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석 신부님은 언제나 ‘좋은 친구’로 가슴에 남아 있다”
  • 부산경남취재본부 김완식 기자 (sisa512@sisajournal.com)
  • 승인 2020.02.09 14:00
  • 호수 1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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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태석 신부 따르던 남수단 존 마옌 루벤…“한국 의사국가시험 합격, 신부님과의 약속 지켜 기쁘다”

“의사가 되겠다는 신부님과의 약속을 지켰습니다. 하늘에서 보고 계시죠?” 다큐멘터리 《울지마 톤즈》로 전 국민의 심금을 울린 고(故) 이태석 신부와 남수단의 인연이 이 신부 선종 10주기를 맞아 다시 활짝 피어났다. 20여 년 전 이 신부를 따라다니던 14살 소년 존 마옌 루벤(33)이 최근 의사국가시험에 최종 합격한 것. 

아프리카 남수단 출신인 존이 한국에서 의사가 되도록 이끈 건 고 이태석(1962~2010) 신부다. 두 사람은 이 신부가 톤즈를 최초로 방문했던 1999년 처음 만났다. 2001년 이 신부가 사제 서품을 받고 톤즈에 선교사로 온 이후엔 존이 복사(미사에서 사제를 돕는 사람) 역할을 하기도 했고, 이 신부로부터 기타를 배워 5년간 함께 밴드 활동도 했다. 존은 “신부님은 사람들의 병을 고치고 아이들을 가르쳤을 뿐 아니라 집 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기숙사를 짓고, 전기까지 끌어왔다”고 회상했다.

2009년 한국에 유학 온 존은 한국어를 배워 2012년 이 신부의 모교인 인제대 의대에 진학했다. 인제대는 존의 학업을 지원했고, 이 신부가 세운 수단어린이장학회는 생활에 도움을 줬다. 하지만 한국 생활이 쉽지만은 않았다. 존은 “꼭 의사가 돼 신부님의 뒤를 잇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재수 끝에 의사시험에 합격했다. 마침 올해가 이 신부의 선종 10주기다.

3월부터 인제대 부산백병원에서 인턴으로 근무할 존은 수련의 생활을 마치면 남수단으로 돌아가 그곳 주민을 돕는 의료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계획이다.

인제대 의과대학 로비에 위치한 이태석 신부 흉상과 함께한 존 마옌 루벤 ⓒ 인제대 제공
인제대 의과대학 로비에 위치한 이태석 신부 흉상과 함께한 존 마옌 루벤 ⓒ 인제대 제공

고 이태석 신부와의 첫 만남은 어땠나.

“1999년 당시 제가 14살 때 신부님이 이탈리아에서 남수단으로 휴가를 왔을 때 처음 만났다. 신부님이 남수단으로 오기 전에 다른 신부님들도 많이 왔었지만, 이 신부님처럼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다. 신부님이 아이들과 거리감 없이 열심히 놀아주시며 가깝게 지낸 분이라 너무나 훌륭하신 분이라고 생각했다. 함께했던 순간순간이 좋았다.”

이 신부와 함께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이태석 신부님을 통해 음악을 알게 된 것이다. 당시 남수단 아이들은 축구나 농구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 놀이가 많지 않았다. 이 신부님은 아이들의 정서상 음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이 신부님이 아이들을 위해 기타·리코더·피아노를 가르쳐 주시며 밴드를 구성하기도 했다. 그때 음악을 접한 아이들의 눈망울이 초롱초롱 빛났고, 저 또한 음악이 정신을 밝게 해 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번은 볼거리에 걸려 신부님을 찾지 못했다. 그때 신부님이 집까지 직접 찾아오셨다. 수도회에서 음악을 들으니 몸이 나았다.”  

이 신부와 마지막 헤어지던 날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 

“아마도 남수단에서 브라스밴드 음악연주를 할 때였던 것 같다. 당시 신부님이 투병 중이셨지만 아픈 내색을 전혀 하지 않으셨다. 밴드를 지휘하며 아이들과 헤어질 때까지 웃는 모습으로 우리들을 대해 주셨던 기억이 난다.”

타국에서 의학 공부는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의대 공부는 매일매일 힘들었지만, 제일 힘들었던 때는 작년 의사 자격시험에 최종 합격하지 못했을 때였다. 그동안 죽어라 열심히 해 왔지만 합격을 못 해 ‘의사가 못 되는 걸까’ ‘이대로 수단으로 돌아가면 나는 뭐가 되나’라는 생각에 많이 힘들었다. 하지만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2배, 3배 열심히 공부했다. 의과대학 교수님도 많은 도움을 주셨다.”

존에게 이태석 신부는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나.

“신부님은 헌신하는 모습과 인자한 모습, 그리고 항상 밝은 모습으로 기억에 남아 있지만 언제까지 ‘좋은 친구’로 기억할 것이다. 좋은 이야기를 해 주시고 잘할 수 있다고 격려도 해 주셨다. 의사시험에 합격한 이후 감사하는 마음이 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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