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선 돌풍’ 부티지지에게서 ‘오바마의 향기’가 난다
  • 김원식 국제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2.12 11:00
  • 호수 1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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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대선 정국에 돌풍 일으킨 피터 부티지지…“공격적이면서도 잘 준비된 인물” 극찬

“당신이 먼저 뛰지 않는다면, 민주당에 우호적인 도시에서도 충분하지 못할 것이다.”

2월3일(현지시간) 실시된 아이오와 민주당 코커스(당원대회)에서 돌풍을 일으킨 피터 부티지지가 9년 전인 2011년 만 29세의 나이로 인디애나주(州) 사우스벤드 시장에 당선된 직후 밝힌 소감이다. 그는 당시 자신의 고향인 사우스벤드 시장직에 도전, 74%의 압도적 득표율로 승리해 사우스벤드 역사에서 두 번째 최연소 시장이 됐다. 이미 9년 전에 이른바 ‘밑바닥 풀뿌리’ 민심의 지지를 확보하는 비결을 터득한 부티지지가 이번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돌풍을 일으킨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 셈이다.

아이오와 코커스는 미국 대선 경선 레이스의 첫 관문이다. 언론들은 조 바이든 전 부통령,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등 화려한 경력을 갖춘 민주당 후보들에게 집중하고 있었지만, 실제 코커스 현장에서 지지하는 후보 이름 앞으로 줄을 서라고 하니 부티지지에게 표가 몰렸다. 대세론에 안주했던 바이든 전 부통령은 개표 결과 4위로 추락했다. 부티지지는 기존 후보들보다 부족한 선거자금에도 아이오와주 곳곳에 사무실을 개소하고 버스 투어로 밑바닥을 훑었다. 이유 없는 돌풍이 아니라 9년 전 시장 선거에서 그가 한 말처럼 자신이 먼저 선거운동에 앞장선 결과였다.

1982년 출생, 올해 나이 만 38세인 부티지지는 2011년 인디애나주의 인구 10만 명이 사는 사우스벤드 시장으로 취임해 재선을 거쳐 작년 말까지 역임한 인물이다. 그가 첫 민주당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키자, 하버드대학과 옥스퍼드대학 등 명문대 출신으로 동성애자임을 공개한 성소수자라는 일부 이력에만 초점이 맞춰진다. 오히려 인구 10만 명 규모 작은 도시의 시장 경력을 가지고 과연 미국 전체를 경영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그는 쇠퇴한 러스트벨트(공업도시)인 사우스벤드를 첨단산업단지로 바꾸는 역할을 톡톡히 수행한 인물이다. 한때 사우스벤드는 스투드베이커(Studebaker)라는 자동차 메이커의 메카였다. 그러나 1963년 이 회사가 문을 닫은 후 거의 50년 가까이 쇠퇴한 도시의 상징이 됐다. ‘사우스벤드가 노터데임대학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고 스투드베이커의 유령에서도 벗어날 수 없다’는 말이 나온 이유다. 노터데임대학은 사우스벤드의 또 하나의 상징이다.

미국 민주당의 2020 대선 후보 경선에서 복병으로 떠오른 피터 부터지지 인디애나주(州) 사우스벤드 시장 ⓒ EPA 연합
미국 민주당의 2020 대선 후보 경선에서 복병으로 떠오른 피터 부터지지 인디애나주(州) 사우스벤드 시장 ⓒ EPA 연합

‘죽어가던 도시’ 소생시킨 30대 시장

하지만 부티지지는 노터데임대학과 산학협력을 통해 버려진 건물과 흉가들을 철거하고 다시 첨단연구단지로 개발하는 사업에 박차를 가했다. ‘이그니션 파크(Ignition Park)’로 대표되는 첨단산업단지는 데이터센터 유치뿐만 아니라 최대한 환경을 살리면서 강가에는 대중예술공원을 건설하는 등 사우스벤드 시민들에게 도시의 모습을 탈바꿈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후 부티지지는 2015년 11월 다시 80%의 득표율로 시장 재선에 성공한다.

하지만 그는 이 지역 흑인층의 약 40%가 저소득층으로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개발로만 빈곤층의 실질적인 삶을 향상시킬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버려진 건물을 시의 재정으로 보수해 저소득층이 시의 지원을 받아 임차해 생활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약 1억5000만 달러(약 1775억원)를 투입해 수십 년간 폐가로 방치돼 열악한 상하수도 시설도 스마트 시스템을 도입해 개선했다. 이러한 현대화 사업이 완료된 2017년에는 하수도 범람 발생률이 75% 감소했다. 그는 자동차 중심으로 돼 있던 도로에 인도를 확장하고 자전거 전용도로와 회전교차로도 도입하는 등 도심 활성화 사업도 추진했다. 그사이에 사우스벤드 주민들의 소득은 31%나 증가했고 실업률이 반으로 줄고 빈곤율도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지난해 부티지지가 대선 출마를 선언하자  팀 스콧 사우스벤드 시의회 의장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 “그는 적재적소에 젊고 역동적인 팀을 가진 활동적이고 젊은 지도자”라며 “공격적이면서도 잘 준비된 인물”이라고 극찬한 이유다.

 

보수·진보 아우르는 ‘중도색’이 강점

부티지지는 몰타에서 선교사로 미국에 건너와 노터데임대학 교수를 역임한 이민 1세대 아버지와 인디애나에서 5대째 살아온 토박이 집안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대학 졸업 후에는 유명한 컨설팅 회사인 매킨지에서 컨설턴트로 근무한 전형적인 정통파 엘리트 출신이다. 성공회 신자인 그는 사우스벤드 시장으로 한창 주가를 날리던 2015년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해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8세 연하인 그의 남편 채스턴 글래즈먼은 중학교 교사로, 둘은 2018년 사우스벤드에 위치한 미국 성공회의 세인트 제임스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는 자신이 성소수자인 점에서도 드러나듯이 성소수자(LGBTQ) 권리 차별금지와 낙태 및 마리화나 합법화에 찬성하며 탄소세 도입 등 기후변화와 환경 문제에도 적극적이다. 또 최저임금 15달러를 지지하고 대통령 선거인단제도 폐지를 주장한다. 전체적으로 중도좌파적인 정책을 취하지만, 급진파로 분류되는 샌더스 상원의원 등과 비교하면 중도파로 통하고 있다. 그만큼 보수나 진보는 물론 유색인종 등 모든 계층에서 지지를 확보하는 흡인력이 뛰어난 장점을 지니고 있다. 동성애를 가장 강력하게 반대하는 미국 정통 보수진영의 나이 많은 유권자도 그의 연설에 열광하며 “저런 손자가 있었으면 좋겠다”며 지지를 보낸다.

미 해군 예비군이었던 부티지지는 시장 첫 임기 때인 2014년에는 7개월간 휴가를 내고 아프가니스탄에 예비군 대위로 파병되기도 했다. 애국심을 강조하고 있는 미국 사회에 어필할 수 있는 소중한 경력도 쌓은 셈이다. 그가 지금 미국 시민의 단합을 강조하며 ‘당파정치로 조각난 미국을 하나로 뭉치자!’고 큰 소리를 낼 수 있는 배경이다.

지금 미국 전역은 부티지지를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에 비유하며 술렁이고 있다. 지난 2008년 아이오와 경선에서 당시 대세였던 힐러리 클린턴을 꺾으며 상승세를 탄 오바마 전 대통령처럼 ‘제2의 오바마 돌풍’을 이어갈지에 온 관심이 쏠린다. 특히 흑인층의 지지가 취약한 그가 백인 비율이 90%에 달하는 아이오와에서는 돌풍을 일으켰지만, 당장 2월11일 뉴햄프셔주 경선과 오는 2월29일 유색인종 비율이 높은 사우스캐롤라이나 경선에서도 상승세를 이어갈지는 미지수다. 올해 미국 대선은 죽어가던 사우스벤드를 살린 부티지지가 과연 미국도 품을 수 있을지 또 하나의 볼거리를 등장시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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