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던진 질문…‘중국 의존도 이대로 괜찮나’
  •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2.16 10:00
  • 호수 1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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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공장’ 中 통해 성장한 韓, 안정적 공급 흔들리면 ‘휘청’

중국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주요 발병지 전면 폐쇄와 같은 중국 당국의 뒤늦은 총력 대응에도 불구하고 확진자 증가 추세는 아직 지속되고 있다. 언제쯤 상황이 수습 국면으로 접어들지에 대해 전망하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대규모 감염증의 발병은 직접적인 인명 피해와 더불어 세계경제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우한을 비롯한 주요 발병 지역에서의 공장 가동 중단은 물론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주요 기업들의 춘절 휴무 연장, 감염을 우려한 노동자들의 기피 등이 겹치면서 중국의 산업 활동은 급속히 얼어붙고 있다. 

중국 내 산업 활동의 위축은 중국뿐만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Global Supply Chain)을 위축시키면서 2월부터 전 세계 여러 곳에서 가동 중단을 포함한 피해를 야기할 전망이다. 한국의 경우 현대자동차가 중국에서의 부품 공급이 중단되면서 잠정 휴업을 결정했다. 현재 상태가 지속될 경우 2월 중순부터 이러한 상황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의 생산 체계를 하나로 묶어 놓았던 글로벌 공급망의 한계와 약점이 전염병으로 드러나고 있는 모습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기아차는 신종 코로나 확산으로 중국산 부품 수급에 차질이 발생해 공장 가동을 일시 중단했다. ⓒ연합뉴스
기아차는 신종 코로나 확산으로 중국산 부품 수급에 차질이 발생해 공장 가동을 일시 중단했다. ⓒ연합뉴스

전염병이 드러낸 글로벌 공급망의 약점

1979년 개혁개방 선언 이후 중국은 기존의 자급자족적 경제체제의 한계를 인정하고 미국과 서방이 주도하는 경제체제로의 진입을 시작했다. 이런 추세는 1990년대 초반 냉전의 종식으로 가속화됐고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으로 결실을 맺었다. 2000년대 들어 선진국은 디자인·설계·연구개발·마케팅·판매 등 서비스 관련 직무를 담당하고 개발도상국은 중간재 부품 조달과 제품 조립 등 제조 관련 직무를 담당하는 역할 분담이 세계적으로 진행됐다. 인터넷 등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을 통해 다른 국가에 위치한 사람들 사이의 의사소통 비용이 획기적으로 절감되면서 지리적 공간을 뛰어넘는 역할 분담이 가능해진 것이다. 

중국은 이 과정을 통해 ‘세계의 공장’이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한국은 중국의 성장을 통해 가장 큰 이익을 보는 국가가 됐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어려움을 겪던 한국이 단기간에 회복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물론 2000년대 이후 질적으로 다른 수준의 경제적 규모를 갖추는 데 있어 중국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국가와 대륙을 넘나들며 생산에 필요한 요소들이 조합돼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는 저렴한 가격으로 수요에 맞춘 공급이 가능해진 시기는 이때부터였다. 그 대표적 상징은 미국의 애플사가 출시한 아이폰에서 극적으로 드러났다. 캘리포니아주에 소재한 미국 본사에서 디자인을, 메모리와 디스플레이 등 주요 부품들은 한국과 일본이 공급하고, 중국의 대규모 조립공장에서 최종 조립해 전 세계에 판매하는 사업모델은 글로벌 공급망이 무엇인지를 세계인들에게 알려준 상징적인 사례다. 

글로벌 공급망은 2010년 이후 다시 한번 변화했다. 조립과 부품 생산에 머무르던 중국이 본격적으로 완제품 공급에 나서면서 선진국 주요 기업들을 위협하는 존재로 등장했다.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전환을 목표로 하는 중국 정부는 외국 기업들에 시장 진입의 대가로 기술 이전을 공공연하게 요구했으며, 이렇게 제공된 기술과 노하우는 중국 기업들을 통해 단시간에 습득·발전돼 갔다. 선진국 영역으로 간주됐던 기획과 설계, 디자인 등의 영역에서도 중국은 급속히 성장했고, 중국을 벗어나 해외 기업들에 대한 인수합병 등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중국 정부가 천명한 ‘중국제조 2025’는 이러한 상황과 자신감의 반영을 통해 나타난 중국의 산업정책이라 할 수 있다. 중국제조 2025는 핵심 부품과 자재의 국산화율을 2020년까지 40%로 끌어올리고, 2025년에는 70%까지 달성하겠다는 야심 찬 목표다. 차세대 정보기술, 로봇, 항공우주, 해양공학, 고속철도, 고효율·신에너지 차량, 친환경 전력, 농업 기기, 신소재, 바이오 등 중국의 미래를 이끌 10대 핵심 산업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비전이다.

중국의 급속한 성장과 질적 도약은 미국에 큰 위협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으며 이에 대한 견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확대됐다. 보수적인 싱크탱크를 중심으로 중국 견제를 위한 전략이 논의되기 시작했으며, 논의의 핵심에는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의 지위를 낮추거나 궁극적으로는 배제해야 한다는 논리가 있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미 ‘세계의 공장’이라는 지위를 굳건히 하고 있는 중국을 배제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2016년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한국과 캐나다를 비롯한 주요 국가들과의 기존 무역협정을 변경한 이후 중국에 대한 대규모 관세 부과를 통한 통상 분쟁을 전개했다. 많은 이들에게 미·중 무역분쟁은 중국에 대한 대규모 무역적자 감소를 요구하는 것으로 비춰졌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전 세계 주요 기업에 중국에 대한 대규모 장기 투자는 위험하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예상을 뛰어넘어 미·중 무역분쟁이 장기화하자 많은 기업들은 중국을 떠나 동남아 등 다른 곳으로의 이전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중국 내 임금의 급속한 상승, 각종 사회보장 비용 인상 등이 겹치면서 기업들의 탈중국 흐름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중국을 대체할 만한 생산기반을 갖춘 국가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흐름은 당분간 물밑에서 단계적으로 진행되며 구체적인 변화로 나타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우리에게 찾아온 새로운 도전의 시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신종 코로나는 다시 한번 중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려주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의 가장 기본적인 요건은 ‘안정적인 공급’임을 감안한다면 중국이 정치·사회적으로 많은 불안정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교통과 정보통신의 발전은 전 세계를 하나로 묶어놓은 글로벌 공급망을 가능하게 했지만 그러한 교통과 정보통신망은 반대로 전염병과 불안감의 급속한 확산을 가져왔다. 앞으로의 상황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 이전과는 똑같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단순한 경제적 계산으로만 공급망을 유지·관리하기보다는 추가적인 비용을 감내하더라도 지역적으로 분산된 복수의 공급망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강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30년간 중국을 통해 경제적 도약과 성장을 이뤄온 우리에게 새로운 도전의 시간이 찾아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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