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몰라도 재밌다” 《스토브리그》 깜짝 성공의 비결
  • 하재근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2.08 10:00
  • 호수 1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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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하고 설득력 있는 스토리로 시청률 16.5% 치솟아

SBS 드라마 《스토브리그》가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시청률이 무려 16.5%까지 치솟았다. 지난 설 연휴 때 많은 드라마들이 결방했는데 유독 《스토브리그》에 대해서만 큰 반발이 터져 나왔을 정도다. 누리꾼들은 한 주 결방을 참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럴 정도로 시청자의 지지가 현재 뜨겁다.

스토브리그는 한 해 시즌을 끝내고 다음 해 시즌을 준비하는 겨울 동안의 구단 활동을 일컫는 야구 용어다. 겨울을 맞은 야구단들이 난로(hot stove) 주변에 앉아 팀 재정비 논의를 하고 연봉 협상을 벌인 데서 유래했다는 설과, 야구팬들이 겨울에 난로 주위에 모여 팀에 대해 토론한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겨울철에 각 팀들은 조직을 재정비하고, 선수들을 트레이드하고, 연봉 협상을 하고, 전술전략 강화와 훈련에 집중하는 등 시즌 기간 못지않은 경쟁을 벌인다. 드라마 《스토브리그》는 꼴찌 구단 드림즈에 부임한 새 단장 백승수(남궁민)가 스토브리그를 이끌며 팀을 탈바꿈시키는 이야기다.

일단은 스포츠 드라마라고 할 수 있는데, 대체로 한국에서 스포츠 소재 작품들은 흥행 성적이 좋지 않았다. 드라마 《마지막 승부》와 영화 《외인구단》 등 스포츠 장르 성공작은 몇 안 된다. 《스토브리그》 역시 소재 자체에 약점이 있는 데다, 한류 스타 캐스팅도 아니어서 기대작이 아니었다. 하지만 막상 방영되자 시청자들이 열광했다.

SBS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 꼴찌 구단 드림즈에 부임한 새 단장 백승수(남궁민) ⓒ SBS
SBS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 꼴찌 구단 드림즈에 부임한 새 단장 백승수(남궁민) ⓒ SBS

치밀한 사전조사에 기반한 완성도 높은 각본

스포츠가 소재이긴 한데 누구나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운동장에서의 승부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주인공이 선수가 아니라 단장이고, 두 번째로 비중이 큰 배역은 운영팀장이다. 모두 행정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사무실 업무가 주로 표현될 수밖에 없는데 이게 오히려 장점이 됐다.

운동경기를 어설프게 표현하면 안 하니만 못한 결과를 낳게 된다. 할리우드의 실감 나는 대규모 운동경기 장면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은 한국 드라마의 조악한 경기 표현에 이질감을 느꼈다. 이래서 스포츠 드라마가 성공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반면에 《스토브리그》는 사무실이 주 배경이니, 운동경기 표현의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무실 배경일 경우 또 다른 치명적 문제가 발생한다. 바로 ‘지루함’이라는 문제다. 더군다나 난해하기로 악명 높은 야구 이야기라면 드라마 주 시청층인 여성 시청자들의 이탈을 초래할 수 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스토브리그》의 경쟁력이 발휘됐다. 설득력 있고, 리얼하고, 쉽게 이해되며, 인간미까지 느껴지는 이야기로 야구팀 행정 드라마에 시청자를 끌어들인 것이다.

치밀한 각본 덕분에 야구팬들은 실제 야구계 에피소드를 연상하면서 작품에 빠져들고, 일반인들은 몰랐던 야구단 내부구조를 새롭게 알아가는 한편 인간적인 이야기에 감동을 느끼면서 빠져들게 됐다. 작가가 조사를 많이 한 것으로 보인다. 야구팬들은 백승수 단장의 모델이 성민규 롯데 자이언츠 단장 아니냐며 갑론을박을 벌이고, 극 중에서 강두기-임동규 트레이드를 보고선 1988년 최동원-김시진 빅딜이 떠오른다며 토론에 나섰다.

이렇게 야구계 이모저모를 떠올리게 히는 ‘떡밥’들을 배치해 야구팬들을 잡았다. 만약 야구단 이야기를 비현실적으로 어설프게 그리면서 ‘기승전-멜로’로 갔다면 야구팬들이 안티로 돌아서면서 입소문이 부정적으로 퍼져 일반 시청자들의 유입까지 차단됐을 것이다. 사전 조사에 기반한 치밀하고 완성도 높은 각본이 작품을 구원했다.

야구 또는 스포츠계를 다루고는 있지만 일반인 누구나 공감하고 감정이입할 수 있는 ‘직장인’의 이야기가 표현됐다는 점도 중요한 성공 요인이다. 주인공이 무려 단장이긴 하지만, 극 속에선 파리 목숨 비정규직 중간관리자 정도로 묘사된다. 단장 위엔 막말하는 사장이 있다. 그 사장은 회장 조카인 구단주 대리인의 비위를 살살 맞추며 백승수에겐 고압적으로 대한다. 회장 조카는 백승수가 자기 지시를 고분고분 따르지 않자 잘라내려 한다.

백승수를 괴롭히는 건 상사들뿐만이 아니다. 스카우트팀 직원들은 대놓고 백승수를 무시한다. 코치들도 그런 식이다. 위아래 모두로부터 치이면서 스트레스만 받는 백승수 단장. 딱 일반적인 직장인들의 모습이다. 그런 백승수를 보면서 직장 조직을 경험해 본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감정이입하고, 백승수가 문제를 해결할 때마다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정치 상황도 맞물렸다. 우리 사회에 문제가 많다는 데엔 누구나 공감한다. 그런데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 답답하기만 하다. 정치 지도자들도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는 것 같다. 불신과 회의, 무기력 같은 정서가 만연해 있다. 백승수 단장도 꼴찌 구단에 부임해 온갖 문제에 직면했다. 구단엔 부패, 무기력이 만연해 있다.

SBS 드라마 《스토브리그》의 한 장면 ⓒ SBS
SBS 드라마 《스토브리그》의 한 장면 ⓒ SBS

젊은 세대 사로잡은 스토리의 힘

백승수 단장이 그런 부조리를 하나하나 혁파해 나간다. 현실에선 한 걸음 내딛는 것도 힘들고, 뭔가 변화가 있을 때마다 저항이 하도 격렬해 피로만 쌓인다. 반면에 《스토브리그》에선 백승수 단장이 한 회 또는 한 주에 하나 정도의 쌓인 문제, 즉 적폐를 착착 해결해 간다. 하나를 해결하면 다른 적폐가 나오고, 그걸 해결하면 또 다른 적폐에 부딪히지만 백승수는 굴하지 않고 무표정한 얼굴로 별일 아니라는 듯이 한 걸음씩 전진해 간다.

만년 꼴찌로 희망이 없을 것만 같았고, 언제나 정체됐던 드림즈 구단이 마침내 움직이고 희망이란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부패한 직원은 일거에 정리되고 파벌싸움만 벌이던 코칭스태프는 구단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합심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변화 없고 답답한 현실에 지친 사람들의 속을 후련하게 해 준 것이다.

아저씨 ‘꼰대’ 문화에 대한 반감도 깔렸다. 백승수의 전진을 가로막는 적폐 세력들은 모두 아저씨들이다. 이들은 경력, 연차, 재산, 지위 등으로 새파란 단장 백승수를 무시한다. 그런 장벽들을 젊은 백승수가 혁파해 나가는 구도다. 백승수와 그의 동생은 철저하게 합리적인 수치, 정보 통계를 내세우는데, 이것은 기존 조직문화의 비합리성에 부정적이면서 합리성을 추구하는 요즘 젊은 세대의 취향과 맞아떨어졌다.

그리고 이야기의 바탕에 인간이 있다. 수치를 내세운다고 사람을 아무렇게나 잘라내고 무시하지 않는다. 조직운영에는 합리성을 추구하지만, 사람 한 명 한 명을 소중히 여기는 인간애를 저버리지 않는다. 이것이 약자만 쉽게 잘라내던 ‘적폐’식 합리성과 다르다. 여기에 배우들의 연기력까지 뒷받침되면서 《스토브리그》의 깜짝 대박 사태가 터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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