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사법의 정치화, 법치의 정쟁화
  •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2.19 18:00
  • 호수 1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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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정치의 사법화 경향이 쟁점이 됐었다. 정치적 갈등을 정치의 영역에서 풀지 못하고 사법부의 판단을 구하는 일이 잦은 것이다. 요즘도 이런 경향은 지속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역으로 사법적 사안들이 과도하게 정치적 쟁점이 되고 있다. 심지어 법치가 정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정치는 갈등표출의 영역이면서 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갈등만 표출되고 문제 해결 기능, 즉 통합 기능을 못 한다면 정치는 실종된다. 내각제에서는 정치가 해결 기능을 못 하게 되면, 정치의 주체인 의회를 해산하고 새롭게 구성하기도 한다. 최근 우리의 정치에서 문제 해결 기능의 약화는 정치적 양극화와 맞물려 있다. 정치의 사법화가 던진 과제는 곧 정치적 양극화의 과제다. 타협과 포용의 정치, 이를 위한 제도적·문화적 개혁이 그것이다.

정치의 사법화가 정치의 무능이라면, 사법의 정치화는 정치의 과잉, 법치의 정쟁화다. 사법의 정치화는 문재인 정부 들어 두드러졌다. 탄핵 이후 사법부의 판단에 대해 정파적인 논란들이 쉽게 등장했다. 양승태 사법부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작업은 불가피하게 사법의 정치화를 키웠다.

그러면서 사법부의 판단도 보편적인 법치가 아니라 정쟁거리가 됐다. 특히 교조적 종교집단처럼 돼 버린 정치세력들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기소나 판결들은 받아들이지 않고 성토했다. 물론 예전에도 ‘유전무죄 무전유죄’나 ‘유권무죄 무권유죄’ 같은 말들에서 보이듯이, 법치가 완전히 보편적 신뢰를 받았던 것은 아니다. 그렇더라도 법치는 정파적이 아니라 대의민주주의의 보편적인 기반으로 인식되었다. 법치의 정쟁화는 이 보편적인 기반도 흔들고 있다. 더구나 인터넷과 SNS라는 시대적인 무기는 정쟁화의 중요한 도구가 되고 있다.   

조국 사태 정국에서 검찰에 대한 특정 정파의 압박은 노골적인 사법의 정치화였다. 이는 최근 추미애 법무장관의 공소장 비공개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추미애 장관의 검찰의 민주적 통제 주장도 마찬가지였다. 법무장관의 검찰 지휘는 민주적 통제가 아니라 권력에 의한 통제다. 공소장을 공개해 일반 시민들의 여론을 수렴하는 것이 오히려 민주적 통제다. 추미애 장관의 최근 행보는 민주적 통제에 역행하는 권력 통제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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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총선을 앞두고 판사 출신들이 사법 개혁에 기여하겠다며, 인재 영입의 형태로 정당에 대거 참여하고 있다. 사법 개혁의 과제는 사법 기능이 공정하게 수행되고 정파적 이해관계를 넘어 양심과 법률에 따라 판결토록 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특정 성향의 사법부 출신들이 정치권으로 직접 진입하는 연결고리는 오히려 사법의 정치화를 더 키울 여지가 있다. 사법 개혁을 내걸고 나서고 있지만, 오히려 사법 개혁에 반하는 흐름이라는 것이다.

우리 국회에 법관 출신들이 부족해 사법 개혁이 더디었던 것이 아니다. 그렇잖아도 법조인들의 국회의원 비중이 높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또다시 여야 막론하고 법조인 출신들이 대거 가세하고 있다. 사법 개혁에 대한 기여보다 사법화된 정치투쟁에서 정당의 변호인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 사법의 정치화, 법치의 정쟁화, 우리 정치와 사법 모두 극복해야 할 개혁 과제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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