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 1조원대 로열티로 날개 다나
  • 김도현 시사저널e. 기자 (ok_kd@sisajournal-e.com)
  • 승인 2020.02.27 14:00
  • 호수 1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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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LG 배터리 특허전쟁에서 LG화학 승기…로열티 협상 타결되면 천문학적 금액 얻을 수도

재계 3위 SK그룹과 4위 LG그룹의 자존심 싸움으로까지 비화했던 배터리 특허전쟁이 새 국면을 맞았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최근 LG화학이 요청한 SK이노베이션의 ‘조기패소 판결(Default Judgment)’을 수용했기 때문이다. 사실상 LG가 승기를 쥔 셈이다. 업계에서는 오는 10월5일로 예정된 최종 판결에서도 LG화학의 승소를 유력하게 점치고 있다.

확정 판결 이후에는 SK이노베이션의 미국 내 배터리 관련 부품·소재 등의 수입이 전면 금지된다. 북미 시장 공략에 열을 올리던 SK이노베이션 입장에서는 상당히 뼈아픈 판결이다. SK이노베이션은 현재 미국 조지아주(州)에 1조9000억원을 투입해 배터리 생산라인을 건립 중이다. 약 1조원을 투입해 2공장 설립 계획을 마무리한 상태다. 지난달부터는 이곳 공장에서 근무할 경영지원 인력과 배터리 엔지니어 채용을 시작했다. 이런 이유로 SK는 향후 LG 측과 로열티 협상에 나설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ITC, SK이노 조기패소 판결 수용

LG화학도 이를 인지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과 중복 거래처가 많은 LG화학이 최종 판결이 날 때까지 협상을 거부할 경우 상당한 수주 실익도 가능하다. 하지만 국내외 정세를 감안했을 때 LG화학 역시 로열티 협상에 나설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번 예비 판결로 우위를 점한 상황에서 협상 테이블이 마련되는 만큼, 요구사항 관철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판결 직후 두 회사가 내놓은 입장문을 보면, 양측 모두 합의 의사가 있음을 우회적으로 내비쳤다.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과는 선의의 경쟁관계이자 산업 생태계 발전을 위해 협력해야 할 파트너다. 이 같은 견해를 그간 견지해 왔다”고 강조했다. LG화학 측은 “이번 소송의 본질은 30여 년 동안 축적된 지식재산권을 정당하게 보호하기 위함”이라며 향후 협상 가능성을 열어뒀다.

로열티 협상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LG화학은 상당한 금전적 이득을 취할 수 있게 된다. 업계에서는 최소 수천억원에서 최대 1조원을 웃도는 규모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재판을 치르는 동안 소요된 법적 비용뿐 아니라 배상금까지 요구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LG화학이 일회성 비용을 청구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예상치 절반 수준의 일회성 비용을 SK이노베이션에 청구하고, 특허권을 보유한 제품 판매 매출액의 일부를 로열티로 지급해 줄 것을 요구할 가능성 역시 열려 있다.

실제 LG화학은 2017년 중국의 ATL을 상대로 ITC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양사는 최종 판결 직전 ‘안전성 강화 분리막(SRS)’ 관련 ATL 판매 매출 3%를 LG 측에 지급한다는 내용의 합의서를 작성했다. SK이노베이션의 경우 ATL 특허침해 소송 때보다 규모가 더 큰 만큼 비슷한 합의를 도출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미 두 회사는 소송 진행과 별개로 합의점 도출을 위한 논의를 지속해 왔고, LG화학은 로열티 지급을 요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 관련해 LG화학의 한 관계자는 “협상 중 로열티를 선제적으로 요청한 바는 없었다”고 강조했다. 사실상 칼자루를 쥔 건 LG화학이다. 어느 선택지를 택하더라도, SK이노베이션은 상당한 부담이 될 것으로 업계에서는 전망한다.

특히 배터리 시장은 현재 무한경쟁에 돌입한 상태다. LG화학·SK이노베이션을 비롯해 삼성SDI, 중국 CATL, 일본 파나소닉 등 한·중·일 업체들이 글로벌 시장의 패권을 쥐기 위해 총성 없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마치 반도체 시장이 부흥했을 때와 비슷하다. 치킨게임 끝에 ‘규모의 경제’가 뒷받침되는 소수의 기업들로 시장 재편이 이뤄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높은 가능성을 지닌 배터리 시장의 과실을 이들이 독점하게 되는 셈이다.

LG화학이 로열티 수수로 자금력이 풍부해지면, 자연스레 투자에도 힘이 실린다. 계획 중인 투자시설의 증설을 꾀하는 것 역시 가능해진다.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점유율 2~3위를 오르내리는 상황에서 이 같은 투자와 현금 여력 증가는 경쟁력 확보에도 밑거름이 되는 셈이다.

신학철 LG화학 대표가 2019년 7월 상생형 구미 일자리 투자 협약식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김상훈 제공
신학철 LG화학 대표가 2019년 7월 상생형 구미 일자리 투자 협약식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김상훈 제공

로열티 협상 앞두고 SK-LG 표정 ‘극과 극’

반면 SK의 투자 여력은 크게 위축될 수 있다. SK이노베이션은 현재 미국와 유럽 등에 생산라인을 짓고 있거나, 추가 증설을 추진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추가적인 금전 부담은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매출 일부를 로열티로 지급하게 되더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현재 글로벌 배터리 시세는 공급 과잉으로 급하강하는 추세다. 수주 경쟁까지 더해져 마진율이 저조하다. 로열티 부담까지 안게 되면, 최악의 경우 ‘밑지는 장사’를 하게 될 수도 있다고 업계는 지적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재 배터리 시장에서 높은 수준의 기술 경쟁력만큼 중요한 것이 자금력이다. 완성차업체들을 상대로 수주 활동을 하면서 일정 수준 이상의 제품력과 함께 가격 경쟁력도 갖춰야 하기 때문”이라며 “시장 성장 속도에 맞춘 안정적 공급을 위해서라도 생산라인 신·증설과 같은 투자가 가미돼야 한다. 이 과정에서 초기 발생할 수밖에 없는 적자를 잘 버텨낼 수 있는 자금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두 회사는 그간 호황기를 유지했던 석유화학 사업을 통해 거둔 이익금을 바탕으로 배터리 사업을 뒷받침해 왔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시작된 석유화학 업계의 다운사이클이 금년부터 상당기간 본격화될 것으로 점쳐지면서 배터리 사업의 자금 압박이 고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소송 결과에 따라 승소한 업체는 기회를, 다른 한 업체는 더 큰 부담을 짊어질 처지에 놓이게 됐다. 향후 사업 전개에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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