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박새로이들이 사랑에 빠진 ‘진짜 이태원’의 클라쓰 [김지나의 문화로 도시읽기]
  • 김지나 도시문화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2.14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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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 넘어 청년의 아이디어 실험실이 돼 주는 이태원
젠트리피케이션 위기에 예전 아우라 잃었다는 지적도

서울 이태원을 배경으로 한 TV 드라마가 인기다. 자기만의 소신과 재능으로 삶을 쟁취해가는 청춘들의 이야기가 쾌감을 자극한다. 이태원을 처음 가보게 된 주인공 ‘박새로이’는 망설임 없이 이곳을 자신의 새로운 도전 터전으로 낙점했다. 서울 안에서만도 핫한 상권들이 넘쳐 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주인공은 이태원의 매력에 한눈에 반했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이태원은 한국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외국 음식, 외국 문화를 접할 수 있는 ‘한국 속의 외국’이란 정체성이 강했다. 물론 이런 특징은 지금도 이태원을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지만, 더이상 전세계 문화의 전시장, 지구촌의 축소판이란 수식어만으론 이태원을 정의하기에 충분치 않다.

이태원 초입에서 바라본 풍경. 최근 웹툰을 원작으로 한 TV드라마의 배경이 된 곳이다. 멀리 이슬람 사원도 보인다. ⓒ김지나
이태원 초입에서 바라본 풍경. 최근 웹툰을 원작으로 한 TV드라마의 배경이 된 곳이다. 멀리 이슬람 사원도 보인다. ⓒ김지나

향수 젖은 주한미군부터 열정의 힙스터까지

언제부터인가 이태원에 독자적인 감성을 가진 가게들이 하나둘씩 들어서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경리단길, 우사단길 같은 골목길의 이름이 이태원의 명성을 대신했다. 수많은 ‘박새로이’들이 이태원으로 몰려들었다. 그전까지 이태원은 외국인과 성소수자들의 문화를 체험하는 전시장이었다면, 이제는 독특한 아이디어와 열정으로 무장한 힙스터들의 런웨이가 된 느낌이다. 한 번 형성된 그들의 생태계는 또 다른 크리에이터들을 불러들이는 기반이 되며 기세를 이어나갔다.

물론 이태원은 처음 장사를 시작하는 청년들이 도전하기에 쉽지 않은 상권이다. 개성 넘치는 거리에서 살아남기 위한 경쟁도 치열할뿐더러, 비싼 임대료라는 거대한 진입장벽도 있다. 오늘의 이태원을 만들어냈지만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한 가게들이 내쫓기는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났다. 동시에 이태원의 아우라가 예전만 못하다는 아쉬움의 목소리도 들린다.

잘 알려져 있듯 이태원 상권은 미군 부대와 함께 성장했다. 최근 몇몇 소극장에서만 개봉한 한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아직 어렴풋이 남아 있는 이태원의 과거를 볼 수 있었다. 이 영화는 이태원의 오랜 역사를 온몸으로 목격한 세 명의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한다. 40년 넘게 한 자리에서 컨트리클럽을 운영한 사장님도 있고, 미군을 상대로 한 유흥업의 최전선에 있었던 어느 종업원의 파란만장했던 삶도 있다. 그저 별난 술집거리 정도로만 이태원을 이해하던 사람들에게는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오는 내용이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컨트리클럽은 예전만큼 화려하진 않더라도 여전히 건재한 모습이다. 입소문을 듣고 일부러 찾아오는 외국인 관광객들도 심심찮게 있는 듯했다. 굳이 컨트리음악이나 주한미군에 관련된 향수가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이곳은 이태원의 오리지널리티를 느낄 수 있는 몇 안 남은 장소로서 충분히 매력적인 곳이었다.

1975년에 용산 미군기지의 군인들을 타깃으로 오픈한 이태원의 컨트리클럽. ⓒ김지나
1975년에 용산 미군기지의 군인들을 타깃으로 오픈한 이태원의 컨트리클럽. ⓒ김지나

흉내만이 아닌 오랜 세월 쌓인 다양성

서울의 어느 동네보다 특유한 영향력을 가진 상권으로 발전하는 동안, 미군 기지촌으로 시작됐다는 이태원의 역사는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하지만 성소수자, 무슬림, 아프리카 이주민들까지 받아들인 이태원의 개방성과 다양성은 그 역사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미군이 뿌려대는 달러에 의존하고 그들을 사로잡는 것이 성공의 기준이었던 시절을 보내는 가운데, 이태원은 서울에서 타문화에 대해 가장 포용적인 지역이 됐다. 이태원의 문화적 다양성은 외적으로 흉내만 낸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파생된 진짜 역사 경관이다.

이제 이태원은 특이한 외국 문화를 수용하는 것을 넘어, 소신 있는 청년들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험하고 싶어 하는 자극제가 되고 있다. 무엇이든 해봐도 좋을 것 같은 관용이 있지만, 결국 진정성이 승패를 가르는 타협 없는 세계. 그것이 ‘박새로이’가 이태원과 첫눈에 사랑에 빠진 이유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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