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대학원 지원서 미어터져” 해외로 향하는 AI 미래 인재들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0.02.11 16:00
  • 호수 1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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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첫발 뗀 우리나라 교육…아직 경쟁력·취업 기회 ‘해외파’에 못 미쳐

“인공지능(AI) 관련 영국 대학원들은 지원 서류로 미어터집니다.” 

최근 서울 강남의 한 유학원 설명회를 찾은 A씨(35)는 ‘AI 유학’의 인기를 실감했다. ‘차세대 핵심 기술로 각광받는 AI를 공부하려면 남들보다 앞서 유학을 가야 하지 않을까’ 어렴풋이 생각해 왔는데 이미 경쟁이 치열했던 것이다. 설명회에는 부모와 함께 온 대학생부터 대학원생, 직장인까지 다양했다. 다른 전공 희망자도 있었지만 설명회는 트렌드를 반영해 AI대학원 사례를 가장 비중 있게 소개했다. A씨는 “국내에도 AI대학원이 생겼지만 아무래도 더 많고 경쟁력이 높으며 영어 공부도 같이 할 수 있는 영국이나 미국 쪽을 먼저 고려하게 된다”고 말했다. 

한국 AI의 미래를 책임져야 할 전공자들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 영국과 미국의 AI 대학교·대학원에 지원자가 몰리고, 그곳에서 공부하고 현지 기업에 취직하는 이도 부지기수다. 그간 기업 연구개발자, 대학교수 구인난과 타개 노력 등이 집중 조명된 가운데 이 같은 ‘미래 인재’ 유출은 속수무책으로 이뤄지고 있다. 

‘AI 유학’ 경쟁률 부쩍 높아져 

미래 인재들이 유학을 선택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그러나 그 배경은 한 가지로 수렴된다. 국내의 AI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시사저널이 서울 강남, 종로 등지의 주요 유학원에 문의한 결과 AI 유학을 준비하는 사람은 지난해 들어 급증세를 보였다. 강남의 영국 석·박사 전문 B유학원 관계자는 “경영대학원과 공학 계열 대학원의 경우 늘 인기가 있었다지만 요즘 컴퓨터공학 대학원들, 특히 AI 관련한 곳엔 지원 서류가 미어터진다. 정말 치열하다”며 “2년 전쯤 학부 학점이 조금 모자라도 입학 오퍼(제안)가 나왔던 AI대학원에 지금은 합격선에서 0.5점 정도만 모자라도 떨어진다. 그만큼 뛰어난 지원 서류들이 많이 들어온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강남 C유학원 관계자도 “영국 AI대학원의 한국인 지원율을 알 순 없어도 유학원에서 지켜보면 지원하는 사람이 부쩍 많아진 게 느껴진다”면서 “각 대학원도 입학지원서를 심사할 때 학부 전공이나 직업 연관성 등을 더 까다롭게 체크하는 듯하다”고 설명했다. 

종로 D유학원 관계자는 “미국도 마찬가지”라며 “AI가 워낙 대세라 지원자가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유학 전문 네이버 블로그 ‘김쌤마이스쿨’ 운영자는 “미국 대학교·대학원 유학 상담에서 문의가 몰리는 분야는 단연 컴퓨터 사이언스(Computer Science)고, 이 중 세부 전공을 정해야 하는 대학원의 경우 AI를 가장 선호한다”며 “국내에서뿐 아니라 미국 내, 전 세계적으로도 비슷한 추세이기 때문에 AI 유학 지원은 높은 경쟁률과 낮은 합격률을 보인다”고 밝혔다. 

전 세계에서 AI 대학교·대학원이 가장 많은 나라는 영국이다. 대학 검색 사이트 핫코시스어브로드(hotcoursesabroad) 조사에 따르면 영국엔 2018년 말 기준 AI 관련 32개 대학, 23개 대학원이 있다. 미국(3개 대학, 6개 대학원), 중국(1개 대학), 일본(1개 대학원)이 뒤를 이었다. ‘알파고’의 고향이자 4차 산업혁명 중심지인 영국은 높은 교육·연구 수준, 정부 지원, 기업 성장 속 글로벌 AI 인재를 끌어모으고 있다. 

후발주자 한국, 최근 7개 대학원 신설 

AI 대학교·대학원이 한 곳도 없는 곳으로 나온 한국에서는 조사 기간 이후 정부 지원하에 5개, 대학 자체적으로 2개 대학원을 설립했다. 사회적 분위기가 달아오르며 국내 AI대학원에도 지원자가 몰렸으나 동시에 신규 교수 충원 어려움, 산학 연계 미흡 등 후발주자로서의 한계도 많이 노출했다. 글로벌 선도대학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지는데 입학 경쟁률은 높은 상황. AI 전공 희망자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는 이유다. 

유학에는 영어 공부, 견문 넓히기 등 부차적인 이점도 따라온다. 영국 리즈대에서 데이터 사이언스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유튜브 채널 ‘꽃부리’ 운영자는 영상을 통해 “사람이 하는 말을 분석하는 쪽에 관심이 많았다. 한국어보다는 영어로 된 텍스트가 더 ‘빅데이터’에 가깝다고 생각해 영어로 진행하는 석사 과정에 도전했다”면서 “해외생활을 경험해 보고 싶었던 것도 국내가 아닌 영국에서의 석사 공부를 결정하게 된 한 이유”라고 말했다. 그는 또 “영국뿐 아니라 아시아, 유럽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학생들과 함께 공부한다. 글로벌 네트워크를 쌓고 있는 셈”이라며 “이들과 잘 사귀어 놓으면 나중에 글로벌 빅데이터, AI 동향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졸업 후 취업이다. 정확히는 전 세계를 무대로 경쟁하고, 글로벌 스탠더드 수준 이상의 연봉을 받는 직장에 들어가는 일이다. 한국정보화진흥원(NIA) 분석에 의하면 우선 AI 기업들은 미국(2018년 6월 기준 2028개), 중국(1011개), 영국(392개) 등에 몰려 있다. 한국은 26개에 불과했다. 유학생들은 학업을 마친 뒤 ‘국내파’보다 미국 실리콘밸리, 영국 테크시티 내 수많은 AI 기업에 취업하기 용이하다. 

국내에 일자리가 없는 건 아니다. 오히려 인력난에 허덕이고, 이는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는 2022년까지 국내 AI 개발 인력이 현장 수요보다 9986명 모자랄 것이라고 예상했다. 문제는 인재들이 국내에서 일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지난해 12월 국내 산업계, 학계, 연구원 등에서 AI 관련 연구를 하는 전문가 3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를 근거로 “한국의 AI 인재 경쟁력이 미국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고 정부가 대규모 투자를 추진하는 중국과도 상당한 격차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경연은 “조사 대상 전문가의 말을 빌려 ‘국내에서도 관련 인력이 배출되지만 미국이나 유럽, 중국행을 택하는 실정’”이라며 “세계적으로 AI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선진국 수준의 연봉 지급이 어려운 점도 인력 확보를 어렵게 한다”고 지적했다. 

“국내에서 배출한 인력도 해외 기업으로” 

한편 국내 대학에서 배출된 AI 인재가 부족하자 일부 대기업은 아예 AI 교육 역량이 우수한 해외 대학과 손잡고 있다. 임희석 고려대 인공지능연구센터장은 “과도한 외국 인재 우대는 자칫 기술 사대주의로 흐를 수 있다”며 “국내 인재들도 우수하다. 10분의 1이라도 국내 학자와 신진 연구원에 투자하면 5년, 10년 후 더 많은 것들을 보여줄 수 있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이지형 성균관대 AI학과 학과장은 “대학들 스스로도 새로운 연구와 도전을 통해 세계가 따라 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를 발굴해야 한다”면서 “그래야 기업은 인재를 얻기 위해, 학생은 인재가 되기 위해 국내 대학을 주목하고 선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내에 있는 AI대학원은 총 7곳이다. 올해 3곳이 추가돼, 9월 가을 학기부터 총 10곳으로 늘어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해 3월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고려대, 성균관대 등 3개 대학을 AI대학원으로 선정한 데 이어 같은 해 9월 포항공대(포스텍)와 광주과학기술원(GIST) 등 2개 대학을 추가로 선정했다. 

 

국내 AI대학원, 9월이면 총 10곳으로 늘어 

KAIST와 고려대, 성균관대는 이미 지난해 가을 학기를 시작했고 포스텍, GIST는 3월부터 수업을 시작한다. 이 밖에 서울대는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을, 연세대는 AI대학원을 자체적으로 신설해 올해 1학기부터 본격 운영한다. 각 학교 모두 AI대학원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고 운영에 사활을 걸고 있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0월28일 문재인 대통령은 AI 분야를 새로운 국가 차원의 전략 산업으로 키워내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후 AI 분야 인력과 예산을 확대하고 조직을 신설하는 등 전방위적으로 움직이는 중이다. 과기부는 2022년까지 AI 관련 고급 인재 1400명과 융·복합 인재 3600명을 양성하겠다고 공언했다. 

정부는 올해 지원하는 AI대학원을 3곳 더 늘릴 예정이다. AI대학원으로 선정된 대학은 우선 첫해 10억원을 시작으로 5년간 총 90억원을 지원받게 된다. 이후에도 단계 평가를 거쳐 우수한 운영 실적이 확인되면 추가로 5년(3+2년)을 더해 최대 10년간 총 190억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올해 선정되는 대학들은 9월부터 관련 학과를 운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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