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vs황교안…총선 넘어 대선 집어삼킬 ‘종로대첩’
  • 구민주·송창섭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0.02.14 14:00
  • 호수 1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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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면적 4%, 인구 15만 ‘정치 1번지’
이낙연 vs 황교안 격돌 ‘대선 전초전’ 성격

조선시대 도성을 여닫는 때를 알려주는 종루(鐘樓)가 있던 곳. 인재와 물자가 모여들던 정치·경제의 중심지. 오랜 역사에서 종로는 서울이었고 서울은 곧 종로와 같았다. 지금은 기존에 있던 주요 정부청사도 명문 학교들도 많이 이전해 사라졌고 경제력 우위도 강남 지역에 내준 지 오래지만, 여전히 정치권에서만큼은 주저 없이 종로를 정치 1번지이자 심장부로 꼽는다.

단순 규모만 봤을 때 종로는 단일 선거구 인구 하한선(13만6565명)을 간신히 웃도는 약 15만 명 인구에,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두 번째로 면적이 작은 곳이다. 하지만 선거 때마다 각 당이 어느 지역보다 종로의 선거 결과에 목매는 이유는 하나 더 있다. 그간 종로 지역의 대통령·정당 지지율이 서울 전체, 나아가 전국 평균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4·15 총선은 이러한 종로 지역만의 특징들이 극대화돼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 차기 대선 지지도 선두권을 달리는 이낙연 전 국무총리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맞대결이 현실화하면서 총선에 대한 전 국민의 관심을 블랙홀처럼 종로로 빨아들이고 있다. 역대 총선에서 차기 대선 1·2위가 같은 선거구에서 맞대결을 펼친 사례는 찾아볼 수 없다. 이들의 ‘종로대전’ 결과는 곧장 전국 민심으로 해석될 것이며, 자연히 2년 뒤 있을 대선의 흐름까지 결정짓게 될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왼쪽)이낙연 전 국무총리 (오른쪽)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시사저널 박은숙
(왼쪽)이낙연 전 국무총리 (오른쪽)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시사저널 박은숙

민주화 후 종로 대결은 사실상 무승부

종로는 서울 내에서도 보수·진보 어느 한쪽으로 일관된 색을 드러내지 않는 지역으로도 유명해, 개표 마지막까지 각 당을 속 타게 만드는 곳이었다. 상업·주거지역과 작은 규모의 산업현장이 혼재돼 있으며, 세대 역시 종로 토박이인 중·노년층 못지않게 대학가에 사는 젊은 유권자도 많아 표심을 읽기가 더욱 어려운 곳이다. “종로가 지금도 시대의 선도자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순 없지만 선거에서 전국 민심 향방을 파악할 온도계 역할은 충분히 하고 있다. 선거 결과를 보고 호남은 ‘호남이니까’, 영남은 ‘영남이니까’, 강남은 ‘강남이니까’ 해석해 버릴 수 있지만, 종로 결과를 ‘종로니까’라고 분석하진 않는다. 그래서 종로 결과가 더 의미가 있고 다들 주목하는 거다.”(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

초반 여론조사는 이 전 총리에게 유리하게 나오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뉴스토마토 의뢰로 2월7일과 8일 이틀에 걸쳐 종로구에 사는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70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이 전 총리가 54.7%의 지지를 얻어 34.0% 지지를 받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를 20%포인트 이상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밖의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민주당과 한국당에서도 이러한 상황을 충분히 파악해 온 것으로 보인다. 자유한국당 한 수도권 의원은 “여론조사 차이가 계속 좁혀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으며, 우린 더 떨어질 일이 없고 보수 통합 등 상승요인이 남아 있기 때문에 지켜봐야 한다. 황 대표도 이러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전했다.

민주화 이후인 1988년 13대 총선 때부터 보수정당 당선자 숫자가 더 많은 점을 들며, 당장의 여론으로 승부를 속단할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20대 총선까지 8차례 선거에서 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까지 현재 한국당 계열의 보수 후보가 6번 당선됐고, 민주당 계열 후보는 19대와 20대 때 정세균 후보의 승리 2번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통령 집권 후반기 진행된 총선에서 여당이 승리한 경우는 2012년 총선을 제외하면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도 이러한 관측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과거 당선 횟수만으로 종로 표심을 예측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 보수 후보가 당선된 선거 당시 후보들 간 경쟁구도를 살폈을 때, 진보 후보들이 여럿 출마해 표를 나눠 가지는 바람에 단일 보수 후보가 승리를 거머쥔 경우가 6차례 당선 사례 중 4차례(13, 14, 15, 17대)에 이른다. 즉 이번 이낙연-황교안 일대일 맞대결 구도처럼 치러진 나머지 4차례 선거에선 보수와 진보가 사이좋게 2번씩 승리를 가져간 셈이다.

종로에는 역대 선거 때마다 정당 일체감(Party Identification)이 선거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다. 정당 일체감이란 성장 과정에서 소속 집단이나 가족 등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는 사회화 과정이라는 게 정확한 정의다. 선거에서 투표율, 후보 인지도, 공약, 선거조직, 지역주의 등 여러 가지 변수가 등장하는데 이 중 인물 중심의 인지도는 종로에서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번 선거 역시 이 전 총리와 황 대표의 인지도만으로 선거 결과를 예측하는 건 무의미하다. 하지만 아직 본격적인 선거전이 벌어지지 않은 데다, 현재 발표되는 여론조사는 표본 수가 적어 종로 전체의 의견으로 해석하기엔 무리가 있다.

20대 총선 당시에도 선거 전에 여러 언론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서울시장을 역임한 오세훈 새누리당 후보가 앞서는 것으로 나왔다. 그러나 투표함을 열어보니 결과는 달랐다. 오 전 시장은 39.7%의 득표율을 얻어 52.6%를 기록한 현역 정세균 민주당 후보에게 큰 차이로 뒤졌다. 높은 지명도를 앞세운 여당 후보라도 조직력을 앞세운 현역 의원의 상대가 되진 못했다. 당시 결과는 언론이 발표하는 사전 여론조사는 그저 참고용이며, 지명도 역시 결과를 좌우하는 변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방증했다.

이번 선거에 출마하는 이 전 총리와 황 대표 역시 지역 토박이가 아니기 때문에 종로에서 대단한 조직력을 발휘하기는 힘들 거란 분석이 있다. 특히 이 전 총리의 경우, 지역구 선배인 정세균 총리의 조직력이 어느 정도 힘이 되는 건 사실이지만, ‘정권 심판론’의 바람이 종로에까지 불 경우, 이는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할 수도 있다.

지난 다섯 번의 총선에서 종로(58.8%)는 서울 평균치(55.5%)보다 약 3.3%포인트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이번 총선에는 각 당의 차기 잠룡이 출마하는 만큼, 역대 총선의 평균 투표율을 가볍게 상회할 가능성이 크다. 직전인 20대 때 투표율도 62.9%로 서울에서 가장 높았는데, 그 이상의 투표율을 기록할 거란 예측이 많다.

평창동·혜화동·교남동을 주목하라

대개 종로를 동서남북으로 나눴을 때 서쪽·북쪽에 위치한 평창동·삼청동·사직동 등은 보수세가, 동쪽·남쪽에 위치한 혜화동·창신동·숭인동 등은 대체로 진보세가 우위를 보이는 것으로 분석돼 왔다. 그러나 최근 재개발이 이뤄지고 3040 세대가 다수 유입되면서 기존의 공식이 더 이상 먹히지 않을 거란 관측이 지배적인 상황이다.

종로는 지역별로 소득 격차가 심하다. 평창동, 가회동이 강북의 대표적인 부촌이라면 창신동, 숭인동 일대는 예로부터 쪽방촌으로 불릴 정도로 저소득자가 많이 산다. 20대 총선을 기준으로 선거구별로는 평창동의 선거인 수(11.4%)가 전체 종로 구민의 10분의 1을 차지했다. 성북구와 맞닿아 있는 혜화동의 선거인 수 비율도 11.0%다. 두 지역 모두 20대 총선 투표율은 종로구 평균치(63.1%)보다 약간 높은 63.6%(평창동)와 66.6%(혜화동)를 기록했다. 종로에서 국회의원 배지를 달기 위해 두 지역을 놓쳐선 안 된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20대에는 결과가 엇갈렸다. 부촌 평창동에선 오세훈 후보가 47.2%로 46.7%를 기록한 정세균 후보를 앞섰다. 오 후보가 종로에서 가장 표를 많이 얻은 지역 역시 이곳이었다. 반면 정 후보는 또 다른 대형 선거구인 혜화동에서 56.0%의 득표율을 기록해 35.1%에 그친 오 후보를 크게 앞섰다. 정 후보는 이렇게 관내 16개 선거구 중 14개에서 오 후보를 앞질렀다.

지금과 같은 여야 관계가 형성된 18대 때도 평창동의 표심은 보수 성향인 박진 새누리당 후보를 선택했다. 당시 평창동에서 박진 후보는 손학규 통합민주당 후보를 23.2%차로 눌렀다. 이때는 혜화동에서도 박진 후보가 승리했으며 두 사람 간 득표율 차는 4.2%포인트였다. 여야 상황이 정반대인 18대와 20대 총선 결과의 변수는 결국 이 두 지역의 투표율이었다. 18대 때는 평창동이 55.4%로 종로구 평균(52.2%)보다 높았고, 혜화동은 51.3%로 그보다 약간 낮았다. 반대로 20대 때 평창동은 투표율이 종로구 평균치를 약간 웃돈 반면, 혜화동은 평균치를 크게 앞섰다. 종합하면 두 지역의 정당 일체감이 얼마나 응집하느냐가 이번 선거의 승패에 큰 변수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20대 총선이 있기 직전인 2016년 4월 기준 종로구 인구는 15만4919명이었다. 그랬던 것이 지금은 15만1290명으로 줄었다. 흔히 서촌이라고 불리는 ‘청운·효자동’의 경우 그 기간 1240명의 인구가 빠져나갔고, 봉제 골목이 위치한 ‘창신2동’도 1194명의 주민이 빠져나갔다. 청운·효자동은 18대 때는 종로구 전체 인구의 9.4%, 20대 때는 8.0%의 선거인이 거주하던 곳이다. 두 번의 선거 모두 투표율은 평균치를 웃돌았다. 18대 때는 새누리당이 9.1%포인트 차, 20대 때는 더불어민주당이 12.4%포인트 차로 앞선 곳이다. 보수·진보 지지자가 고루 거주하던 곳이니만큼, 이번에 빠져나간 인구 중 어느 진영을 지지하던 이가 더 많은지가 관건이다.

반대로 가장 많은 전입 인구를 기록한 곳은 뉴타운이 조성된 교남동으로 확인된다. 무려 4년 새 5813명의 인구가 늘어났다. 현재 종로 구민의 3분의 1에 해당한다. 동네가 고급 아파트촌으로 변모한 가운데, 과거 평창동과 혜화동 이상으로 이곳 표심의 향방이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다. 두 후보 모두 자연히 교남동 표심 잡기에 점점 더 사활을 걸 것으로 보인다. 교남동 유권자가 종로 전체 선거인 중 2.9%에 불과했던 20대 때는 정세균 후보가 53.2%로, 38.9%의 득표율을 기록한 오세훈 후보를 크게 앞섰다. 18대 때는 박진 새누리당 후보가 46.2%, 손학규 통합민주당 후보가 45.9%로 엇비슷하게 나왔다.

20대에서 진보 성향 후보를 상대적으로 더 많이 지지한 이화동과 혜화동도 3년 반 사이 인구가 각각 866명과 982명 감소했다. 보수 성향에 대한 지지도가 높았던 평창동 역시 같은 기간 830명이 준 것으로 나타났다. 성향이 반대인 이들 지역의 엇비슷한 인구 변화가 최종적으로 표 계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1996년 3월26일 이명박 당시 신한국당 후보(왼쪽)와 노무현 민주당 후보가 서울 종로에서 15대 총선 후보자 등록을 마치고 악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1996년 3월26일 이명박 당시 신한국당 후보(왼쪽)와 노무현 민주당 후보가 서울 종로에서 15대 총선 후보자 등록을 마치고 악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종로가 정치 1번지 되게 한 명승부들

종로에서 벌어진 최고의 대결로는 역시나 노무현-이명박 두 전 대통령이 맞붙었던 1996년 15대 총선이 꼽힌다. 당시 신한국당 이명박, 새정치국민회의 이종찬, 그리고 통합민주당 노무현 후보 간 삼파전이 벌어졌다. 이명박 후보는 현대건설 신화를 이뤄낸 이미지를, 노무현 후보는 청문회 스타 타이틀을 앞세웠다.

“예상 밖의 대승이었다. 나는 40.5%를 득표해 33%에 그친 이종찬 후보, 17%를 얻은 노무현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새로운 정치의 시작이었다” - 이명박 《대통령의 시간》

“결과는 참담했다. 2등도 아니고 3등으로 떨어졌다. 이명박 후보가 승리했다. 내가 대통령이 되는 것도, 그가 그다음 대통령이 되는 것도 당시에는 상상하지 못했다. - 노무현 《운명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새정치국민회의’ 창당으로 민주당 주류가 대거 이동한 후, 민주당에 남아 있던 노 전 대통령의 세는 미약했다. 선거에서 이명박 신한국당 후보는 4만230표를 얻어 당선된 반면, 노 전 대통령은 1만7330표를 얻어 3등에 그쳤다. 싱겁게 끝나버린 당시 승부가 주목받은 건 이후 선거법 위반 혐의로 의원직을 사퇴한 이명박 후보의 뒤를 이어 이듬해 보궐선거에서 노무현 후보가 당선됐고, 몇 년 후 이 둘이 나란히 대통령으로 청와대에 입성하면서였다.

그 후에도 종로 선거에서는 주목할 인물들의 피 말리는 접전 혹은 기막힌 반전이 곧잘 이뤄졌다. 2004년 17대 총선에선 단 0.67% 차이로 박진 한나라당 후보와 김홍신 열린우리당 후보의 희비가 엇갈렸다. 18대 손학규 통합민주당 후보 역시 단 3.6%포인트 차로 박진 후보에게 패배했다. 19대와 20대에선 정세균 민주당 후보가 각각 여당 핵심 홍사덕 후보와 오세훈 후보를 상대로 사전 여론조사 결과와 정반대의 승리를 이루는 반전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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