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강화 ‘화관법’ 전면 시행...도금·표면처리 업체 비상 걸렸다
  • 인천취재본부 이정용 기자 (teemo@sisajournal.com)
  • 승인 2020.02.20 15:00
  • 호수 1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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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도금업체 91곳, 주거지역 300m 반경에 위치…영세 도금업체들 공장 이전 비용 문제로 어려움 토로

2018년 4월13일 오전 11시47분. 인천 서구 가좌동의 한 화학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불은 인근의 화학공장과 도금공장 8곳으로 번졌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하지만 이들 공장에 저장돼 있던 수산화나트륨과 황산이 연소되면서 검은 연기와 매캐한 냄새가 퍼져 나왔다. 공장 주변의 학교와 주택, 재래시장 등은 삽시간에 ‘암흑 천지’가 됐다.

조사 결과, 당시 화재가 시작된 공장은 무허가 화학공장으로 밝혀졌다. 영업허가를 받기 위해 자진신고서를 제출했지만, 영업허가 기준에 맞는 서류 등을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영업허가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에 따라 화학물질 취급시설이 받는 정기·수시 검사를 한 번도 받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2018년 4월3일 대형 화재가 발생한 인천시 서구 가좌동의 한 화학공장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2018년 4월3일 대형 화재가 발생한 인천시 서구 가좌동의 한 화학공장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화재·환경오염 위험 ‘수두룩’

인천평화복지연대와 화학물질감시네트워크는 이 화재를 ‘화학사고’로 규정했다. 화관법상 화학사고는 ‘시설의 교체 등 작업 시 작업자의 과실, 시설의 결함·노후화, 자연재해, 운송사고 등으로 인해 화학물질이 사람이나 환경에 유출·누출되어 발생하는 상황’을 말한다. 인천시는 이 사고를 계기로 2018년 5월9일부터 ‘화관법 위반 무허가 사업장’을 대상으로 자진신고 기간을 운영하면서 안전 캠페인을 진행했다.

화관법은 사업장 내 화학물질이 사업장 밖에서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고, 유해물질 관리 인력을 보충해 화학물질의 시설관리를 강화하는 제도다. 기존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을 전면 개정해 2015년 1월1일부터 시행하고 있다. 사업장의 안전 기준 항목을 79개에서 413개로 5배 이상 늘렸다. 대신 화관법 적용을 5년간 유예하고, 자진신고 기간을 부여했다.

이런 화관법은 2012년 9월27일 발생한 ‘구미 불산가스 누출사고’ 등을 계기로 만들어졌다. 당시 화학제품 생산업체에서 플루오린화수소가스가 유출돼 근로자 5명이 사망하고, 13명이 부상을 입었다. 또 이 가스가 인근 지역으로 퍼지면서 농작물이 죽고, 가축들이 가스 중독 증상을 보이는 등 피해가 속출했다. 환경부는 시민의 안전을 위해 화관법 유예기간을 연장하지 않고, 올해부터 전면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인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지난해 3월 기준으로 인천 지역 유해화학물질 인허가 취급 사업장은 1300여 곳이다. 이들 가운데 410곳(31.5%)이 도금업체다. 도금은 금속이나 플라스틱 표면에 다른 물질의 얇은 층을 입히는 공정이다. 이 때문에 도금업체는 표면처리업으로 분류된다. 도금업과 도장 및 기타 피막처리업, 금속가공업 등이 포함된다. 화관법을 준수하기 위해서는 화학물질안전원에 장외영향평가서를 제출하고, 환경공단과 가스안전공사 등에서 취급시설 설치 검사를 받아야 한다. 사업장의 인력 규모에 따라 전문 인력도 채용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만 ‘영업허가’ 신청이 가능하다.

인천 지역 도금업체 중 375곳(91.4%)은 남동국가산업단지와 검단일반산업단지, 인천 서구 도금단지에 밀집해 있다. 특히 도금업체 91곳(22.1%)은 주거지역의 약 300m 반경에 들어서 있다. 이들 도금업체에서 최근 5년간 226건의 화재가 발생했다. 매달 3건 이상의 크고 작은 화재가 발생한 셈이다.

또 대기오염물질과 폐수를 배출하는 기준을 위반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도금업체들은 표면처리 과정에서 생성되는 독성 물질인 ‘시안염’을 중화시키기 위해 ‘차아염소산염’을 사용하고 있다. 차아염소산염 자체는 위험성이 덜하지만, 산을 만나면 ‘염소가스’가 발생해 인체에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도금업체는 주로 염산·황산·질산 등 맹독성 물질을 사용하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대기오염물질이나 폐수의 배출 기준을 위반하는 사업장이 잇따라 적발되고 있다. 인천시 남동구와 서구는 2019년 6월부터 올해 1월까지 대기오염물질과 폐수 배출 기준을 위반한 공장 76곳을 적발했다. 이 가운데 7곳은 ‘영업장 폐쇄’ 처분을 받았다.

인천시 남동구와 서구는 환경오염물질 배출 기준을 위반하는 도금공장 등에 대해 지속적으로 단속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대출 자기부담률 높아…공장 이전 ‘발목’

이로 인해 주거 밀집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민원이 잦다. 주부 최민경씨(42)는 “도금공장에서 시한폭탄 같은 맹독 물질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불안하다”며 “인천시가 도금공장들을 외곽으로 이전시켜 주거지역의 안전성을 마련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도금업체들은 영세한 규모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아 대기오염물질과 폐수를 처리하는 시설을 운영하는 데 드는 비용들이 등을 휘게 만든다. 중소·영세 도금업체들은 시민들의 안전을 위한 화관법의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비용 문제로 업황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졌다고 토로한다.

인천시에 따르면 2011년 11월 기준으로 인천 지역 189개 표면처리업체의 평균 공장 전용면적은 327㎡이고, 근무 인원은 12.5명이다. 이들 업체의 월평균 폐수배출량은 245톤이다. 폐수처리 비용이 톤당 2만4674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매달 604만5130원이 들어가는 셈이다. 또 건물 임차료와 대기오염물질 배출 방지시설(스크러버) 사용료, 전기료, 일반관리비 등 월평균 소요경비는 1619만5462원으로 집계됐다. 인천시가 2013년 5월 뿌리산업 특화단지를 조성하기 위해 일부 표면처리업체의 재무현황을 분석한 결과, 대부분이 25억원 이하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특히 영업이익률은 6~10% 수준에 불과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도금업체들이 주거 밀집지역을 벗어나는 것도 만만찮다. 공장 이전에 들어가는 시설 비용이 적잖기 때문이다. 특히 다른 업종에 비해 시설자금에 대한 자기부담 비율이 높다. 중소기업들의 정책자금을 집행하는 기술보증기금에 따르면 금형 및 사출업체는 기금 대출보증이 80~90%까지 가능하지만, 도금 및 화학업체는 70~80%를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

도금업계에서는 시설자금 지원 등 정부의 유인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인천도금협회 관계자는 “공장 이전에 따른 시설자금 대출 문제와 까다로운 인허가 절차 때문에 도금업체들의 폐업이나 무허가 영업이 우려된다”며 “뿌리산업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기업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무료 컨설팅과 융자 지원 등을 실시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면서 안정적으로 법을 적용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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