민간인 희생자 합동 추념식 ⓒ여수시
여순사건 71주년 민간인 희생자 합동 추념식 ⓒ여수시

장 씨에 대한 재심 무죄 판결 소식이 전해지자 각계각층의 환영이 잇따랐다. 김영록 전남지사는 20일 성명서를 내고 “여순 사건 민간인 희생자에 대한 재심 무죄판결을 200만 전남도민과 함께 환영한다”고 밝혔다. 김 지사는 “앞으로 여순 사건 유족의 아픔이 조금이나마 덜어지려면 국가에 의한 학살을 인정하고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며 “민간인 희생자와 유족의 아픔을 달래고 명예가 회복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김 지사는 “전남도와 국방부 자료에 의하면 당시 1만여명이 넘는 지역민이 희생됐다”며 “국회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여야가 힘을 모아 여순사건 특별법 제정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권오봉 여수시장도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여순사건 민간인 희생자에 대한 재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 판결을 한 것에 대해 30만 여수시민과 함께 환영한다”며 “이번 판결을 계기로 5개 특별 법안이 조속히 상정돼 그동안 고통받았을 유가족과 후손들의 아픔이 조금이나마 치유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허석 순천시장은 “여순 항쟁의 역사 바로 세우기는 이제야 비로소 첫걸음을 떼었다고 볼 수 있다”며 “국회와 정부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여야가 힘을 모아 여순항쟁 특별법 제정에 나설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주승용 국회부의장은 “국가가 민간인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면 이를 구제할 여순사건특별법을 제정할 수밖에 없는 당위성을 가지게 된 것”이라며 “법원의 올바른 결정에 이어, 이제는 국회가 특별법을 하루속히 제정해서 잘못된 과거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남도의회 여수순천 10·19사건 특별위원회는 “여순사건은 국가폭력으로 인한 무고한 민간인들이 무차별적으로 억울하게 학살당한 사건으로 긴 세월 유족들은 통한의 세월을 견뎌 왔다”며 “이번 판결을 계기로 국회에 계류 중인 특별법이 하루속히 제정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여순사건 재심대책위원회는 이날 광주지법 순천지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사법을 가장한 민간인 학살의 부당함을 판결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어 “1948년 당시 민간인에 대한 군법회의에서 유죄를 받은 분들이 최소 3000명에서 5000명에 이른다”며 “사법을 가장한 국가권력의 폭력에 신음해야 했던 분들을 구제하는 일이 지역사회의 책무로 남았다”고 강조했다.

진상 규명을 위해선 “불법·위법에 의해 학살된 여순사건 민간인 희생자들의 명예회복과 여순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행정부와 입법부가 여순사건 특별법을 제정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여순민중항쟁 전국연합회도 순천지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72년 전 내란죄와 국권문란죄로 돌아가신 46명과 여순민중항쟁으로 돌아가신 희생자 영령에게 무죄 판결이라는 단초를 제공한 것”이라며 환영했다. 이들은 “억울한 죽음을 추모할 수 있는 위령탑을 국가와 지자체가 앞장서 추진해달라”며 “여순민중항쟁특별법 제정으로 진상 조사와 명예회복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남 시민단체연대회의도 “여순사건 당시 국가 폭력으로 인한 무고한 민간인들의 집단 희생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역사적인 판결”이라며 “희생자 및 유족의 명예회복, 사건 진상규명의 소중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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