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구명 위한 비선조직 움직였다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20.02.12 10:00
  • 호수 1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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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전 장관 등 정․관․문화계 탄원서, 태광에서 대신 작성한 정황도

과거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의 수백억대 횡령 혐의에 대한 검찰 수사 당시 비선조직(이하 구명팀)이 움직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조직은 검찰 수사와 재판 대응은 물론 총수 부재로 혼란에 빠진 태광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구명팀은 이 전 회장의 형량을 줄이기 위해 사회 저명인사들로부터 법원에 제출할 탄원서를 모집하는 작업에도 관여한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이 과정에서 태광이 탄원서를 작성한 정황도 포착됐다. 태광이 직접 작성한 탄원서를 탄원인의 이름만 빌려 법원에 제출했다는 것이다.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 시사저널 포토·연합뉴스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 시사저널 포토·연합뉴스

변호인 물색 작업, 컨트롤타워 역할도

구명팀에 소속됐던 관계자에 따르면 이 조직은 이 전 회장에 대한 수사가 시작된 2011년을 전후해 조직됐다. 팀원은 이 전 회장을 비롯한 그룹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및 임원 등으로 이뤄졌다. 당시 구명팀에서 활약했던 관계자에 따르면 이들은 이 전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에 대처하기 위해 주 1회 ‘코어미팅(핵심자 회의)’을 가졌다. 구명팀은 철저히 태광 밖에서 움직였다. 회의는 대부분 정규 업무시간이 종료된 오후 7시 이후, 팀원의 자택이나 별도의 사무실 등지에서 이뤄졌다. 이는 조직의 실체가 알려지는 것을 경계한 조치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구명팀 내에선 어떤 활동이 이뤄졌을까. 먼저 이 전 회장을 위한 변호인단 구성에 관여했다. 이 전 회장은 편법증여 및 비자금 조성 혐의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된 2010년 10월 이후 유명 대형 로펌에 변호는 물론 전관 출신 변호사 선임까지 모든 법률 업무를 위임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2011년 1월 이 전 회장이 구속기소되자 태광은 직접 변호인단 구성에 나섰다. 구명팀은 당시 전관 출신 변호사를 물색하는 작업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 결과 회의 석상에서 이 전 회장을 위한 율사(律師) 후보들이 거론됐다. 당시 물망에 오른 변호사 이력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구명팀은 이 전 회장 재판 담당 판사와의 관계에 중점을 둔 것으로 분석된다. 판사와 변호사가 좌우로 나란히 배치된 이력서에는 고향과 나이, 출신 대학, 사법연수원 기수부터 공통 경력이나 전·후임 이력 등의 관계까지 비교돼 있다. 이처럼 단순한 이력 외에도 구명팀은 ‘담당 판사와 같은 하숙집에서 함께 사법시험을 준비한 사이’ 등 사적인 친분 관계까지 변호사 선임 기준에 포함시켰다.

구명팀의 의견이 얼마나 반영됐는지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이 전 회장은 재판 과정에서 대법관 출신 2명이 포함된 113명에 달하는 초호화 변호인단을 꾸렸다. 이 전 회장은 2011년 1월 구속기소 후 63일만 감옥에서 보냈다. 악화된 건강상태를 이유로 병보석 신청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이후 1·2심에서 모두 징역 4년6개월을 선고받았지만 2018년 12월 흡연과 음주를 즐긴 사실이 드러나 재수감되기까지 계속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왔다. 이를 두고 황제 병보석 논란이 일었다. 법조계에선 이처럼 특혜에 가까운 대우는 초호화 변호인단 덕분에 가능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 전 회장은 지난해 6월 대법원에서 징역 3년이 확정돼 복역 중이다.

구명팀은 또 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도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 수사로 하락한 기업 이미지와 대외신뢰도를 회복하고 낮아진 직원들의 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구명팀 내부 문건에는 이를 위한 다양한 대책이 담겨 있다. 문건에서 구명팀은 당시 상황에 대해 ‘2010년 태광사태는 내부고발에 의한 촉발로 시작되어 무력한 초기대응으로 인해 사회전반에 확대됐다. 태광 검찰 수사로 그룹에 대한 위기요소는 반복·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구명팀은 문건을 통해 이에 대한 ‘태광 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다양한 대책들을 제시했다. 또 대책 실현을 위해 ‘사회공헌 아젠다 확정 및 사회공헌본부 설립’과 이를 대내외에 알리기 위한 ‘홍보체계 구축’ 등이 주된 업무 스케줄에 포함됐다. 적극적인 사회공헌활동을 벌이고, 이를 외부에 알려 이 전 회장의 재판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구명팀의 이런 제안이 받아들여졌는지 여부 역시 미지수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태광은 2012년 8월 그룹 홍보팀을 새로 꾸렸다. 검찰 수사가 시작된 2010년까지만 해도 태광은 국내 대기업 중 유일하게 그룹 홍보팀을 갖추지 않고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태광은 2013년 2월 사회공헌본부를 신설하기도 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을 위한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일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을 위한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일었다. ⓒ 시사저널 박은숙

형량 참작 위한 탄원서 모집활동 주력

구명팀의 핵심 활동 중 하나는 사회 저명인사들로부터 탄원서를 모집하는 일이었다. 이 전 회장 재판에서 형량 참작을 받기 위해서였다. 탄원인은 주로 태광 데이터베이스에 근거해 선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고(故) 이임용 태광그룹 창업주가 설립한 일주학술문화재단 장학금사업과 학술지원사업, 문화·예술 지원사업 수혜자들이 탄원인 후보가 됐다. 선대의 선행을 형량을 줄이는 데 적극 활용한 것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다. 일주학술문화재단으로부터 15만 달러(1억8000만원)의 유학비를 지원받은 그는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이 전 회장에 대한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한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됐다. 조 전 장관은 앞서 비리를 저지른 재벌 총수에 대한 엄벌을 주장해 왔다는 점에서 ‘언행불일치’라는 비판과 함께 유학비를 지원받은 대가로 법원에 탄원서를 낸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됐다.

여기에 더해 시사저널은 법원에 제출된 탄원서들이 태광에 의해 작성된 정황도 포착했다. 구명팀에서 활동한 관계자에 따르면 태광에서 작성한 탄원서 초안을 구명팀의 검토를 거쳐 탄원인으로부터 사인이나 도장을 받아내는 식으로 탄원서 모집이 이뤄졌다. 태광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춰 탄원서를 만들어낸 셈이다. 실제 시사저널이 태광과 구명팀 간 이메일 송·수신 내역을 확인한 결과 탄원서 초안들이 다수 오갔다. 탄원서 초안 파일들의 작성 이력을 보면 모두 탄원서가 법원에 제출된 2011년 4월15일 이전이었다. 시사저널이 확보한 탄원서 초안 중에는 조 전 장관의 것도 포함돼 있었다. 다음은 그 내용 일부다.

“태광그룹 이호진 회장에 대한 선처를 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리기 위해 글을 올립니다. (중략) 저는 1994년도에 4기 해외박사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늦은 나이에 버클리대학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재단의 도움 덕분으로 저는 경제적 어려움 없이 학업에만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중략) 최근 몇 개월간 이호진 회장에 대한 검찰조사와 건강 이상 등에 대한 소식을 접하게 되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간절한 마음으로 선처를 부탁드리옵니다.”

 

장학생 탄원서 초안, 대부분 비슷한 패턴

이런 탄원서 초안 내용은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권선동 자유한국당 의원이 공개한 조 전 장관의 탄원서와 정확히 일치했다. 탄원인 가운데는 또 다른 태광 장학생 출진 전직 장관이 2명 더 있었고, 재단으로부터 수혜를 입은 문화·예술계 인사들도 포함돼 있었다. 이들의 탄원서 초안의 내용은 세부적인 내용만 다를 뿐 큰 틀에선 비슷한 패턴을 보였다. ‘자기소개→선처 요청→태광의 선행→이 전 회장의 건강상태’ 순이었다. 아래는 태광 장학생 출신 전직 장관(위)과 태광의 후원을 받은 예술계 인사(아래)의 탄원서 초안 내용이다.

“부장판사님께 편지를 드리는 이유는 태광그룹 이호진 회장에 대한 탄원을 위해서입니다. 이호진 회장은 장학·학술은 물론 문화·예술 분야에 이르기까지 소외계층과 어려운 이웃을 위해 공헌한 바가 크기에 선처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습니다. (중략) 이호진 회장은 또 지난해 10월부터 시작된 검찰 수사로 인해 건강까지 많이 악화된 상태라고 합니다. 원래 간이 안 좋았다고 하는데 심적 스트레스를 받아서인지 간암으로까지 악화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태광그룹 이호진 회장에 대한 선처를 바라는 심정에서 펜을 들었습니다. 이호진 회장은 지금까지 꾸준히 우리 사회에, 특히 문화·예술 분야에 기여하고 공헌한 바가 큰 분입니다. (중략) 이호진 회장은 8000개에 달하는 작은 캔버스를 모아 제작한 저의 설치작품을 많은 대중들과 함께 볼 수 있도록 전시를 지원해줬습니다. (중략) 특히 4월5일에는 간암 수술도 받는 등 건강도 악화됐다는 소식을 들어 가슴이 아픕니다.”

탄원인 중에는 재단 수혜자 외에 태광과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어온 여야 정치인과 학계 인사들은 물론 종교계 인사들도 있었다. 또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주요 경제단체들에 대한 탄원서 초안들도 눈에 띄었다. 일련의 의혹들과 관련해 태광그룹 관계자는 “시간이 많이 지난 사안이어서 구명팀에 대한 정보는 확인이 어렵다”면서도 “내부적으로 확인한 결과 태광에서 탄원서 초안을 작성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 같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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