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어려웠던 시절,
그날도 선생님은 어김없이
두 개의 도시락을 가져오셨읍니다.
어느때는 그중 한 개를 선생님이 드시고
나머지를 우리에게 내놓곤 하셨는데,
그날은 두 개의 도시락 모두를 우리에게 주시고는
“오늘은 속이 불편하구나” 하시며
교실 밖으로 나가셨읍니다.
찬물 한 주발로 빈 속을 채우시고는
어린 마음들을 달래시려고
그 후 그렇게나 자주 속이 안 좋으셨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은 긴 세월이 지난 뒤였읍니다.
선생님의 도시락으로 배를 채우고
선생님의 사랑으로 마음을 채운 우리는,
이제 50고개를 바라보는 왕성한 중년들.
그 옛날 선생님의 꿈나무였던 우리는
기업에서, 교단에서,
공직에서, 농어촌에서,
연구기관에서, 봉사단체에서
나름대로 사람 값을 하고자 열심히 살고 있읍니다.
살아계신다면,
걸어오신 칠십 평생이 한 점 티 없으실,
그래서 자랑과 보람으로 주름진 선생님의 얼굴에
아직도 피어계실 그 미소를 그리면서
그때의 제자들이 다시 되고픈 마음입니다.
한글맞춤법이 ‘~습니다’로 바뀌기 이전의 ‘~읍니다’로 쓰던 시절, ‘오늘은 속이 불편하구나’란 제목으로 유명했던 쌍용그룹의 일명 ‘도시락 광고’ 카피 전문이다. 당시 이 광고는 비싼 일간지 전면광고임에도 판매할 제품은 일체 언급 없이 기업 이미지만 개선시키는 파격과 함께 카피가 가진 애틋함이 중년들의 심금을 울리면서 기업 광고의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카피라이터의 마음을 훔친’ 《광고, 다시 봄》의 ‘봄’은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담고 있다. 위처럼 감동을 주는 세계의 명품 광고들을 다시 본다는 뜻, 그리고 그 광고들의 카피와 비쥬얼을 30년 광고쟁이로 살아온 저자 자신의 일상과 엮어 맛나게 풀어내는 글을 읽으면서 어느새 갖게 되는 희망과 꿈의 계절로서 봄이다. 저자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겨울에서 봄 사이, 다시 봄’을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는 모데라토, 긴장을 놓치지 않는 걸음걸이로 걸으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답을 광고로부터 찾는다.
엄마와 함께 봄맞이로 갔던 빨래금지 동네 목욕탕과 가수 싸이가 부르는 금호타이어 광고송 ‘좋은 날이 올 거야’가 주는 새봄의 메시지, 가을이면 단풍잎 넣은 새 창호지를 방문에 입혔던 어린 시절과 과장이 아닌 진심으로 돌아가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였던 어느 아파트 광고, 5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의 가장 특별한 선물은 ‘당신이라는 존재 자체’라는 눈물의 몰래카메라가 설치된 이 책에는 인생 사계에 불쑥불쑥 박혀있는 희로애락을 넘어가는 지혜가 있다.
다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랑 하나만으로 산다. 이 책의 사계를 관통하는 것은 사랑이다. ‘여보, 아버님 댁에 보일러 놓아드려야겠어요’에 흐르는 그 사랑!
사족, 본질이 진심이고 그 본질에 육박하면 따라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 이미지다. 본질은 진심이 아니거나 변하지 않으면서 이미지만 바꾸려는 노력은 사기(詐欺)나 다름없다. 4·15 총선에 당선의 꿈을 안고 출마하는 후보들이 바쁜 와중에 이 책을 슬쩍 훑어만 봐도 선거필승 전략이 보일 텐데 일일이 찾아 다니며 보여줄 수도 없고 참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