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천재 윌리엄 존스를 아시나요? [로버트 파우저의 언어의 역사]
  • 로버트 파우저(Robert J. Fouser) 독립학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2.04 11:00
  • 호수 1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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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학 토대 구축한 비교언어학 아버지, 제국주의 지배에 역할 하기도

인류 역사상 18세기는 말에 여러모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난 시기다. 산업혁명이 일어났고, 미국의 독립과 건국이 이 시기에 이루어졌다. 프랑스 혁명 역시 이 무렵이었다. 과학을 비롯한 여러 학문의 발전도 눈부시게 이뤄졌다. 언어 연구 역시 이 시기에 크게 발전해 현대 언어학의 학문적 토대가 본격적으로 형성되었다.

이 시대 언어학 발전을 이야기하려면 영국인인 윌리엄 존스(Sir William Jones·1746~1794)경을 빼놓을 수 없다. 그의 이력을 간단히 살펴보면 이렇다. 유명한 수학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외국어 공부를 즐겨 했다. 모어인 영어는 물론 웨일스어, 라틴어, 고전 그리스어, 히브리어, 아랍어, 페르시아어 등에 능통했고 심지어 한자까지도 섭렵했다. 옥스퍼드대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법학을 다시 공부해 변호사가 되었다. 1783년 영국이 동인도회사를 통해 인도를 식민지로 삼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을 무렵에는 캘커타(오늘날의 콜카타)에 판사로 파견되었는데, 그는 캘커타에 도착한 직후부터 산스크리트어를 공부하더니 1784년에는 벵갈아시아학회(Asiatic Society of Bengal)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인도에 머무르는 동안 언어 공부를 꾸준히 했음은 물론이다. 유창하게 사용하는 언어는 8개, 어느 정도 능숙하게 사용하는 언어는 12개 정도였을 정도로 그는 역사에 남을 언어 천재였다. 고전 아랍어의 시를 비롯해 《시경》의 일부와 산스크리트어 연극인 《샤쿤탈라》 등의 번역에도 힘을 쏟았다.

영국인인 윌리엄존스(Sir WilliamJones·1746~1794)경 ⓒ 위키백과
영국인인 윌리엄존스(Sir WilliamJones·1746~1794)경 ⓒ 위키백과

8개 언어 유창하게, 12개 언어 능숙하게 사용한 ‘언어 천재’

하지만 언어학계에서 그를 주목하는 이유는 단지 여러 언어를 능숙하게 구사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1786년 아시아학회에서 그는 매우 중요한 연구 성과를 발표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산스크리트어가 그리스어와 라틴어만이 아니라 게르만족의 언어인 켈트어는 물론 페르시아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발견해 이 모든 언어를 인도유럽어(Indo-European)라는 상위 범주에 포함시켰다. 그는 각각의 언어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어휘 분석을 통해 언어와 언어 사이의 관계를 밝혔는데, 그의 이러한 연구는 비교언어학의 기초적 방법이 되었다. 이로써 존스는 명실상부 비교언어학의 아버지가 되었다.

그 이전에도 유럽의 언어, 산스크리트어, 페르시아어 사이에 일정한 관계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기는 했다. 그러나 존스의 발표는 막강한 파급력을 가지고 있었고, 이로 인해 언어학의 패러다임에 매우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다. 이로써 19세기 언어학 분야에서는 인도유럽어의 여러 언어 사이 비교연구는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언어 간의 역사적 관계에 대한 연구가 매우 활발해졌다. 비록 20세기 후반에 접어든 뒤로는 언어학의 범위가 매우 넓어지면서 비교언어학의 비중은 낮아졌지만 존스가 만들어놓은 언어학 연구의 토대는 여전히 유효하다.

 

고유한 어휘 분석해 언어 사이 관계 증명

존스가 개발한 비교언어학 연구 방법의 핵심은 각 언어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어휘를 분석하는 것이다. 서로 다른 언어에서 어순과 문법, 발음 체계가 비슷한 것은 우연일 수 있다. 그렇지만 수많은 어휘를 통해 일정하고 체계적인 유사성이 발견된다면 각 언어 사이의 관계를 증명해 낼 수 있다. 예를 들면 인도유럽어에서 ‘어머니’라는 뜻의 단어는 대부분 알파벳 ‘m’으로 시작한다. 그 뒷부분도 거의 흡사하다. 하지만 흔히 어순이 비슷할 뿐만 아니라 한자어를 사용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한국어와 일본어의 경우 고유한 어휘 중 비슷한 것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비록 어순이 같긴 하지만 한국어와 일본어는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언어와도 특별한 관계성을 발견하기 어렵다. 이처럼 다른 언어들과의 관계가 드러나지 않는 언어를 ‘고립어’라고 하는데 한국어와 일본어는 각각 고립어이면서 비슷한 부분이 많다는 점, 그래서 서로의 언어를 배우기에 수월하다는 점은 언제나 흥미로운 지점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많은 한국인이 가장 배우기 쉬운 외국어로 일본어를 꼽고 있으며, 일본인에게도 가장 배우기 쉬운 외국어는 한국어다.

19세기 비교언어학 연구의 열풍이 한창일 당시 몽골어와 만주어, 터키어, 그리고 일본어 사이에 일정한 관계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 바가 있긴 하다. 아울러 서양에서 한국어 연구를 시작하던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한국어가 몽골어, 만주어, 터키어, 그리고 일본어와 같은 ‘알타이 언어(Altaic language)’에 속한다는 주장도 등장했다. 많은 학자가 어순과 문법 체계, 발음 등에서 드러나는 현상을 통해 공통점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고유한 어휘에서 공통점을 찾지 못한 탓에 그저 확인할 수 없는 가설로 남았고, 이 가설과 관련해서는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논란이 일면서 활발한 연구로 이어지고 있다.

윌리엄 존스의 얼굴은 하나가 아니다. 언어학자로서의 윌리엄 존스가 하나의 얼굴이라면 오리엔탈리스트라는 정체성 역시 그의 얼굴이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명작 《오리엔탈리즘》은 1980년대 이후로 오늘날까지 한국의 수많은 독자에게 영향을 미쳐왔다. 이 책의 곳곳에 언급되는 인물이 바로 윌리엄 존스다. 이 책에 따르면 인도에 도착한 이후 열정적으로 언어 연구에 매진한 존스의 행위는 대영제국주의의 지배 활동의 일환이었다. 인도를 식민지로 삼기 위한 영국의 지배 전략 중 존스의 언어 연구가 포함되어 있고, 나아가 제국주의를 합리화하기 위해 활용된 측면이 없지 않다. 다시 말해 인도의 언어에 관심을 가졌던 학자로서의 존스의 순수한 마음과는 별개로 그가 인도에 발을 디딘 출발점이 바로 제국주의의 지배 계획에서 비롯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명작 《오리엔탈리즘》
에드워드 사이드의 명작 《오리엔탈리즘》

시대 상황 속에서 서양 제국주의의 역사와 맞물려

비교언어학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는 윌리엄 존스는 수많은 외국어를 공부하고 언어학 분야에서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역사적인 업적을 남겼다. 그렇지만 그가 살았던 시대는 그를 순수한 학문적 열정에 사로잡힌 학자로만 살게 하지 않았다. 그의 학문적 업적은 영국이 제국주의 침략의 거점으로 삼았던 캘커타에서 탄생했고, 존스는 인도의 언어 문화를 제국주의자의 시선을 통해 세계로 발신했다. 이로써 그는 비교언어학의 아버지인 동시에 오리엔탈리즘의 아버지가 되었다. 이처럼 매우 모순적인 존재가 될 수밖에 없던 존스의 ‘두 얼굴’은 그러나 언어학 역사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하나의 언어가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건너가고 이동하는 과정은 어쩔 수 없이 서양 제국주의로 인한 ‘언어의 발견과 전파’의 역사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언어학 역시 다른 학문과 마찬가지로 시대와 상황의 흐름 속에 놓여 있다. 이 때문에 우리가 윌리엄 존스를 통해 만날 수 있는 것은 언어학의 역사를 뛰어넘어 그가 살아야 했던 시대와 역사가 만들어낸 더 큰 그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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