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동광제약 리베이트 의혹에 국세청 칼 빼들었다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20.02.06 10:00
  • 호수 1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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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사자’ 조사4국, 매출할인 장부 집중 점검

중견 제약사인 동광제약이 최근 국세청 세무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업계에서는 정기조사는 아닐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조사에 착수한 곳이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이기 때문이다. 특별 세무조사를 전담하는 조사4국은 비자금이나 탈세 등에 대한 혐의나 첩보를 받고 움직여 ‘재계 저승사자’로도 통한다. 국세청은 현재 동광제약의 의약품 리베이트 의혹을 중점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향후 리베이트 사실이 밝혀질 경우 국세청 조사가 검찰 수사로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동광제약은 한때 금융재벌이던 고려증권그룹 계열사였다. 고려증권 등 계열사들은 1998년 IMF 외환위기 당시 유동성 위기에 내몰려 사실상 공중분해됐다. 동광제약도 그해 부도를 맞았다. 동광제약은 파산을 면하기 위해 1999년 채권자들과 채무변제협정을 체결하는 화의를 개시해 경영정상화 작업에 나섰다.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고려가(家) 2세 경영인이던 이창재 고려통상그룹 회장은 수년간 고액체납자 꼬리표가 따라붙는 불명예를 겪었다.

유병길 동광제약 사장(왼쪽) ⓒ 동광제약 홈피
유병길 동광제약 사장(왼쪽) ⓒ 동광제약 홈피

우회 리베이트로 각광받은 매출할인

이 회장은 결국 재기에 성공했다. 고려통상이 보유한 서울 중구 고려대연각타워의 부동산 가치가 급증했고 동광제약도 2006년 화의를 졸업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이후 부동산임대사업과 제약사업을 주축으로 그룹을 재건했다. 그룹의 한 축을 담당해 오던 동광제약은 2014년 제약사업 부문을 물적분할했다. 현재 존속법인인 개양이 지분 100%를 소유 중이다. 고려통상과 이 회장 일가가 개양 지분 100%를, 개양은 고려통상 지분 80.28%를 교차 보유하고 있다. 사실상 그룹 지배권을 이 회장 일가가 쥐고 있는 셈이다.

동광제약을 조사 중인 국세청은 약품의 매출할인 관련 장부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매출할인이란 제약사가 도매업체에 대한 판매촉진을 위해 외상 매출을 약정기일 내 지급받으면 일정 금액을 할인해 주는 제도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이익이 리베이트에 활용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실제 2015년 한 도매업체에서 동광제약 등 제약사 약품 구매 시 할인율을 적용해 준다는 문건이 외부로 유출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업계에 따르면 과거 의사들에게 직접적으로 금품 및 향응 등을 제공하는 식으로 의약품 리베이트가 이뤄졌다면 지금은 매출할인을 통한 우회 리베이트가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정부가 2010년 11월 리베이트 제공자에 더해 수혜자까지 처벌한다는 취지의 ‘리베이트 쌍벌제’를 시행하는 등 규제의 강도를 높여 갔기 때문이다. 리베이트가 의약품의 가격을 왜곡해 보험수가에 영향을 끼치고 결국 국민의 의료비와 보험료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이유에서였다. 제약사들은 리베이트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매출할인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업계 안팎에서 매출할인은 편법 내지는 우회 리베이트 수단이라는 인식이 굳어진 상태다. 제약사들은 매출할인이 정상적인 상행위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러나 국민권익위원회의 판단은 달랐다. 권익위는 2018년 제약사가 의약품 도매상을 통해 리베이트를 제공한 경우 해당 제약사도 처벌하는 개선안을 제안하고, 매출할인 공급내역 보고를 권고하기도 했다. 같은 해 법원도 도매상이 매출할인을 통해 저지른 불법 리베이트의 책임을 제약사에 묻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매출할인이 제약사의 편법 리베이트에 악용될 가능성에 주목한 것이어서 국세청 조사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매출할인에 더해 판매·관리비(판관비)와 관련해서도 면밀한 조사가 이뤄질 것으로 업계는 관측하고 있다. 판관비에는 기업활동에 필요한 각종 비용이 망라돼 있다. 판관비가 영업·접대비 전체를 대변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동안 제약업계에선 리베이트 성격의 비용을 판관비에 섞어놓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제약업계의 매출 대비 판관비 비율이 다른 업계에 비해 높게 나타나는 배경도 이 때문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특히 동광제약의 판관비 비율은 다른 제약사에 비해서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1년 판관비 비율은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51.1%)에 달했다. 또 동광제약의 판관비 비율은 리베이트 규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실제 리베이트 쌍벌제 시행 이듬해인 2012년 동광제약의 판관비 비율이 47.9%로 줄었다가, 이듬해 53.3%로 되레 규제 이전보다 늘었다. 그해 77개 비상장 제약사의 매출액 대비 판관비 비율 평균이 31.8%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수치다. 동광제약의 판관비 비율은 2014년 43.5%로 대폭 감소했다. 업계에서는 이를 이듬해 7월부터 시행된 ‘의약품 리베이트 투아웃제’를 앞두고 영업활동을 강화한 것으로 해석했다.

동광제약 본사가 위치한 서울 중구의 고려대연각타워 ⓒ 시사저널 고성준
동광제약 본사가 위치한 서울 중구의 고려대연각타워 ⓒ 시사저널 고성준

고강도 조사 예고…검찰 수사 가능성도

이후 제약사들 대부분은 판관비 비율을 줄여 나갔고, 동광제약도 이런 흐름에 동참했다. 실제 이 회사의 판관비 비율은 2015년 42.01%(판관비 350억원)에서 2016년 39.68%(369억원), 2017년 37.38%(391억원), 2018년 36.55%(444억원) 등으로 감소했다. 그러나 2018년 주요 제약사의 매출 대비 판관비 비율 평균이 30%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처럼 높은 판관비 비율을 유지해 오며 동광제약의 매출은 꾸준히 증가했다. 실제 2010년 756억원이던 연매출은 2018년 1216억원까지 증가했다.

세정당국 안팎에선 동광제약에 대한 세무조사가 강도 높게 진행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국세청이 제약사 리베이트에 대한 봐주기 조사가 이뤄졌다는 지적을 받은 바 있어서다. 서울지방국세청 조사2국과 조사4국은 2015~17년 제약사 법인통합조사 4건을 진행했다. 그러나 감사원이 조사 결과를 문제 삼았다. 세무조사 결과 국세청이 접대비로 처리한 374억8000만원 중 267억8000만원이 리베이트가 의심되는 금액이지만 이를 접대비로 처리해 과징금을 축소한 것은 부적절한 조치라는 것이었다. 국세청은 결국 리베이트 조사에 대한 수위를 높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세무조사 결과 리베이트가 드러날 경우 동광제약은 검찰 수사 대상에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최근 리베이트 제공 혐의를 받고 있는 동성제약에 대한 검찰 수사도 국세청 세무조사에서 비롯됐다. 이번 세무조사와 관련해 동광제약 관계자는 “세무조사와 관련해 자세한 사항은 알지 못하니 확인 뒤 연락을 주겠다”고 했지만 결국 회신은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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