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신비보다 독자들의 위로가 더 큰 힘”
  • 조창완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2.23 11:00
  • 호수 1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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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사람 사이 채우던 나희덕 시인의 산문집 《저 불빛들을 기억해》

“사람 밖에서 살던 사람도/숨을 거둘 때는/비로소 사람 속으로 돌아온다. 새도 죽을 때는/새 속으로 가서 뼈를 눕히리라.”(시 《그곳이 멀지 않다》 중에서)

평론가 황현산은 나희덕의 시집 해설 서문을 이렇게 시작한다. ‘나희덕의 시는 늘 착하고 얌전하며, 게다가 읽기 쉽다.’ 실제로 시인은 적지 않은 마니아층을 갖고 있다. 《사표(辭表)》 《오분간》 《기억의 자리》 등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시들이다. 독자들은 당연히 시어들 사이의 궁금한 공간이 많다. 또 그 시어들의 근원이 어딘지도 궁금할 수밖에 없다. 2012년 첫 출간됐다가 10편 정도의 산문을 보태고, 문장들도 다시 손봐 내놓은 《저 불빛들을 기억해》는 그래서 반가운 책이다.

《저 불빛들을 기억해》 나희덕 지음│마음의숲 펴냄│268쪽│1만3800원 ⓒ조창완 제공
《저 불빛들을 기억해》 나희덕 지음│마음의숲 펴냄│268쪽│1만3800원 ⓒ조창완 제공

“늘 착하고 얌전하며 읽기 쉬운 시”

책을 펼치면 어머니가 일하던 보육원이 있던 논산과 서울의 공간들이 선명하게 들어온다. 보육원의 한 일원 같은 상황이지만, 부모가 있다는 이유로 다른 아이들에게 가장 질시를 받을 수밖에 없는 숙명이다. 그런데 책에서 만나는 이 가녀린 소녀는 의외로 강단이 있다. 스스로도 ‘얼핏 내성적이고 온순해 보이는 아이였지만 내면에는 좀처럼 길들지 않는 고집 센 말 한 마리가 자라고 있었다’고 썼다. 실제로 시인은 여자들은 기피한다는 66년 말띠다.

“개인별 차이는 있겠지만, 늘 분주하고 고단한 나날들을 보내긴 했다. 역마살도 있는지 타지에서 오래 살거나 국내외 여기저기를 많이 돌아다닌 편이고, 여행도 즐긴다. 그러나 말띠 여성의 활동력과 솔직함, 집중력 등의 긍정적 에너지는 그런 어려움을 털어버리며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된 면도 많은 것 같다. 그리고 나 자신은 고단하고 짐이 많은 운명이지만, 나의 수고로 주변의 사람들이 잘 살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라 여기며 지낸다.”

작가는 자신의 숙명적 일인 시인을 눈물 흘리는 일을 대행하는 곡비(哭婢)에 비유한다. 스스로 ‘내 시의 팔 할은 슬픔이나 연민의 공명(共鳴)에서 시작된 게 아닌가 싶다’고 말할 정도다. 이 산문집에도 눈물 이야기가 많다. 눈물이 문학이라는 불꽃을 지피는 연료이기도 하지만 견뎌 낸다고 한다. 특히 작가의 시 세계는 2014년 4월 국민 모두의 심장을 깊은 바다로 수장시킨 세월호 사건을 통해 갈라지기도 했다.

“어릴 때 정말 울보였는데, 성장하면서 그리고 문학을 하게 되면서 밖으로는 눈물을 잘 흘리지 않게 됐다. ‘건천이 소리를 내기 시작할 때’에 나오는 것처럼, 글을 쓰는 자가 되고 나서는 나 자신의 슬픔보다는 타자와 세상의 슬픔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되어서일 것이다. 그리고 ‘시는 감정의 해방이 아니라 감정으로부터의 도피’라는 T.S 엘리어트의 말처럼, 슬픔은 문학의 연료지만 그 슬픔을 부단히 객관화하고 절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나이가 들면서 눈물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형성되거나 더 깊고 간접적인 방식으로 표출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책에 자주 등장하는 시인의 공간은 어린 시절을 산 논산, 또 어릴 적 올라온 서울, 조선대학교에서 교수로 일하면서 산 광주다. 이 책에는 특히 광주와 주변 이야기들이 많다. 지역이 주는 가장 특별한 정서가 있을까.

“아버지의 고향이 평안도이고, 내가 태어난 논산 역시 부모님의 고향이 아닌지라 나에겐 특정한 곳을 고향으로 여기면서 따라붙는 타향의식이 별로 없는 듯하다. 고향과 거주지가 어디든, 이 지구에 와서 한국이라는 나라에 사는 것 자체가 아주 짧은 꿈처럼 우연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그렇게 인생 자체가 타향살이라고 여겨서인지 낯선 지역에 가도 빨리 적응하는 편이었던 것 같다. 그 말은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않는 존재라는 의미도 되겠다. 그래도 18년이라는 시간을 광주에서 보낸 것은 두고두고 내 인생에서 소중한 경험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울에서만 살았다면 가지지 못했을 지역성에 대한 이해나 실감, 아름다운 자연과 공동체적 분위기를 누리고 배울 수 있는 기간이었다. 서울로 돌아왔지만, 나는 여전히 서울 변방(노원구)의 무주택자로서 조용히 살고 있다.”

산문집 카테고리 ‘점·선·면’으로 구성

시인이 쓰는 산문집은 시적 정감이 있는 반면에 독자들에게 해독하기 쉽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면도 있다. 표제작 《저 불빛들을 기억해》는 시인의 아이가 아팠을 때 만나야 했던 병원의 병동에 있던 수많은 사연들에 관한 애잔한 공감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시보다는 산문이라 더 쉽게 들어온다. 시를 주로 쓰는데, 산문집도 가끔씩 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가 춤이라면 산문은 보행’이라는 발레리의 말처럼, 산문은 시와는 달리 전하고자 하는 바가 비교적 명료하고 구체적이다. 그래서 시인이 산문을 쓰는 일은 시의 모호성이나 신비를 깨뜨리는 일이 될 위험도 없지 않다. 이번 산문집도 자전적인 내용이 많은 편이라 ‘시인으로서 삶의 통점들을 너무 직접적으로 드러낸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현대시 읽기를 어려워하는 독자들에겐 좀 더 친절한 참고자료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누군가에겐 위로와 격려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개정증보판을 내게 됐다. 예전에 이따금 ‘시보다 산문이 좋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유쾌하지 않았는데, 요즘엔 그렇지 않다. 시를 쓸 때와 산문을 쓸 때 정서, 사유, 감각, 문체 등의 차이를 오히려 뚜렷하게 자각하며 쓰려고 노력한다.”

이번 책은 카테고리를 점, 선, 면으로 구성해 놨다. 읽는 독자들이 미리 알아두면 좋은 차이점은 있을까.

“칸딘스키의 예술론 《점, 선, 면》을 인상적으로 읽었고, 어찌 보면 모든 시각적 태나 문제의 양태가 그 셋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산문집을 몇 개의 갈래로 나누면서 점, 선, 면, 이 셋으로 부를 나누어본 것이다. 그러나 개인의 내면적인 문제가 타자와 무관하게 존재할 수 없고, 개인과 개인의 관계의 배면에는 사회나 세계의 구조적 문제가 깔려 있기에, 이런 구분 자체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다만 편의에 의해 나눈 것일 뿐, 어디서부터 읽든, 어떤 글이 어디에 속해 있든 자유롭게 읽어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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