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 퇴직자 취업 업체, 전자우편 사업 15년 독점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0.01.22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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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8년 ‘e-그린우편’ 사업 독점...우정본 퇴직자들 임원으로 고용
우정본 “사업 안정적 성장 위해”...업체 “사업 투자금도 다 회수 못해”

교통범칙금 고지서, 세금납부 고지서, 주주총회 공고문 등은 인터넷이 발달한 지금도 꼭 받게 되는 우체국 우편물이다. 이를 취급하는 우정사업본부 사업을 특정 민간업체가 15년간 독점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에다 우정사업본부 출신 공무원이 해당 업체에 재취업한 사례도 발견됐다. 

독점 사업의 정확한 명칭은 ‘e-그린우편’이다. 편지 내용물을 우체국에 알려주면 제작부터 배달까지 대신해주는 서비스다. 관공서나 공공기관뿐만 아니라 사기업, 개인 등도 이용할 수 있다. 1997년에 시작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해 평균 배송 건수는 1억 5000여만 통에 달한다.  

우정사업본부 e-그린우편 서비스를 통해 발송된 우편물 ⓒ 우정사업본부 블로그
우정사업본부 e-그린우편 서비스를 통해 발송된 우편물 ⓒ 우정사업본부 블로그

 

포스토피아, 15년간 1800억원대 사업 독점 유치

우정사업본부는 e-그린우편 위탁 사업자를 2003년에 공개 입찰했다. 최종 낙찰자는 그해 설립된 신생업체 ‘포스토피아’였다. 이후 2018년까지 독점 체제가 유지됐다. 매년 수십억원의 정부 예산이 투입됐는데, 15년간 위탁 사업비를 모두 합하면 약 1882억원으로 추정된다. 이에 동종업계는 지난해 11월 포스토피아와 우정사업본부 관계자를 입찰방해 등 혐의로 고소한 상태다.

그 사이 포스토피아는 우정사업본부 퇴직자를 임원으로 고용하기도 했다. 민간업체가 퇴직 공무원을 내세워 정부 기관에 영향력을 행사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시사저널이 1월20일자 포스토피아 등기부등본 등을 통해 확인한 결과, 2018년 6월 회사 부사장으로 서울강서우체국장 출신 정아무개 전 서기관이 취직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12월에 퇴직한 지 6개월 만이다. 그를 포함해 포스토피아 전·현직 임원 중 우정사업본부 출신 공직자로 확인된 사람은 부이사관(3급) 1명, 서기관(4급) 3명, 사무관(5급) 1명 등 5명이다. 

포스토피아 임원 고용현황 ⓒ 포스토피아 등기부등본 등 취합
포스토피아 임원 고용현황 ⓒ 포스토피아 등기부등본 등 취합

 

공직자 윤리법에 따르면, 4급 이상 일반직 공무원은 취업제한 심사대상이다. 이들은 취업승인을 받지 않는 이상 퇴직일로부터 3년 간 공직과 관련 있는 ‘취업제한기관’에 취업할 수 없다. 포스토피아는 인사혁신처에 의해 취업제한기관으로 분류돼 있다. 

우정사업본부 측은 ‘문제없다’는 취지로 얘기했다. 우편사업과 관계자는 1월20일 “취업심사 대상자들은 정식 심사를 거쳐 취업승인을 받았다”고 했다. 김아무개 포스토피아 대표는 1월21일 “(회사에 취업한 퇴직 공무원들이) 고위급은 아닌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퇴직 공무원이 취업한 이유에 대해서는 “우편 사업은 사실상 국가 독점 사업인데, 우리가 위탁 사업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지 방법을 배우고자 데려온 것”이라고 해명했다. 

 

우정본 "안정 성장 위해"… 조달청 "들은 바 없다"

우정사업본부 측은 포스토피아의 ‘15년 사업 독점’ 배경에 대해 “전자우편(e-그린우편) 사업의 안정적 성장을 위해서”라고 주장했다. 독점 계약을 마친 뒤에는 조달청으로부터 “법적 문제가 없어보이나 자세한 내용은 검토해봐야 할 것 같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국가계약법)에 따르면, 수의계약을 할 수 있는 경우에 ‘안정적 성장’이란 항목은 없다. 조달청 관계자는 “특정 사업의 성장을 위해 수의계약을 허락했다는 얘기는 들은 바 없다”고 밝혔다.

우편사업과 관계자는 “전자우편 제작센터의 지방 확대작업이 2017년에 끝났고 관련 경쟁업체도 들어오면서 2019년부터 공개입찰로 전환하게 됐다”고 했다. 부산의 한 경쟁업체 관계자는 “우리는 포스토피아보다 더 일찍 사업을 시작했다”면서 “2016년에도 입찰 참가 의사를 밝혔지만 (우정사업본부가) 입찰 공고를 내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포스토피아의 김 대표는 공개입찰 때문에 회사가 위기에 처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까지 e-그린우편 위탁사업을 수행하면서 쏟아 부은 투자금도 다 회수하지 못했다”라며 “공개입찰로 바뀌면서 직원마저 내보내야 할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국가가 중소기업의 성장을 도와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토로했다. 

한편 e-그린우편 공개입찰이 시작된 지금도 포스토피아는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정사업본부는 지난해 5~9월 전국을 9개 사업권으로 나눠 e-그린우편 제작사업 위탁업자를 뽑는 공개입찰을 진행했다. 조달청에 따르면, 9개 사업권 중 포스토피아가 낙찰된 곳은 수도권A, 부산, 전주, 원주 등 4곳이다. 이들 지역 사업에 들어간 예산은 164억원, 전체 예산의 39%다. 포스토피아가 따낸 예산이 경쟁업체들 중 가장 많은 셈이다.  

또 우정사업본부는 e-그린우편 제작사업과 별도로 전국을 단일 사업권으로 하는 e-그린우편 편집·배부 서비스 위탁업자도 입찰 공고했다. 예산 규모는 87억원이다. 입찰 결과 ‘한국전산홈’이란 업체와 수의계약을 맺게 됐다. 이 업체는 포스토피아의 지분 78%를 보유한 모기업으로 알려졌다. 포스토피아의 김 대표가 지난해 초까지 한국전산홈에서도 대표를 지냈다. 이번 입찰 이후 두 회사는 합병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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