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톨레랑스의 힘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2.10 09:00
  • 호수 1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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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레랑스’. 프랑스 사회를 말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이것이다. 우리말로는 ‘관용의 정신’으로 해석될 수 있다. 지금은 점차 퇴색해 가는 느낌이 있지만 이 톨레랑스에 대해 강한 자부심을 드러내는 프랑스인이 적지 않다. 그들은 여전히 관용의 정신이 프랑스 사회를 건강하게 지켜준 ‘보이지 않는 힘’이라고 믿는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전 세계를 잔뜩 움츠리게 하고 있다. 움츠리는 정도를 넘어 경직화되는 양상마저 엿보인다. 특히 일부에서 나타나는 제노포비아(이방인에 대한 혐오 현상)의 조짐은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한국인을 비롯한 아시아인들이 해외에서 동양인 외모를 지녔다는 이유만으로 조롱당한다는 소식이 줄을 잇는다.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하는 축구 스타 손흥민까지 그 대상이 되었다니 무슨 말을 더 하랴.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라오는 ‘나는 바이러스가 아니다’라는 문구를 보면 어쩌다 인류 사회가 이렇게까지 각박해졌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1월24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대학 중난병원에서 보호복을 입은 의료진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 환자를 돌보고 있다. ⓒ 연합뉴스
1월24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대학 중난병원에서 보호복을 입은 의료진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 환자를 돌보고 있다. ⓒ 연합뉴스

바이러스가 발생한 중국에서는 지도부가 나서 초동 대응에 실패했다는 반성문을 내놓았지만, 커져가는 불신을 가라앉히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중국 당국이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는데도 지구촌 곳곳에서 그들을 향해 쏟아지는 의심의 눈초리는 쉽게 거두어지지 않을 기세다.

해소되지 않는 의심은 구르고 굴러 불신으로 뭉쳐지고, 그렇게 뭉쳐진 불신은 불안으로 쌓이게 된다. 그런 불안이 무분별한 아시아인 혐오를 낳고, 더 크게는 인류 사회의 균열을 부른다. 불안의 공격 앞에서 심리적으로 흔들리지 않을 사람은 많지 않다. 신경이 곤두서고 경계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중국 내 한국 교민들을 자신들이 사는 지역에 데려오는 것을 반대한 사람들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그들을 배척한다고 해서 꼭 지역사회의 건강이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더 걱정해야 할 것은 불안의 확산이다. 자칫하다가는 바이러스보다 불안에 먼저 공격당할 수 있다. 지금은 그런 불안을 이겨낼 심리적 면역력이 더 절실한 시기다. 관용의 힘도 그런 면역력의 한 축이 될 수 있다.

신종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대부분 단기간에 끝나지 않는다. 2002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이 나타나 사라지기까지 9개월이 넘게 걸렸고, 2015년 국내에 퍼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도 7개월이 지나서야 종식됐다.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도 언제 끝날지 전혀 알 수 없다. 상황이 이런 만큼 가짜뉴스를 비롯해 의심과 불안을 부추기는 행위들이 기승을 부릴 여지는 무척 크다.

누구에게나 건강과 신체 안전은 소중하다. 하지만 그것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 조심을 넘어 필요 이상의 경계와 배척으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 바이러스에 앞서 불신과 불안이라는 감염증에 먼저 쓰러질 수는 없다. 톨레랑스의 진정한 힘은 그것을 베풀어야 하는 대상과 그렇지 않은 대상을 정확하게 구분해 내는 데서 나온다. 지금은 세계를 휩쓰는 이 감염병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정치적 이해를 떠나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할 때다. 아무리 선거를 코앞에 두고 있더라도 국가적 재난 앞에 여야가 따로여서는 안 된다. 그것이 신종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헌신해 온 사람들에 대한 진실된 예의다. 어느 영화 속 대사처럼 ‘우리는 모두 연결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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