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미래당, 의원 9명 ‘셀프 제명’…사실상 ‘공중분해’
  • 김재태 기자 (jaitaikim@gmail.com)
  • 승인 2020.02.18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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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 대표, 사실상 당 홀로 지키게 돼…지역구 의원까지 탈당하면 의석수 4석으로 감소

바른미래당 의원들이 18일 의원총회를 통해 비례대표 의원 9명을 제명 처리했다. 자의로 탈당할 경우 의원직을 잃는다는 점을 고려해 스스로 제명을 결의결했다.

박주선 의원 등 바른미래당 소속 의원들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열고 비례대표 의원 13명 중 안철수계 의원들을 포함한 9명을 '셀프 제명'했다. 이날 제명된 의원은 김삼화·김수민·김중로·신용현·이동섭·이태규 의원 등 안철수계 의원 6명과 이상돈·임재훈·최도자 의원이다. 제명된 의원들은 의총 직후 국회 의사국에 당적 변경 신고서를 제출했다.

이에 따라 바른미래당 소속 의원은 기존 17명에서 8명으로 줄어들었다. 4명의 지역구 의원도 곧 탈당하겠다는 입장이다. 

박주선 의원 등 바른미래당 의원들이 18일 의원총회를 열고 비례대표 의원의 제명 등을 논의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박주선 의원 등 바른미래당 의원들이 18일 의원총회를 열고 비례대표 의원의 제명 등을 논의하고 있다. ⓒ 연합뉴스

4선 지역구 의원으로 비례의원들을 떠나보내게 된 박주선 의원은 이날 의총 모두발언에서 "제명을 요구하는 비례대표 의원들을 끝까지 설득해서 함께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여기까지 왔다"면서도 "자기 생각과 가치를 따라서 새로운 정치의 무대에 들어가는 과정과 절차를 밟겠다고 하니 (제명을) 해드리는 것이 인간적인 도리에 맞고 소인배적인 보복정치가 아니게 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동철 의원은 "정치는 국민보다 반 발자국만 앞서가야 하는데 열 발자국 앞서가려다가 파국을 맞게 됐다"고 안타까워하면서 "정치의 노선과 생각이 달라져서 각자의 길을 가도록 풀어드리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중도개혁세력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반드시 하나가 되어야 한다. 큰 바다에서 다시 만나 크게 하나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주승용 의원도 "비례대표 의원만을 당에 남겨두고 (탈당해) 가는 것은 선거 앞두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제명의 이유를 설명하고 "21대 총선에서 최선을 다해서 더불어민주당 실정,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의 전신)의 무능, 반대를 위해 반대하는 정치를 타파하기 위해서 함께 노력하자"고 덕담을 건넸다.

이날 비례대표 의원 제명으로 손학규 대표의 진퇴 문제를 놓고 지난해부터 끊임없이 내홍을 겪어온 바른미래당은 '공중분해' 수순으로 들어갔다. 2018년 2월 출범 당시 30석에 달했던 의석수는 2년 만에 8석으로 쪼그라들었다. 앞으로 지역구 의원들마저 탈당하면 4석으로 줄어든다. 

거대 양당 구도에서 벗어나 다당제를 실현하겠다던 손 대표는 껍데기만 남은 당을 홀로 지키게 됐다. 남은 박선숙·박주현·장정숙·채이배 의원 중 박주현·장정숙 의원은 각각 민주평화당과 대안신당에서 활동하고 있고, 박선숙 의원은 당 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채이배 의원의 경우 손 대표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며 정책위의장직을 스스로 내려놓은 바 있다. 정상적인 당 활동이 가능한 의원은 거의 없는 셈이다. 

바른미래당의 붕괴는 사실상 예상된 수순이었다. 지난해 4·13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한 이후 '손학규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당은 당권파와 비당권파로 분열돼 극심한 갈등을 겪었다. 당 내분 수습을 위해 출범한 혁신위원회는 구성된 지 열흘 만에 좌초했고 비당권파 최고위원들이 회의 참석을 거부하면서 당 최고위원회도 무력화된 지 오래다. 유승민계·안철수계 의원들은 지난해 9월 비당권파 모임 '변화와 혁신을 위한 비상행동'을 만들어 독자 행동에 나섰고, 결국 유승민계 의원들은 탈당해 올 1월에 새로운보수당을 창당했다.

안철수계 의원들은 당시에는 당에 남았지만, 올 1월 안철수 전 의원이 귀국하자 국민의당(가칭) 창당에 나섰다. 김동철·박주선·주승용 등 호남 의원들과 임재훈·채이배 등 당권파 의원들은 여러 고비 때마다 손 대표를 감쌌지만, 안 전 의원마저 탈당하면서는 손 대표에게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들의 퇴진 요구에 손 대표는 최고위원·사무총장직 박탈로 거부의 뜻을 명확히 하며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나아가 최측근으로 불렸던 이찬열 의원마저 탈당함으로써 원내교섭단체 지위를 잃고 연쇄 탈당까지 예고되자 손 대표가 급히 꺼내든 '호남 3당 합당' 카드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손 대표는 자신을 향해 퇴진 압박이 이어지자 "지역주의 구태로 회귀해서는 안 된다"며 말을 바꿨지만, 그 사이 바른미래당 호남계 의원들은 '꼭 바른미래당이 아니어도 된다'는 '플랜B'를 세운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자신들의 탈당 결심이 어느 정도 굳어진 상황에 이르자 당권파를 포함한 비례대표 의원들의 묶인 발을 풀어주기로 결단하게 됐다. 주승용 의원이 이날 의총에서 "비례대표 의원만을 당에 남겨두고 (탈당해) 가는 것은 선거 앞두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반면 안철수계 비례대표 의원들이 이날 제명으로 의원직을 유지한 채 바른미래당을 빠져나오게 되면서 국민의당에 합류할 수 있게 되면서 안 전 의원은 '천군만마'를 얻게 됐다. 오는 2월23일 창당을 앞둔 국민의당에는 현역 의원 6명이 함께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안철수계 의원 7명 중 안 전 의원의 귀국 직후까지도 안철수계와 뜻을 함께했던 김중로 의원은 미래통합당에 입당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다만 논란의 불씨는 남아 있다. 이날 제명 결정이 윤리위 심사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른미래당 당헌·당규는 국회의원인 당원의 제명은 윤리위원회가 징계를 심사·의결·확정한 후 의원총회에서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단 국회 사무처는 국회법상 비교섭단체 소속 의원의 당적 변경은 '보고' 사항으로, 해석의 권한이 없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손 대표 측은 윤리위를 거치지 않은 의총 의결은 무효라는 입장이다. 황한웅 사무총장 등은 이날 오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방문해 '윤리위의 '제명' 의결이 필수 불가결한 것인지에 대해 대면 질의하고 답변을 요구했다. 현재로선 손 대표 측이 법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경우 당을 옮긴 의원들과 관련해 '이중당적'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이 남아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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