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그렇게 ‘혁신’ 외쳤는데…‘등잔밑’ 놓친 광주시장
  • 호남취재본부 정성환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0.02.13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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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서관, 코로나19 공문 유출 연루
혁신 잃은 캠프 출신 측근의 탈선
‘유탄’ 맞은 이용섭 시장 혁신 논란

이용섭 광주시장의 자존심이 확 구겨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16번째 확진자의 개인정보가 담긴 공문을 유출한 사람이 이 시장 비서관으로 밝혀지면서다. 비서의 공문 유출 사건 유탄을 맞아 이 시장의 전매특허인 ‘혁신’도 뜻하지 않은 구설에 오르고 있다. 시청 안팎에선 “등잔 밑을 놓친 꼴이어서 ‘혁신 아이콘’이라는 이 시장의 자긍심도 함께 무너졌다”는 곱지 않은 시선마저 감지된다.

이용섭 광주시장이 2018년 11월 27일 오전 시청 3층 대회실에서 열린 ‘광주혁신추진위원회 출범식’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광주시 제공
이용섭 광주시장이 2018년 11월 27일 오전, 시청 3층 대회실에서 열린 ‘광주혁신추진위원회 출범식’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광주시 제공

 

개념없는 비서관의 단순 실수?…‘혁신시장’ 이미지 훼손

광주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12일 신종 코로나 확진자와 가족관계 등 개인 정보가 담긴 내부 보고서를 유출한 혐의(공무상비밀누설·개인정보 보호법 위반 등)로 광주시장실 별정직 비서관(5급) A씨를 입건했다고 밝혔다. A씨는 지난 2018년 6월 지방선거 당시 이 시장의 선거캠프 출신이다. 그는 지난 4일 국내에서 16번째로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와 관련한 광산구의 내부 보고서를 외부로 유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공문을 생산한 광산구 공무원과 이를 전달받은 광주시 공무원들의 휴대전화를 임의제출 형식으로 받아 디지털포렌식 방식으로 수사해 처음 공문을 유출한 인물을 특정했다. 이 공문에는 16번째 확진자의 인적사항과 확진 판정 경위, 거주지, 자녀 학교, 가족 직업 등이 상세하게 담겨 있었다. 유출된 공문은 인터넷 ‘맘카페’를 통해 급속도로 확산했다. A씨는 문제가 커지자 지난 5일 오전 경찰에 자진 신고했다.
 
‘대한민국 혁신 1번지’를 자처해온 광주시는 충격에 빠졌다. 김옥조 광주시 대변인은 “이런 사태가 발생한 점을 매우 죄송하게 생각하며 A씨를 최종 수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업무에서 배제했다”며 이 시장 대신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광주시는 A씨에 의한 공문서 유출 사실을 파악한 뒤에도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았다가, 이날 경찰 수사가 발표되자 A씨를 업무에서 배제해 제식구 감싸기라는 비판도 ‘덤’으로 받았다. 

 

‘혁신시장’ 이용섭 “혁신의 벽, 담쟁이처럼 넘겠다

특히 이로 인한 이 시장의 ‘굴욕’은 충격적이다. 측근 쪽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터지면서 그동안 혁신 구호만 요란하게 외치지 않았냐는 말이 나온다. 이 시장이 누구인가. 관가를 주름잡던 ‘혁신의 대명사’가 아니었던가. 이 시장은 2005년 5월 《대한민국 희망 에너지 혁신》이라는 혁신 에세이를 출간할 만큼 관료 엘리트 출신으로는 드물게 ‘혁신’의 상징으로 통하는 인물이다.

이 시장은 행정고시 14회에 합격한 후 국세청에서 공직을 시작했고 경제 콘트롤타워인 재정경제원, 재정경제부에서 오래 근무했다. 기관장에 오르기 시작한 것은 김대중 정부 시절인데 당시 국세심판원장(現 조세심판원장), 세제실장, 관세청장을 지냈고 노무현 정부에서는 관세청장에서 국세청장으로 발탁되는 첫 사례를 남겼다. 

이후에도 행자부와 건교부 장관을 지냈지만 사실 관가에서는 이 시장의 비교 불가 ‘관운(官運)’보다 ‘혁신’을 더 상징적으로 평가한다. 그는 청와대 혁신관리수석비서관을 거쳐 행정자치부 장관으로 영전해 참여정부 핵심과제였던 정부 혁신에 앞장섰다. 이 시장은 국세청장 재임 시 박원순 변호사(현 서울시장)를 위원장으로 하는 세정개혁위원회를 둬 접대비 상한제, 골프와 유흥업소의 접대비 불인정 등 많은 세정개혁을 했다. 그의 독창성은 다른 부서에겐 ‘영감’이었다. 
 
이 시장은 민선 7기 광주시장 취임 후 강력한 ‘혁신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시장 직속으로 ‘광주혁신추진위원회’를 설치하고, 기회 있을 때마다 혁신을 강조하고 독려하고 있는 중이다. 그는 지난해 11월 말 광주혁신추진위 출범 1주년 기념 시민토론회에서 “훗날 혁신시장으로 평가받겠다”며 시정혁신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

“오랜 시간 정치적 차별과 소외로 인해 경제적으로 낙후된 변방의 광주를 대한민국의 미래로 우뚝 세우기 위해서는 본립도생(本立道生), 혁신을 통해 기본을 바로 세워 새로운 길을 내야만 했다.”(2019년 6월 27일 광주시장 취임 1주년 기자회견)

이 시장은 “혁신은 과거의 관행과 낡은 생각을  바꿔나가는 과정이라서 저항도 있고 마찰도 불가피하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올해 시무식에선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는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의 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제가 앞장서서 여러분과 함께 넘어 서겠다”며 강력한 혁신 추진 의지를 밝혔다. 

 

혁신구호가 공허한 까닭…“불합리한 시정 답습 여전” 

광주시청 전경 ⓒ광주시
광주시청 전경 ⓒ광주시

하지만 ‘측근 일탈’ 논란이 이 시장의 혁신을 두고 뒷말을 낳고 있다. 문제는 개념없는 시장 비서관의 단순 일회성 실수로만 볼 수 없다는 점이다. 과연 광주시정은 구조적으로 얼마나 불합리한 관행에서 탈피해 변화되고 혁신되고 있는 것일까. 이용섭 시정 출범 이후에도 혹평을 받았던 민선 6기 당시 불합리한 행정 행태가 여전히 비일비재하고 각종 사건으로 얼룩지는 일들이 연일 터져 나오면서 전임 시장 당시의 부조리한 시정 형태가 답습되고 있다는 시각이 팽배하다. 

이 시장은 인사 문제에서 전문성과 혁신성을 강조했지만 정작 시장 비서와 정무특보, 대변인 등 시청 핵심 요직은 캠프 출신들이 꿰찼다. 산하 공공기관장 등의 인사에서는 ‘보은·정실 인사를 한다’는 논란을 빚어왔다. 시민사회단체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환경공단 이사장, 광주복지재단 대표이사, 광주글로벌모터스 사장 자리에 ‘측근’을 앉혔다. 당시 참여자치21은 광주복지재단 대표이사 임명에 대한 논평을 내고 “민선 6기 윤장현 전 시장의 실패를 반복하려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광주시는 민간공원특례사업자 선정 특혜 의혹과 관련 세 차례나 검찰에 압수수색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혁신 멀리 있지 않다…출발선은 시장 주변부터”

평소 인사와 행정 전반에서 혁신과 청렴을 강조하던 이 시장 입장에서는 동생과 행정 전반을 책임지게 한 측근이 민간공원특례사업 불법에 연루된 당사자가 됐다는 점만으로도 상처를 입었다. 인사에도 청렴한 혁신시스템을 도입하겠다고 했지만, 정작 인사권을 맡긴 정종제 행정부시장이 선거에 출마하겠다며 시 공무원과 산하 기관의 직원들을 당원으로 불법 모집한 의혹을 받아 큰 흠집이 났다는 지적도 나온다. 광주시는 지난해 12월 국민권익위원회가 발표한 ‘2019년 공공기관 청렴도 평가’에서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가장 낮은 5등급을 받았다.

광주 정치권 한 인사는 “혁신과 청렴을 강조한 이 시장이 정작 주변 관리에는 소홀한 것 같다”며 “남은 임기에 안정적으로 시정을 이끌어가고 재선 행보를 하는데 부담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혁신’에 익숙한 이 시장이 ‘속도’를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공정성’과 ‘정의’를 등한시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매번 시정 혁신에 속도를 붙이겠다고 말하지만, 가신그룹에 대한 개혁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한 시민단체 인사는 지적했다. 그의 쓴소리다.

“모든 분야에서의 관행 탈피, 변화와 개혁을 외치고 있는 광주시정은 얼마나 변화하고 달라지고 있는 지 스스로 자문해 봐야한다.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서 다른 곳에서만 달라지라고 외친다면 그 누구도 따르지 않을 것이다. 지역사회 전반에 변화와 개혁이 필요하다는 광주시장의 근본 취지에 대부분 공감한다. 그러나 시장 주변부터 스스로 먼저 개혁하고 실천하지 않는다면 변화와 개혁은 공허한 메아리가 될 뿐이다.혁신은 멀리 있지 않다. 가까운 데서 찾아서 실천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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