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비콘강 건너는 ‘진보 독설가’ 진중권과 ‘어용 지식인’ 유시민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20.02.11 10:00
  • 호수 1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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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과 ‘동지’ 사이 오가는 진보 논객 진중권과 유시민
조국 사태 후 분화 본격화…“이젠 이별할 때”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팬덤을 갖고 있는 이 시대의 대표적인 진보 논객들이다. 여러 면에서 닮았다. 유 이사장은 78학번(경제학과), 진 전 교수는 82학번(미학과)으로 서울대 동문이다. 대학 졸업 후 독일로 떠나 유 이사장은 마인츠요하네스구텐베르크대, 진 전 교수는 베를린자유대에서 유학 생활을 한 것도 비슷하다. 그래서인지 사회민주주의 정치 성향이 짙다.

박사 학위가 없어 한동안 강단에 설 수 없었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다만, 이와 관련해선 일찍부터 정치인의 길을 택한 유 이사장에 비해 학자의 길을 택한 진 전 교수의 아쉬움이 더 클 것 같다. 중앙대, 홍익대 등에서 겸임교수를 지낸 진 전 교수가 전임교수로 안정적인 교편을 잡은 것은 경북 영주의 동양대가 처음이다. 최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명 사태로 알려졌지만 진 전 교수가 재직한 동양대는 유 이사장에게도 교수 자리를 제안했었다. 조 전 장관의 부인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와 관련해 유 이사장이 이 대학 최성해 총장(현재 퇴임)에게 전화를 건 것은 이처럼 특별한 인연 때문이다.

ⓒ 연합뉴스·뉴시스
ⓒ 연합뉴스·뉴시스

두 사람 모두 독일에서 유학한 사민주의자

두 사람은 사회적으로 주목받기 전에 전업 작가로 명성을 쌓았다. 최근에는 신문과 방송이라는 전통적 미디어가 아닌 유튜브(유 이사장)와 페이스북(진 전 교수)을 통해 대중과 호흡하고 있다. 노무현재단이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 ‘유시민의 알릴레오’는 2월4일 현재 구독자 수만 111만 명이다. 이러한 공통분모는 한때 두 사람을 정치적 동지로 엮어줬다.

유 이사장과 진 전 교수는 1999년 4월에 출간된 《조선일보를 아십니까》에 공동 집필자로 참여하면서 대중 무대에서 처음 만났다. 이후 정치인·학자의 삶을 살던 두 사람이 충돌한 것은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벌어진 ‘사표 논쟁’ 때다. 당시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 후보로 나선 유 이사장은 “민주노동당 후보가 당선권에 들어 있지 않은 선거구에서는 열린우리당에 투표해 달라. 민주노동당에 던지는 표는 사표”라고 말했다. 그러자 진 전 교수는 “유시민의 발언은 ‘공포정치’”라며 “위기에 처한 건 유시민 의원이고 혼자 뻘짓 하게 냅둬도 된다”고 반발했다. 이후 두 사람은 2004년 이라크 파병을 놓고도 크게 설전을 벌였다. 파병과 관련해 유 이사장은 ‘불가피’, 진 전 교수는 ‘철회’로 입장이 갈렸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두 사람은 노무현 정부 내내 여러 가지 현안을 두고 의견을 달리했다. 2004년 3월 국회의 탄핵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자 당시 여당 의원이었던 유 이사장은 의회 횡포에 반발했다. 반면, 진 전 교수는 민주노동당 지지 인터넷 사이트인 진보누리에 ‘유시민 의원께 묻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노무현) 대통령의 3월11일자 회견은 임계치를 넘어서는 위험한 것이었다. 4당 대표와의 회담마저 거부해 극단적 사태를 초래한 것을 보면 대통령이 외려 탄핵 사태를 방조 내지 유도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비판했다. 지금의 문재인 정부가 노무현 정부를 계승했다는 점에서 두 사람 간의 갈등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랬던 두 사람이 의기투합한 것은 보수정권으로 권력이 넘어간 후부터다. 보수정권이라는 공통의 적을 향해 십자포화를 퍼붓기 위해 손을 잡은 것이다. 2013년 진 전 교수가 정의당에 입당하면서 정치적 동지가 됐고, 이듬해인 2014년에는 고(故) 노회찬 전 의원과 함께 셋의 성을 따서 지은 ‘노유진’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팟캐스트(노유진의 정치카페)를 진행했다. 2015년과 2016년에 《생각해봤어?》와 《노유진의 할 말은 합시다》를 낼 때까지만 해도 두 사람 간에 균열을 찾긴 힘들었다.

그랬던 두 사람 사이가 엇갈리기 시작한 것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부터다. 전업 작가로 활동하던 유 이사장이 노무현재단 이사장에 취임한 후 친여 지식인으로 변신하면서 진 전 교수와는 다른 길을 가게 됐다.

미학 전공자답게 진 전 교수의 메시지는 간결하면서 자극적이다. 유 이사장 역시 “싸가지 없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화법에 있어선 진 전 교수에게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대중을 자극하는 면에서 진 전 교수가 한 수 위다. 진 전 교수의 비판과 독설은 네 편, 내 편을 가리지 않는다. 비판의 대상에 성역이 없다는 생각이 확고하다. 2008년 폐족(廢族)의 위기까지 내몰린 지금의 친문 집권세력을 향해 진 전 교수는 “선거 때만 진보라는 구호를 외쳤고 집권만 하면 다시 돌아간다. 그래서 대중이 환멸을 느낀 측면이 있다”고 꼬집었다.

조국 전 장관 사태를 놓고 진 전 교수는 여권과 대립각을 세웠다. 그 과정에서 유 이사장과의 설전은 불가피했다. 진 전 교수의 비판은 ‘공정’에 초점을 맞춘 반면, 유 이사장은 ‘적폐세력의 저항’으로 바라봤다. 관점 자체가 달랐다. 진보의 분화였다.

 

과거 정의당에서 함께 활동하며 팟캐스트 운영하기도

진 전 교수는 페이스북을 통해 문재인 정부를 향한 비난의 수위를 한층 높이고 있다. 진보층뿐 아니라 이를 바라보는 보수층의 관심 역시 뜨겁다. 진 전 교수가 정부를 비난하는 글을 쓰면 조중동으로 상징되는 보수언론은 이를 거의 실시간으로 보도한다. 보수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출신인 하태경 새로운보수당 책임대표가 1월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100명의 야당 의원보다 진중권 한 명이 더 낫다”고 평가했을 정도다.

조국 사태 이후 두 사람은 완전히 갈라선 모습이다. 지난해 9월 오랫동안 몸담아 왔던 정의당에 탈당계를 내면서 진 전 교수의 비판 대상은 ‘범진보진영’으로 확대됐다. 특히 조 전 장관의 딸 ‘표창장 위조 의혹’과 관련해 갈등이 증폭했다. “취재차 최성해 동양대 총장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유 이사장의 해명에 대해 진 전 교수가 “취재가 아닌 회유”라고 맞서며 설전이 시작됐다. 이후 유 이사장이 “자기 자신의 논리적 사고력이 10년 전과 비교해 얼마나 감퇴했는지 자가진단해 봤으면 한다”고 하자, 진 전 교수는 “이분(유 이사장), 60 넘으셨죠?”라고 맞섰다.

올 1월1일 JTBC 신년토론회에선 서로를 향해 “너무 먼 길을 가고 있다”(진중권), “저는 똑같이 하는데 진 교수가 이상한 데로 간 것”(유시민)이라고 말하는 등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진 모습을 보였다. 이날 토론회에서 두 사람은 여러 현안에 대해 분명한 입장차를 드러냈다. 진 전 교수는 유 이사장이 진행하는 유튜브 방송 ‘알릴레오’를 스탈린과 히틀러가 벌인 음모론적 선동에 비유한 뒤 “저는 알릴레오를 보지 않는다. 판타지물을 싫어해서…”라며 유 이사장을 거칠게 몰아세웠다. 이에 대해 유 이사장은 “서운하다. ‘노유진의 정치카페’(팟캐스트 방송)를 할 때나 지금이나 저는 똑같다”며 유감을 표시했다.

JTBC가 마련한 신년 특집 대토론에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나와 열띤 토론을 벌였다. ⓒ JTBC 캡쳐
JTBC가 마련한 신년 특집 대토론에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나와 열띤 토론을 벌였다. ⓒ JTBC 캡쳐

조국 전 장관 인선에 대해서도 진 전 교수는 “그런 불의를 저지른 사람이 법무부 장관에 어울리느냐. 이걸(조 전 장관 아들 대리시험 의혹) ‘오픈북 시험’이라고 (알릴레오에서) 왜곡 보도를 하면 어떡하느냐”고 비판했다. 이에 유 이사장은 “우리에게 알려진 거의 모든 정보들은 검찰의 주장이고, 검찰의 주장이 언제나 팩트 또는 진실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두 사람 간 갈등은 토론회 이후에도 이어졌다. 유 이사장은 이후 자신이 출연한 JTBC 토론회를 언급하며 “그날 논쟁을 안 하려고 했지만 진 전 교수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 내용이 그간 우리가 수도 없이 봤던 검찰발 기사와 거의 같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저보고 망상·확증편향이라고 그러지만 누구나 그런 위험을 안고 있다”며 “진 전 교수가 밤에 혼자 있을 때 자신의 동영상이나 썼던 글을 보고 자기 생각과 감정에 대해 거리를 두고 성찰해 봤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급기야 1월7일에는 진 전 교수를 향해 “이별에도 기술이 필요하다”며 “최대한 존중하며 작별하는 게 좋겠다”고 결별을 선언했다.

이날 유튜브 방송인 ‘유시민의 알릴레오 라이브’에서 유 이사장은 “조국 사태에 대한 견해가 갈라졌다”며 “어떤 때에는 판단이 일치했고 길을 함께 걸었던 사이지만 지금은 갈림길에서 나는 이쪽으로, 진 전 교수는 저쪽으로 가기로 작심한 것으로 보인다”고 심경을 털어놓았다. 유 이사장의 발언이 전해진 후 진 전 교수가 “그럴수록 더 대화가 필요하다. 자주 뵙자”고 했지만 벌어진 간극을 메우긴 힘들어 보인다.

현재 진중권 전 교수는 페이스북을 대중과의 주된 소통 창구로 삼고 있다. 페이스북에만 매일 3~4개씩 글을 올린다. 언론 인터뷰에는 일절 응하지 않고 있다. 그때마다 대중의 반응은 크게 엇갈린다. 친여 성향의 네티즌들은 진 전 교수의 글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반면, 보수 성향의 네티즌들은 “사이다처럼 시원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큰 정의(검찰 개혁)를 위해 작은 불의(조국 사태)는 눈감아줄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유 이사장의 판단에 진 전 교수가 “지금의 문제는 공정과 정의의 문제일 뿐, 이념과 진영의 논리가 아니다”고 맞서고 있어, 양자 간 접점을 찾기가 좀처럼 쉬워 보이지 않는다. 1월2일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독재 정권 시절엔 견해가 다른 사람을 ‘빨갱이’로 몰았다. 문재인 정권에선 견해 다른 사람을 ‘자한당(자유한국당)’으로 몬다”며 “나를 그 어느 편에도 집어넣지 말아 달라”고 촉구한 것에서 이러한 심정이 읽힌다. 보수세력이 진 전 교수의 주장에 박수를 보내면서 여권 친문재인 지지층의 반발은 불가피해 보인다. 그렇다고 진 전 교수가 ‘보수’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진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보수층 “시원하다” 반응, 진중권 “난 보수 아닌 다른 진보”

‘왕년의 투사 노회찬, 왕년의 장관 유시민, 왕년의 논객 진중권.’ 2015년 세 사람이 함께 펴낸 《생각해봤어?》에 실린 문구다. 유튜브 채널 ‘유시민의 알릴레오’에서 유 이사장을 지칭하는 단어는 ‘시사 내비게이터’다. 유 이사장은 자신을 가리켜 솔직하게 ‘뚜렷한 정치적 편향’을 가진 ‘어용 지식인’이라고 말한다. 진 전 교수가 페이스북을 통해 가장 많이 하는 말 중 하나가 ‘공정’이다. 자신이 정한 공정의 기준에 미흡한 대상을 향해 가차 없이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는 점에서 그는 ‘심판자’의 이미지에 가깝다. 과거 노무현 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 두 사람이 처한 상황은 많이 다르다. 아니, 어쩌면 애초부터 달랐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할 듯하다. 유시민-진중권, 두 사람의 논쟁은 총선 이후 펼쳐질 진보층의 분화를 상징하는 한 단면이다.

 

‘노유진’ 활동 때부터 틈새 보였던 유시민-진중권

2013년 정의당에 입당한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고(故) 노회찬 전 정의당 의원과 함께 팟캐스트 ‘노유진의 정치카페’를 진행할 정도로 매우 가까웠다. 세 사람이 함께 한 방송 내용은 훗날 《노유진의 할 말은 합시다》와 《생각해봤어?》에 실렸다. 당시 노유진의 팟캐스트는 정가의 큰 화제였다.

정의당 당원 수가 크게 늘어난 배경에는 ‘노유진’의 활동이 작용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노유진의 할 말은 합시다》에는 유 이사장 합류와 관련한 여러 에피소드가 실려 있다. 딴지일보 총수인 김어준씨가 유 이사장과의 대담을 팟캐스트로 제작했는데, 당시 김씨는 청취자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유시민이 정치를 그만두겠다니, 정말로 그만둘 것 같다. 그런데 나의 직감은 그가 정치가 아니면서도 아주 정치적인 방법으로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것 같다.” 책 출간일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이는 현실이 됐다.

《노유진의 할 말은 합시다》의 부제는 ‘정의가 부재한 사회에 던지는 통렬한 질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정의’의 개념을 놓고 유 이사장과 진 전 교수는 서로 상반된 의견을 보이고 있다. 세 사람이 방송한 내용을 책으로 펴낸 《생각해봤어?》에서 권력을 바라보는 유 이사장과 진 전 교수의 시각은 약간 다르다.

“권력자 측근들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싸움·암투·경쟁 자체가 문제인가?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사람 사는 데에는 모두 갈등이 있는 거고, 더군다나 최고 권력인 대통령 주변에는 당연히 신임을 얻고 권한을 위임받기 위한 경쟁과 갈등이 있죠.”(유 이사장)

“권력을 가진 이가 권력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의 문제예요. 공식 라인도, 비선 라인도 모두 권력자에게 필요하죠. 하지만 공적으로 공표될 일은 공식 라인을 통해서 할 때, 그 결정이 힘이 생기죠. 그것이 권력이고요. 내 마음대로 하는 게 권력이 아니라.”(진 전 교수)

책 《생각해봤어?》에서 두 사람은 진보정당을 놓고도 다소 차이점을 드러냈다. 유 이사장은 책에서 “지금의 양당 체제는 1987년 체제(직선제 개헌안)의 완성형”이라며 “보수세력도, 자유주의 정당도, 진보정당도, 제3 정치세력을 구축하려는 시도가 계속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반면 진 전 교수는 “(제3 정치세력 등장이) 완료형이 아니라, 아직 진행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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