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왜 ‘사스 대처 실패'의 우를 또 반복했을까
  • 모종혁 중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2.03 11:00
  • 호수 158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한시는 중앙정부 눈치…당 지도부는 경제 침체 우려에 ‘늑장 대응’

지난 1월27일 오후 저우센왕(周先旺) 우한시장이 중국 관영 CCTV의 뉴스채널에 출연했다. 저우 시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인 ‘우한 폐렴’ 발원지의 행정 책임자다. 마스크를 착용한 채 인터뷰를 진행한 그의 입에 중국인들의 눈과 귀가 쏠렸다. 하지만 기자는 시청자들이 정작 궁금해하는 문제의 핵심을 짚지 않은 채, 저우 시장으로 하여금 현지에서 진행되는 상황을 장황하게 소개토록 했다. 그러다 인터뷰 말미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해) 제때 확실한 정보를 제공했는가? 당신들은 정확한 판단을 내린 게 맞는가?”라고 짧은 질문을 던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중국 전역이 불안감에 휩싸인 가운데 리커창 중국 총리가 1월27일 후베이성 우한의 한 슈퍼마켓을 방문해 주민들과 대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중국 전역이 불안감에 휩싸인 가운데 리커창 중국 총리가 1월27일 후베이성 우한의 한 슈퍼마켓을 방문해 주민들과 대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수직 관료사회’가 야기한 거북이 대응

이에 대해 저우 시장은 ‘폭탄 발언’을 터뜨렸다. 먼저 “우리도 제때 (정보를) 밝히지 못한 이유가 있다”고 운을 뗐다. 저우 시장은 “전염병은 관련 법률에 따라 공개해야 한다. 지방정부로서, 우리는 이번 정보에 대한 권한을 획득한 다음에야 공개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뒤이어 “1월20일, 국무원 상무회의가 열려 우한 폐렴(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을 을류 전염병에서 갑류 전염병으로 확정해 각지에 책임을 주었기에, 우리는 업무를 주동적으로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중앙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정보를 통제한 탓에 제때 대응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는 얘기다.

현재 저우 시장은 사면초가에 처해 있다. 2019년 12월1일 후베이(湖北)성 우한시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바이러스가 처음 발견됐다. 12일에는 이것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확인됐다. 31일에는 27명의 확진 환자가 발생했고 그중 7명은 병세가 위중했다. 해가 바뀌어 1월5일에는 환자 수가 2배를 넘어 59명에 달했다. 9일에는 첫 사망자가 발생했다. 그러나 19일 우한시 정부는 도심 여러 곳에서 4만여 가구가 모여 함께 식사하는 만인연(萬人宴)을 개최했다. 만인연은 춘제(春節)를 앞두고 친척 및 이웃끼리 각기 준비한 음식을 한데 모아 함께 먹는 중국의 전통행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어딘가 묻어 있던 바이러스가 눈·코·입으로 유입되어 감염된다. 따라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보균자와 함께 식사했을 경우 감염될 비율은 굉장히 높다. 만인연이 열리기 하루 전 우한에서는 59명, 당일에는 77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따라서 누적 환자가 198명으로 급증하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우한시는 만인연을 예정대로 진행했고, 그 뒤 환자 수는 기하급수로 늘어났다. 현재 중국 온라인과 SNS에서는 만인연에 관한 기사와 사진이 모두 삭제된 상태다. 또한 어느 장소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는지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우한 폐렴 환자가 급증하는 와중에 만인연까지 개최한 우한시 정부에 중국인들의 분노가 쏟아졌다. 네티즌들은 저우 시장을 향해 “초기 예방과 통제 조치를 전혀 하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일부 언론도 그를 공격했다. 이에 1월21일 저우 시장은 CCTV와의 인터뷰에서 “당시는 사람과 사람 사이 전염이 있는지 몰랐다”면서 “만약 알았다면 강력하게 경고했겠지만, 사람 간 전염이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그 뒤의 일이다”고 말했다. 중국 체제의 시스템과 특성을 안다면, 이 말이 저우 시장의 비겁한 자기변명만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중국은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와 거대한 피라미드 관료조직을 갖고 있다. 그 정점에 있는 공산당 총서기이자 국가주석이 지시를 내리지 않으면, 그 아래에 있는 관료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물론 지방정부도 일정한 권한은 있다. 하지만 저우 시장의 토로처럼 대부분 사안은 중앙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행사할 수 있다. 실례로 해외의 언론매체가 중국에서 취재하는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다. 취재 아이템이 중국 전체 사안과 조금이라도 연관되면, 관련 중앙정부 부처와 기관의 허가를 먼저 받아야 한다. 그 뒤 ‘성→시→현’으로 이어지는 행정단위 절차를 밟아야 최종 허가를 득할 수 있다.

실제 중국은 수동적인 관료주의가 만연해 있다. 상부의 지시가 없는 한 책임질 일을 하지 않는다. 따라서 저우 시장의 언급은 중국 체제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다. 실제로 1월19일까지 중국 당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해 “발생한 환자들은 확실히 통제해서 치료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환자를 치료하던 의사와 간호사가 이미 감염됐으나 그 사실을 숨겼다. 오히려 “온라인과 SNS에서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이는 엄벌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하지만 불과 하루 뒤 중앙정부가 나서자, 분위기가 180도 변했다.

체제 문제 외 중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초기 대처에 실패한 다른 이유는 내수 경기 및 사회 안정과 관련 있다. 이는 사스(SARS)의 사례를 살펴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2002년 12월에 광둥(廣東)성에서 사스 보균자가 처음 나타났다. 이듬해 1월23일에는 광둥성이 관련 상황을 전국 의료당국에 통보했다. 2월9일에는 환자가 100여 명에 달했고 사망자 2명이 발생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이런 사실을 숨기기에 급급했을 뿐이다. 2월1일 춘제 연휴의 특수를 이용해 내수를 진작시키고 사회 분위기를 안정시킬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경제 특수’ 놓칠라…뒷짐 졌던 공산당 지도부

춘제 전후에는 연인원 수십억 명이 이동한다. 모든 교통수단은 빈자리가 없어, 운수산업은 최고의 수익을 거둔다. 고향에서는 가족·친척·친구와 먹고 마시고 노는 데 돈을 아끼지 않는다. 또한 전국 각지의 명소와 관광지는 인산인해를 이룬다. 이뿐만 아니라 대작 영화가 개봉되고 특별 뮤지컬·음악회 등이 상연된다. 따라서 ‘춘제 특수’가 중국 내수 경기에 미치는 영향력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우한시가 만인연을 취소하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시장·마트·농가 등이 만인연을 위해 막대한 식재료를 준비했는데, 이를 취소하면 경제적 타격을 크게 입는다.

그렇기에 우한 폐렴의 초기 대처 실패와 빠른 확산의 책임을 저우 시장에게만 묻는 건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에서 시장은 행정 책임자일 뿐이기 때문이다. 시정의 실권은 공산당 서기가 갖고 있다. 하지만 1월25일까지 중국 당국은 저우 시장을 앞세워 우한시를 진두지휘했다. 게다가 우한은 후베이성의 성도다. 우한을 포함한 후베이성의 최고 실권자는 장차오량(蔣超良) 당서기다. 23일 우한에 대한 전면적인 봉쇄가 이뤄지고 이튿날에는 주변 지역까지 봉쇄가 확대됐지만, 장 당서기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1월26일에야 후베이성방역지휘부회의를 개최하면서 장 당서기가 전면에 나섰다. 이는 행정 책임자에게 비난이 쏠리도록 한 뒤 당 실권자가 나서서 수습하는 모양새다. 중국은 대형 참사가 터졌을 때마다 이런 패턴을 되풀이해 왔다. 그러나 지금의 사태는 장 당서기가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중국 전역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사스 때 후진타오(胡錦濤) 당시 국가주석은 4월에야 ‘사스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직접 진두지휘했다. 현재까지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베이징에서 이번 사태와 관련해 지시만 하고 있을 뿐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