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출마 공공기관장들…‘사표’라 쓰고 ‘출사표’라 읽는다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0.02.18 14:00
  • 호수 1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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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기관장·상임감사 총선 출마 현황 전수조사

공공기관에서 기강이 느슨해진다고 알려진 ‘3철’이 있다. 휴가철, 인사철, 그리고 선거철이다. 여기서 선거란 대선과 총선 등 공직 선거를 뜻한다. 이때마다 공공기관 안팎에선 임원이 사퇴하고 하마평이 도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가 조성된다. 줄기차게 지적돼 온 낙하산 논란도 다시 불거진다. 4·15 총선을 두 달여 앞둔 지금도 마찬가지다.

시사저널은 공공기관 경영정보공개시스템 ‘알리오’를 통해 공시 대상 공공기관의 기관장·상임감사 공석 여부를 전수조사했다. 현재 의원면직(본인 신청에 의한 사임), 해임, 이임 등을 이유로 공석인 공공기관의 기관장은 14명, 상임감사는 3명이었다.

이 가운데 총선 출마 의사를 밝힌 기관장은 6명이다. 이강래 전 한국도로공사 사장, 김성주 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이상직 전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이사장, 김형근 전 한국가스안전공사 사장, 이재영 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원장, 이현웅 전 한국문화정보원 원장 등이다.

공공기관장 6명·감사 2명 사퇴 후 총선행

또 김광식 전 근로복지공단 감사, 이재강 전 주택도시보증공사 감사 등 상임감사 2명도 출사표를 던졌고 현재 이 자리는 공석이다. 공직선거법상 출마자의 공직 사퇴 허용 시점은 선거일로부터 90일 전인 1월16일이다. 이 시점이 지났기 때문에 출마를 위한 인사 이동은 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 와중에 일찌감치 총선 준비체제에 들어간 것으로 추정되는 움직임도 포착된다. 이재강 전 감사와 이강래 전 사장은 지난해 12월초에 사표를 냈다. 총선 예비후보 등록 시작일인 지난해 12월17일을 앞두고서다. 이에 따라 두 사람이 맡았던 자리는 2개월 가까이 비어 있는 상태다. 특히 이강래 전 사장의 임기는 올해 11월까지였다. 임기를 1년 가까이 앞둔 시점에 선거를 위해 기관장 자리를 떠난 것이다.

통상 공공기관 임원 선임 절차는 ‘임원추천위원회 추천→심의위원회 심의·의결→주주총회 결의→주무관청 제청→대통령 임명’ 등의 순서로 이뤄진다. 모든 과정을 거치는 데는 최소 한 달 이상 걸린다고 알려져 있다. 총선 이후 선임 절차에 들어간다면 빨라도 올여름쯤에야 공석이 메워질 전망이다. 기관장 사퇴 시점을 고려하면 반년 가까이 리더십 공백이 계속되는 셈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 관계자는 “감사 인선 절차를 진행 중”이라고 했다. 다만 인선의 첫 단계인 임원추천위원회도 아직 열리지 않은 상태라고 한다. 이 관계자는 업무 공백 여부에 대해 “감사원의 예비감사를 받고 있는 중이라 경영 감시가 소홀해질 일은 없다”고 밝혔다. 도로공사는 2월10일 임원추천위원회 위원을 추린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공공기관이 ‘선거용 텃밭’이냐”는 질책이 나온다. 그 근거는 각 공공기관의 위치다. 국민연금공단 본사는 전주 덕진구에 있다. 공단을 이끌었던 김성주 전 이사장은 이곳에서 19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이번에도 같은 지역에 예비후보로 나섰다. 가스안전공사는 충북 음성군에 있는데, 김형근 전 사장은 충북 ‘정치 1번지’로 꼽히는 청주 상당구에 도전한다. 두 곳은 차로 40분 남짓 걸리는 거리에 있다.

감사도 다를 바 없다. 이재강 전 감사의 출마 지역과 그가 몸담았던 주택도시보증공사의 위치는 모두 부산이다. 근로복지공단은 울산에 있고, 김광식 전 감사도 울산에 출마를 선언했다.

총선이 다가오자 ‘잿밥’에 기웃거린 정황도 엿보인다. 전주을 예비후보로 등록한 이상직 전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이사장은 기관장으로 있던 지난해 10월 총선과 관련한 지적을 받았다. 전주 일대에 추석 인사를 담은 홍보성 현수막을 내건 것이다. 또 지난해 12월에는 전주 완산구에서 출판기념회를 열었다가 빈축을 샀다. 출판기념회는 사실상 선거 출마를 알리는 출정식으로 간주되곤 한다. 공직선거법은 선거일 90일 전부터 출판기념회 개최를 금지하고 있다. 김성주 전 이사장은 사표가 수리되자마자 그다음 날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공공기관 상근임원이 출마를 위해 사퇴하는 게 위법행위는 아니다. 단 선거철마다 인사가 들썩이는 공공기관에서는 핵심 임원의 사퇴로 연속성 있는 정책 비전을 제시하기 힘들다는 시각이 있다. 장기적 사업계획을 짜는 데도 어려움이 있다.

특히 장기 계획의 부재는 공공기관의 재무 위기가 확대되는 상황에서 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획재정부는 39개 주요 공공기관의 부채 규모가 점차 증가해 2023년 586조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길게 보고 관리하지 않으면 세금으로 메우는 상황을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공공기관장이 현안을 풀지 않고 떠나버린 점도 문제로 꼽힌다. 기관장 공석이 된 도로공사는 노사 갈등으로 내홍을 겪어왔다. 2017년 톨게이트 요금수납원을 본사가 아닌 자회사가 정규직으로 채용하기로 한 게 시작이었다. 이에 반발하다 해고된 수납원 약 1500명은 지난해 7월 농성에 돌입했다.

이후 대법원은 ‘수납원 고용 형태는 불법’이란 판결을 내렸고, 공사는 이를 받아들여 직접 고용 방침을 밝혔다. 해고 수납원 1000여 명이 소속된 한국노총은 지난해 10월 농성을 멈췄다. 나머지 수납원이 속한 민주노총은 올 들어 1월31일 조건부로 농성을 중단했다. 하지만 불씨는 남아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이강래 전 사장에게는 해결 의지가 전혀 없었다고 본다”며 “사장이 갈등을 키워놓고 떠나버려서 총선 낙선 운동까지 고민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김성주 전 이사장은 연금 개혁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선거판에 뛰어들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은 2018년 2월 “공공기관 경영 공백이 길어지면 결정권자의 부재로 기관 운영이 불안해지고 사업 추진에 차질이 생겨 재정적 손실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총선이 휩쓸고 간 공공기관 임원직은 누가 채우게 될까. 정치권에선 또 낙하산 인사가 거론된다. 주택도시보증공사 등 일부 공공기관에서 수개월째 임원추천위원회가 열리지 않은 점을 근거로 제시한다. 여당의 경선 탈락자나 총선 낙선자의 자리 마련을 위해 시기를 일부러 늦추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한국광물자원공사는 1년 반 넘도록 임원추천위원회 개최 소식이 없다.

2019년 7월4월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노조원들이 경기도 성남시 경부고속도로 부산 방향 서울 톨게이트(TG) 진입로 일부를 점거하고 있다. ⓒ연합뉴스

“선정된 임원 정치적 배경까지 밝혀야”

임원의 잦은 교체를 막을 방법으론 임기 조정안이 제기된다. 현행법상 공공기관장 임기는 3년, 감사는 2년이다. 김정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9월 대통령과 공공기관장 임기를 연동하는 법률안을 발의했다. 공공기관이 정권과 정치적 책임을 공유해야 한다는 취지다. 그다음 달에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이에 화답했다.

이른바 ‘보은 인사’의 근절 방안에 관해선 인사 책임 강화가 거론된다. 김철 사회공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아예 공공기관 임원을 장차관급 정무직 공무원과 비슷한 절차로 뽑아 그에 대한 책임을 정부가 지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나아가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개혁 의지도 강조했다.

임원 선임 과정의 투명성도 요구된다. 허경선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연구위원은 “임원 추천과 심의를 맡은 위원회의 활동 내역은 공개하는 게 원칙이지만, 비공개 조건을 달고 회의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아 원칙이 의미가 없다”고 꼬집었다. 허 연구위원은 “선정된 임원의 이력을 선택적으로 공개할 게 아니라 정치적 배경까지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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