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바이러스 주범 ‘박쥐의 똥’이 한약에 들어있다고?
  • 세종취재본부 김상현 기자 (sisa411@sisajournal.com)
  • 승인 2020.02.11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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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 통한 확산 보도 나오자 일부 온라인서 한의학 약재 야명사 등에 대해 우려 표명
한의학계, "식약처 통과한 약재만 사용해 한약 제조 위험성 없다" 반발
첩약보험 적용 등으로 한약 처방전 공개 등 후속조치 필요성 대두

"내가 먹는 한약에 박쥐 똥이 들어있단 말이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2019-nCoV)가 연일 세계를 강타하면서 바이러스의 근원지인 중국 우한의 전통시장이 세계의 질타를 받고 있다. 지난달 22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가 가오 푸 중국 질병관리본부장의 "우한의 화난 시장에서 팔린 박쥐로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확산한 것으로 보인다"라는 발언을 보도했기 때문이다.

이후 박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유포범으로 몰리고 있다. 영국 BBC는 환경운동가들이 중국의 야생동물 거래를 영구적으로 금지할 것을 촉구했다고 보도했다. 또 신종 감염증의 70% 이상이 동물, 그중에서도 야생동물로부터 나오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는 내용까지 전했다. 특히 박쥐를 위험군으로 보고 있으며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사스)과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메르스)도 박쥐에서 유래했다고 설명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된 이른바 '우한 폐렴'의 최초 발생지인 중국 후베이성 우한의 화난(華南)수산물도매시장.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된 이른바 '우한 폐렴'의 최초 발생지인 중국 후베이성 우한의 화난(華南)수산물도매시장. ©연합뉴스

이러한 보도가 이어지자 한의학을 애용하는 국내에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동의보감에 나오는 야명사(夜明砂)나 오령지(五靈脂) 때문이다. 둘 다 일반인들에게 박쥐의 변으로 알려져 있는 한약재다.

이 때문에 일부 한의학을 비과학적이라고 치부하는 온라인 사이트 등을 통해 "박쥐를 먹는 중국인들에 대한 질타가 이어지는데 박쥐 똥을 약으로 먹는 우리가 비난할 자격이 있나"라는 이야기가 퍼지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한의학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있다. 심지어 한의사가 처방전을 주지 않는 이유를 환자 몰래 동물의 똥과 벌레들을 먹이기 때문이라는 주장까지 펼치고 있다.

 

동의보감에 나와 있는 '박쥐 똥'과 '날다람쥐 똥'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제공하는 한의학고전DB를 보면 동의보감 '외형편 권1'에 야명사에 대해 "박쥐의 똥이다. 내장과 외장을 치료하고 눈을 밝게 하며, 눈에 꽃 같은 것이 아른거리는 것을 없앤다. 물에 일어 씻어서 불에 쬐어 말린 후 가루 내어 환이나 산으로 먹는 것이 좋다"라고 적혀있다. 또한 '잡병권 권7'과 '잡병권 권11'에 '5가지 학질을 치료한다' 거나 '소아의 무고감과 여러 가지 감병을 치료한다'라고 적혀있다.

오령지는 박쥐의 변이 아니고 날다람쥐의 분변이다. 한의학연 관계자은 "정확히는 복치 날다람쥐(Trogopterus xanthipes)의 분변이기에 박쥐의 분변과는 다르다"라고 설명했다. 오령지 역시 동의보감에서 내용을 찾을 수 있다.

'내경편 권3'에 "월경을 잘 나오게 하고, 혈붕이 멎지 않는 것이나 적백대하를 치료한다. 반은 생것을 쓰고 반은 볶은 것을 가루 내어 술에 1돈씩 타서 먹거나 환으로 만들어 먹는다"라고 적혀있다. 특히 '탕액편 권2'에 "생것을 쓸 때는 술에 갈아 수비하여 모래와 돌을 버리고 써야 하고, 익혀서 쓸 때는 수비하여 연기가 나도록 볶아 가루 내어 써야 한다"라고 적혀있다. 만약 동의보감을 맹신하는 한약사가 있다면 아직 생것을 그대로 쓴다고 생각할 수 있을만한 대목이다.

한의학고전DB에서 검색한 야명사에 대한 내용 일부. 야명사는 동의보감뿐만 아니라 단곡경험방, 본초정화 등 여러 한의학 문헌에 내용이 수록돼 있다.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학고전DB에서 검색한 야명사에 대한 내용 일부. 야명사는 동의보감뿐만 아니라 단곡경험방, 본초정화 등 여러 한의학 문헌에 내용이 수록돼 있다.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약은 '생약'을 한의학적 진단 근거에 의해 채취·정제·가공한 것

한의학연 관계자는 "한약재 사용 및 유통은 식약처 기준에 따라 제약회사(hGMP 제조업소)에서 한약재 규격품으로 제조한 것으로 진행한다"라며 식약처의 허가 없이 생약재를 그대로 사용하는 한의사는 없다고 자신했다.

이태희 대전필한방병원 원장은 "박쥐나 박쥐의 분변이 한약재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은 전혀 사실 무근"이라며 "실제 동의보감에 나와 있는 처방 전부를 사용하는 한의사는 없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현재 사용하고 있는 처방들은 오랜 시간 동안 부작용이 없음이 증명된 안전한 약재들로 구성돼 있고, 식약처 테스트를 통과한 것으로만 조제한다"라고 말했다.

소비자가 한약과 생약을 구분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재래시장이나 시중에서 쉽게 한약재라는 이름으로 팔리는 것들은 그냥 식품이지 사실상 법적 한약이 아니다"라면서 "한약이란 광물, 동물, 식물에서 얻은 자연 그대로의 '생약'을 한의학적 진단 근거에 의해 채취하고 정제 가공하여 섭취하는 것을 말한다"라고 못 박았다. 그러므로 박쥐 똥과 같은 것이 한약재로 유통될 일도 없다는 것이 한약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환자의 불신 해소를 위해 한의학연은 한약의 효능과 안전성 등을 과학적으로 규명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2018년도부터 동의보감 탕액편 충부에 기록돼있는 동물성 약재의 효능을 과학적으로 규명하고 있다. 최근 충부에 기록돼 있는 약재인 선태(선퇴, 매미허물)와 백강잠(누에나방 유충이 백강균의 감염에 의해 죽은 것을 말린 것)이 항파킨슨 효능을 가진다는 사실과 그 작용기전을 규명해 국제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첩약보험 적용으로 한약 처방전 공개 돼야

▲ 서울 제기동 약령시장에서 원산지를 표시·판매하고 있는 한약 재료들.            ⓒ시사저널 박은숙
▲ 서울 제기동 약령시장에서 원산지를 표시·판매하고 있는 한약 재료들. ⓒ시사저널 박은숙

이태희 원장은 처방전 비공개에 대한 루머에도 답답한 심정을 내비쳤다. 첩약의 건강보험 적용 문제와 엮여있기 때문이다.

그는 "처음 첩약보험을 하자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가장 반대했던 것은 오히려 한의사들이었다"라고 말했다. 첩약보험이 이뤄지면 강제로 한약에 무엇이 들어가는지, 어떤 처방을 내었는지 공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이유로 소수의 한의사가 자신의 비방(秘方)을 공개하는 것을 꺼려 반대하고 있는 경우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밝혔다. 거기다 첩약보험이 생기면 한약제제가 비급여에서 급여화가 되기 때문에 한의사들의 한약 수입이 줄어들 가능성이 더 커진다.

하지만 한의사들도 양의사와 약사처럼 처방전에 따라 전문 한의약품을 조제하고 제공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 환자에게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 이 원장의 생각이다.

사스, 메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등 코로나바이러스 계열 전염병은 박쥐에서 시작한 질병이라는 것이 지금까지 알려진 학설이다. 사스의 경우 박쥐에서 사향고양이를 거쳐 인간에게 옮겨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사향고양이라면 문뜩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영화 버킷리스트에는 고급 커피만 고집하는 부자 친구에게 그가 마시는 루왁 커피에 대한 설명을 읽어주는 장면이 나온다.

"원두가 나는 수마트라 마을엔 야생 고양이가 살고 있는데 고양이가 원두를 먹고 소화해 똥으로 싼다. 그럼 이 똥들을 모아서 가공한다. 커피 원두와 고양이 위액이 결합해 루왁 커피의 고유한 맛과 향을 낸다."

세계 최고 커피로 추앙받는 루왁커피는 바로 사향고양이의 변을 가공해 만든다. 이 커피는 사스가 창궐한 이후에도 여전히 고가품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자매품인 코끼리 변 커피인 블랙 아이보리는 루왁보다 더 비싸고 베트남에서는 족제비 똥으로 만든 커피인 위즐 커피도 불티나게 팔린다.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양의학과 달리 그동안 과학적 입증이 부족했던 한의학에 대한 불신이 생겨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한의학계에서는 비방의 공개를 두려워하지 말고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한다. 다만 그와 상관없이 시류에 편승해 정확하지 않은 사실로 오해하고 오도하는 일 역시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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