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남 “허세 있었던 톱모델 시절…지금이 훨씬 행복하다”
  • 하은정 우먼센스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2.01 10:00
  • 호수 1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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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주: 사라진 VIP》로 첫 주연 맡은 ‘배간지’ 배정남

2002년 모델로 데뷔한 배정남. 176.9cm의 다소 작은 신장으로 톱모델이 됐다. 특유의 반항적인 이미지와 진보한 패션 감각, 찰떡 소화력으로 당시 ‘배간지’라는 닉네임으로 남성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의 스트리트 패션 컷은 옷 좀 입는다는 남성들에게는 ‘패션 교본’과 같은 대우를 받았다.

이후 그는 배우로 변신을 시도했으나 긴 슬럼프를 겪었다. 하지만 그 끈을 놓지 않고 계속해서 문을 두드렸다. 영화 《시체가 돌아왔다》(2012), 《베를린》(2012), 《마스터》(2016), 《보안관》(2017)까지 단역이지만 차곡차곡 필모그래피를 쌓았고,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2018)을 통해 대중들에게 ‘연기자’로 얼굴 도장을 찍었다. 그사이 거칠지만 인간미 넘치는 입담으로 예능까지 접수했다. 그런 그가 드디어 스크린 주연을 꿰찼다. 영화 《미스터 주: 사라진 VIP》(이하 《미스터 주》)는 국가정보국 에이스 요원 태주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온갖 동물의 말이 들리면서 펼쳐지는 사건을 그린 코미디 영화로, 배정남은 극 중 의욕 과다 요원 만식 역을 맡았다. 전작인 영화 《보안관》(2017)에서 호흡을 맞추고 각종 예능에서 돈독한 선후배 케미를 자랑한 이성민과 재회해 눈길을 끈다.

첫 주연작을 대하는 배정남의 마음은 복잡 미묘했다. 설레지만 두렵고, 민망하지만 기분이 끝내주게 좋다는 것.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버스 광고판에서 자신의 얼굴이 있는 영화 포스터를 볼 때마다 감개무량하다는 것이다. 사투리가 난무했던 배정남과의 인터뷰는 그 진심이 전해진 인터뷰였다.

ⓒ YG케이플러스 제공
ⓒ YG케이플러스 제공

드디어 ‘주연’을 맡았다. 기분이 어떤가.

“포스터에 내 얼굴이 나온 건 처음이다. 좋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다. 완성된 영화를 보니 아쉬운 것도 많고 행복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감정이 들더라. 책임감도 많이 생겼다. 버스에 붙어 있는 내 사진을 사람들이 찍어서 보내주는데, ‘우짜다 이래 됐지’ 싶다(웃음). 그러고 보면 모델부터 지금까지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은 지 19년이 됐다. 잘 버틴 것 같다. 일이 안 들어올 때도 있었는데 그때도 계속 몸을 만들고 준비를 했다. 그러다가 예능인 《라디오스타》와 《무한도전》 나오면서 내 진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악착같이 버틴 게 도움이 됐다.”

 

배우로서 의미가 남다를 것 같다.

“영화배우로서 이 작품은 내가 발걸음을 뗐다고 생각하는 작품이다. 주변 분들도 성장하고 있다는 말씀을 해 주신다. 앞으로 더 나아지겠다고 확신을 가지고 말씀드리고 싶다. 나아지지 않으면 그만둬야 한다. 차근차근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당분간은 내가 잘하는 것을 많이 해 보려고 한다. 안 맞는 것을 억지로, 무리하게, 급하게 하면 오히려 체할 수 있다. 감독님들이 ‘너는 너 자체가 캐릭터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라’고 응원을 많이 해 주신다. 서두르지 않을 생각이다.”

 

완성된 영화를 보고 처음엔 ‘멘붕’이 왔다고 들었다.

“기술 시사를 통해 처음 봤는데, 분위기가 삭막하더라. 따뜻하고 유쾌한 코미디 영화인데, 웃기는 포인트에서 아무도 안 웃는 거다. 땀이 뻘뻘 났는데, 나중에 물어보니 기술 시사는 원래 그렇다고 하더라. 다행인 건 일반 시사회에서 일반 관객들은 많이 웃으셨다고 해서 걱정을 덜었다.”

 

예능 출연과 감초 연기로 코믹 이미지가 강하다.

“나는 예능형 배우다. 한 가지로 규정하고 싶지 않다. 그냥 사람들이 보는 대로 보는 게 편하다. 망가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없다. 더 하라면 할 수 있었다. 잘되면 잘될수록 단순무식하게 살자는 생각이다. 예능에 출연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내가 뭘 하면 잘 웃어주시더라. 복이라고 생각한다. 멋있는 캐릭터도 당연히 하고 싶지만 당장 바꾸려고 하면 보는 사람들도 못 받아들일 거다. 이제 걸음마 단계다. 실망 안 시켜 드릴 자신이 있으니 지켜봐 달라.”

 

20대 모델 시절에는 ‘간지’의 대명사였다.

“지금이 훨씬 행복하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그 시절엔 ‘허세’와 ‘신비주의’가 있었다. 망가지는 게 두려워서 사투리가 나올까봐 공식 석상에서 말도 거의 안 했다. 한데 요즘엔 나를 놓고 지내니 너무 편안하고 행복하다. 주변 사람들도 더 편안해한다. 그렇게 친근하게 다가와 주니 좋고, 멋진 것보다 동네 오빠, 형 같은 이미지가 더 좋다. 곧 내 나이도 마흔이 된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싶고, 두려울 것도 없다.”

 

내려놓게 된 계기가 있었나.

“영화 《보안관》을 찍으면서 달라졌다. 함께 촬영을 하고 홍보를 하는데, 형들이 ‘네 모습 그대로 해라’라고 하더라. 형들은 내 진짜 모습이 오히려 좋다고 해 주셨다. 그게 계기가 됐고, 형들에게 많이 의지했다.”

 

이성민과 《보안관》 이후 재회했다.

“사실 《미스터 주》 출연도 ‘행님’의 추천으로 시작됐다. 함께 영화를 찍어서 정말 영광이고 많이 배웠다. 돈 주고도 사지 못할 공부를 했다. 그동안 그냥 서 있는 역할만 하다가 대사도 많고 배우들과 함께 호흡을 맞추니까 이게 영화구나 싶더라. 얼마 전에 행님이 출연한 《남산의 부장들》 시사회에 다녀왔는데, 우리 행님은 정말 대단하더라. 대한민국에서 코미디와 정극을 다 잘하는 배우가 어디 흔한가. 평생 못 따라가겠지만 조금씩 배우고 있다.”

 

배정남에게 이성민이란.

“단순한 관계를 넘어선 느낌이다. 잘 몰랐을 땐 그저 존경하는 선배였고 좋아하는 배우였다. 근데 알면 알수록 인간적인 모습에 더 빠졌다. 행님은 늘 주변 사람들에게 베푼다. 예를 들면 팀마다 회식을 다 시켜 주신다. ‘오늘은 제작부 남아~’ ‘오늘은 미술팀~’ 하면서 모든 스태프를 챙긴다. 그런 사람이 어디 흔한가? 나도 잘될수록 행님이 하는 것처럼 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얼마 전 공개된 강동원의 첫 브이로그 ‘강동원&친구들, Viva L.A Vida’에 출연해 화제가 됐다. 강동원도 배정남이 모시는 ‘행님’ 중 한 명 아닌가.

“당시에 스케줄이 엄청 바빴다. 잠도 제대로 못 자서 컨디션이 안 좋았지만, 강동원 행님이 부르니깐 갔다. 다른 사람이었으면 거절했을지도 모른다. 행님이 예능을 안 해 봐서 그런지 브이로그를 찍고 있긴 한데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기에 내가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열심히 했다. 행님이 맛있는 식당에 많이 데려가 줬다. 피곤했지만 행님이랑 맛있는 거 먹을 때가 제일 좋았다(웃음).”

 

유독 ‘행님’들에게 사랑을 많이 받는 것 같다.

“솔직해서 그런 것 같다. 편하고 마음이 맞는 형들만 ‘행님’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행님’이라는 호칭은 정(情) 혹은 정겨움 같은 것이다. 불편하면 ‘선배’ 혹은 ‘형님’이라고 부른다.”

 

살아오면서 삶의 변화를 겪은 시기가 언제인가.

“공장 일 하다가 다쳤을 때. 안 다쳤으면 아마 계속 거기 있었을 거다. 다쳐서 옷가게에서 일하게 된 거고 모델로도 데뷔하게 됐다. 그리고 스물 네다섯 살 때, 모델로서도 잘나갔고 대형 기획사에서도 데려가려고 했었다. 그때 드라마 주인공도 땄는데 엎어지고 큰 좌절감을 겪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에 그 드라마가 잘됐으면 그 무게감을 못 이겼을 것 같다. 어린 나이에 부와 명예를 안고 나 잘난 맛에 살았을 것이다. 그때부터 조급한 마음이 줄어들었다. 천천히 가자 싶었다.”

 

배우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나 바람이 있나.

“오래 하고 싶다. 해 보고 나니 더 욕심이 생긴다. 이제 열심히 보다 잘해야 한다는 것도 안다. 찾아만 준다면 하는 데까지 끝까지 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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