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포 재건축발 ‘전세대란’ 시작되나
  • 노경은 시사저널e 기자 (nice@sisajournal-e.com)
  • 승인 2020.02.11 08:00
  • 호수 158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5억원 이상 주담대 막히자 전세로...재건축 이주 본격화되며 수급 불균형

서울 전세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정부가 지난해 말 발표한 12·16 부동산 대책으로 집값이 안정화 추세로 돌아섰다. 하지만 후유증은 여전하다. 15억원 이상의 주택담보대출을 전면 금지하는 등 대출 규제가 강화되자 돈을 빌려 집을 사려던 매수 대기 수요의 상당수가 전세시장에 머무르게 됐다. 그동안 부동산 관련 기관에서 우려했던 부분이 현실화한 것이다. 12·16 대책 후 ‘억’ 소리 나게 오른 전세보증금여기에 일부 강남권 대단지에서 올봄 재건축을 위한 이주를 진행하는 것까지 더해져 전세 수급 불균형 현상은 이사철이 끝나고 나서도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서초구 반포동 미도아파트 전용 84㎡는 지난해 10월 5억6000만원(13층)에 전세 계약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12월 대책 발표 즈음에는 6억3000만원(2층)으로 올랐고, 올해 1월 들어선 7억5000만원(1층)에 계약이 성사됐다. 비선호 층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석 달 사이 전세보증금이 2억원 이상 오른 것이다. 이곳만의 분위기는 아니다.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3차 전용 82㎡도 지난해 10월 4억8000만원(6층)에 계약됐던 게 석 달이 지난 올해 1월에는 1억원 오른 보증금 5억8000만원(9층)에 성사됐다.

서울 서초구 잠원동 반포 한신4지구(사진)를 시작으로 재건축 이주가 본격화되면서 전세난 장기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서울 서초구 잠원동 반포 한신4지구(사진)를 시작으로 재건축 이주가 본격화되면서 전세난 장기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석 달 사이 전세보증금 2억원 이상 증가

이 같은 시장 분위기는 통계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한국감정원이 발표한 1월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지난해 12월10일~올해 1월13일 기준)에 따르면 서울의 주택종합 전세가격은 0.43% 올랐다. 이는 직전 월(0.38%) 대비 상승폭이 커진 것으로, 월간 기준으로는 2015년 12월(0.50%) 이후 가장 큰 상승폭이다. 전셋값 상승세는 수도권(0.37→0.39%)은 물론 세종시(1.16→2.88%) 등을 포함한 지방(0.08→0.17%)에서도 나타났다. 이에 따라 전국 전세가격(0.22→0.28%)도 오름폭을 키웠다.

특히 강남 3구의 전셋값 급등세가 두드려졌다. 강남(1.05→1.54%)·서초(0.57→0.92%)·송파(0.70→0.80%) 등 강남 3구가 일제히 상승폭을 키운 것이다. 감정원 관계자는 “서울은 학군 지역과 직주근접성이 좋은 지역 위주로 상승했고, 경기 등 지방은 입주물량 감소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실제 서울의 1월 전세수급지수(100을 넘을수록 공급 부족)는 154.4로 2017년 6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한강 이남 지수는 157.1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전세시장의 상승세가 가팔라진 원인이 12·16 대책에서 비롯됐다고 말한다. 정부는 12·16 대책에서 주택담보대출비율(LTV) 규제를 발표했는데, 이전에는 1주택자에 한해 LTV 40%를 적용하던 것을 주택가격별로 세분화하는 방식으로 대출금액을 조였다. 즉 9억원 이하분까지는 LTV 40%를 적용하지만 9억원 초과분에 대해선 LTV를 20%까지만 설정해 주도록 했다. 예를 들어 시가 14억원의 주택을 매입할 경우 과거에는 LTV 40%를 적용해 5억6000만원의 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었지만 대책 발표 이후로는 9억×40%+5억×20%=4억6000만원까지만 나와 대출한도가 1억원 줄었다. 15억원 이상의 주택에 대해서는 담보대출이 아예 금지됐다. 여기에 자금조달계획 작성 기준 등을 보다 강화하자 매수세 유입이 끊겼다. 매수 대기 수요인 이들이 전세시장에 계속 머무르게 됨에 따라 전세가격은 이사철까지 맞물리며 오름세를 보였다.

여기에 임대차 시장과는 관련이 없어 보이는 종부세도 전셋값 상승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가 12·16 대책에서 보유세 중 하나인 종합부동산세(종부세) 대폭 인상을 발표함에 따라 3주택 이상 및 조정대상지역 2주택 보유자의 종부세는 최대 0.8%포인트까지 오른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세금 인상분을 전가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세금 인상분이 전가되면 세입자가 겪을 주거 불안이 한층 증가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재건축 대장주 대이동으로 전세난 장기화 우려실제 올 한 해 부동산시장 전망을 통해 전문기관들은 이 같은 전세시장의 수급 불균형을 줄줄이 예고한 바 있다. 한국감정원은 2020년 부동산시장 전망을 통해 “서울의 경우 12·16 대책에 따라 과도하게 상승한 주택가격이 조정될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구매력이 줄어든 일부 시장 참여자들이 전·월세에 머물면서 학군이나 교통이 양호한 지역을 중심으로 전세 수요가 증가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민간기관인 주택산업연구원 역시 전국적으로는 전세가격이 0.6%가량 하락할 것으로 점치면서도 서울은 시장에서 (전세가격이) 상승할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고 밝혔다.

여기에 2년 실거주 요건도 임대차 시장 매물의 씨를 말리는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올해부터 주택 양도분에 대해 2년 이상 실제 거주해야 양도세 감면 혜택을 준다. 1주택자라도 전세를 주지 않고 실거주하는 집주인들이 많아짐에 따라 전세 물건은 더욱 찾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

한 주민이 서울 송파구 잠실파인애플상가에 붙어 있는 매물들을 유심히 보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한 주민이 서울 송파구 잠실파인애플상가에 붙어 있는 매물들을 유심히 보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한신4지구 시작으로 이주 본격화

문제는 이 같은 전세대란 현상이 당분간 지속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전세 수요는 늘었지만 공급돼 있는 주택은 재건축으로 인한 철거로 소멸되기 때문이다.

서초구 잠원동 일대 한신4지구(메이플 자이)가 오는 5월부터 10월말까지 재건축을 위한 이주를 실시한다. 이 사업장은 반포역 인근에 위치한 한신 8차, 9차, 10차, 11차, 17차 아파트와 녹원한신아파트, 베니하우스 등 7개 아파트 2898가구와 상가 2곳을 묶은 대규모로 곧 멸실된다. 이주기간이 정해지자 살 집을 구하기 위한 소유주와 임차인의 움직임도 시작됐다. 강남구 청담동 금싸라기 땅에 위치한 삼익아파트(가칭, 청담 르엘)는 이보다 더 앞선 시기인 오는 3월1일부터 5월31일까지 세 달간 이주를 진행한다. 이후 올 하반기에는 888가구가 멸실되며 준공 후 1230가구로 다시 태어난다.

거주자들은 철거를 앞두고 새 둥지를 찾아나서는데 통상 자녀의 학교 통학 등으로 인근으로 이전하길 원하며 멀리는 못 간다는 게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의 설명이다.

올해 서초구에서는 한신4지구 이외에도 방배13구역, 방배14구역 등의 이주가 더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출 규제, 보유세 강화, 실거주 요건 강화로 인해 전세 수요가 증가한 데다 재건축에 따른 이주 수요까지 전세시장에 유입되는 것이다.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강남발 전셋값 상승이 이사철 이후에도 잠잠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