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곳 잃은 뭉칫돈 잡아라” 금융사들 고금리 전쟁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0.02.27 10:00
  • 호수 1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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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금리·경기 불확실성 확대 속 ‘틈새 전략’으로 고객 유치

‘이 하나은행 상품 가입을 고려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얼마 전 카카오톡으로 기사 링크와 함께 이런 메시지를 전달받은 이영준씨(33)는 눈이 확 트였다. 기사 제목의 ‘최고 5.01% 금리’라는 글자 때문이었다. 연 2%대 적금도 흔치 않은 시대에 솔깃한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곧바로 하나은행 애플리케이션에 접속했으나 이미 이씨 같은 사람 수만 명이 몰려 접속하는 데만 2시간 넘게 걸린다는 안내가 나왔다. 

이렇듯 초저금리 시대에 접어들면서 은행들이 틈새를 공략한 고(高)금리 상품으로 고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하나은행은 지난 2월3~5일 금리 5%대 적금 상품 ‘하나 더 적금’을 판매했다. 해당 상품은 가입기간 1년에 월 30만원까지 납입할 수 있고 최대 이율은 연 5.01%다. 기본금리 연 3.56%에 온라인 채널 가입(연 0.2%), 하나은행 입출금통장으로 자동이체 등록(연 1.25%)의 조건을 충족해야 연 5.01% 이자를 받는다. 

2월3일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에서 직원이 고객을 응대하고 있다. ⓒ연합뉴스
2월3일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에서 직원이 고객을 응대하고 있다. ⓒ연합뉴스

연 5%대 적금에 고객 구름떼 

이자를 최고로 많이 받아봐야 세후 기준 8만2650원에 불과하지만 가입 희망자가 구름떼처럼 몰렸다. 앱 ‘하나원큐’와 콜센터는 물론 영업점 창구도 북새통을 이뤘다. 힘겹게 상품 가입에 성공한 고객은 총 136만7000명으로 집계됐다. 가입 금액은 3788억원에 이른다. 하나은행도 이 같은 인기를 예상치 못한 모습이었다. 

직장인 김아무개씨(35)는 “어디 투자할 돈은 없고 그냥 ‘지출이라도 줄이자’던 차에 적금을 부으면 5%대 이자를 준다고 하니 곧바로 (가입을 위해) 앱에 접속하게 되더라”며 “연 2%대 금리도 찾기 어려운데, 큰 은행에서 이벤트성으로 대단한 혜택을 주는 것같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현재 시중은행에서 판매하는 만기 1년짜리 정기적금의 금리는 연 1.0~2.4% 수준이다. 3년짜리도 금리는 연 1.15~2.20%로 크게 차이가 없다. 정기예금 역시 1년 만기 기준 연 1.1~1.7%로 2.0% 넘는 상품이 안 보인다. 

김정환 GB투자자문 대표는 “저금리가 장기화하고 경기 불확실성도 커지며 단기자금으로 계속 돈이 몰리고 있다. 그중 부동산으로 향했던 자금 흐름은 정부의 강력한 규제 의지 속에 주춤한 모습”이라면서 “투자처를 찾는 자금이 대형 금융사의 이벤트에 몰리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하나은행은 한시적으로 선보인 상품인 하나 더 적금 외에 최대 4.1% 금리를 주는 ‘급여하나 월복리적금’을 판매하고 있다. 분기당 150만원 한도에서 자유롭게 저축할 수 있고 가입기간은 1·2·3년 중 선택하면 된다. 최대 이율은 올해 입사한 만 35세 이하 청년 직장인이 1년제 적금에 가입할 때 적용된다. 

신한은행에도 자격에 따라 우대이율을 제공하는 고금리 상품이 있다. ‘신한 첫 급여 드림(Dream) 적금’은 월 100만원까지 납입 가능하고 가입기간은 1년이다. 기본금리 2.0%에 급여 이체 실적에 따라 우대이율이 늘어난다. 급여 이체 실적 9개월 달성 이후 입금분부터 연 5.0%의 금리를 받을 수 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직장인뿐 아니라 매월 50만원 이상 입금되는 개인사업자의 카드 매출액, 아르바이트 생활자의 알바비, 학생의 용돈, 주부의 생활비도 정기적인 소득으로 인정한다”며 “고객들이 소중한 소득을 모아 목돈 마련의 꿈을 이루는 데 기여하면 좋겠다”고 밝혔다.  

우리은행은 스마트폰 전용 ‘위비 짠테크 적금’을 운영한다. ‘짠테크’는 절약의 의미를 지닌 ‘짠’과 ‘재테크’를 합성한 말이다. 월 최대 50만원까지 자유롭게 적립할 수 있으며 기본금리는 연 1.0%, 최대 이율은 2.7%다. 1년 단위로 매주 1000원씩 납입액을 늘려가는 ‘52주 짠플랜’이나 한 달 주기로 매일 1000원씩 입금액을 늘려가는 ‘매일매일 캘린더플랜’, 절약한 하루 생활비를 바로바로 입금하는 ‘원데이 절약플랜’ 등 다양한 우대이율 항목이 있다. 

고금리 상품, 부수 마케팅 효과도 톡톡 

우리은행의 다른 모바일 전용상품인 ‘위비 꾹 적금’은 최대 연 2.5% 금리를 제공한다. 납입 한도는 월 최대 30만원까지고, 6개월과 12개월 중 선택할 수 있다. 기본금리는 1년 기준 연 1.9%인데, 목표 달성에 따라 0.6%의 추가금리를 얻으면 연 2.5%까지 높아진다. 매일 알림 메시지를 받고 다짐 ‘성공’을 누르면 1만원, ‘실패’를 누르면 5000원이 적금으로 이체된다. 

은행 입장에선 고객들에게 상대적으로 높은 이자를 제공하는 적금 상품을 운용하는 게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하나은행의 경우 이번 하나 더 적금 가입 고객들에게 은행 평균 대비 2배 이상의 이자를 줘야 한다. 다른 은행 1년 만기 적금 이율이 연 2.0%라고 치면(이자 3만2994원) 1인당 4만9656원을 더 줘야 하는 셈이다. 총 136만7000개의 하나 더 적금 계좌가 개설됐으니, 하나은행이 진 부담은 어림잡아 678억원에 이른다. 

그러나 이번 사례를 두고 하나은행이 손해를 봤다고 하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부수적인 마케팅 효과가 상당해서다. 하나은행은 기존 KEB하나은행에서 ‘KEB’를 뗀 기념으로 하나 더 적금을 내놨다. 하나 더 적금은 판매기간에 포털사이트 검색어 상위권에 오르고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널리 회자됐다. 재테크에 관심 있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하나은행의 사명 변경 사실을 알게 됐다. 

지난해 7월에는 카카오뱅크가 1000만 계좌 돌파를 기념해 100억원 한도로 선착순 판매한 연 5.0% 금리 정기예금이 ‘1초’ 만에 완판된 바 있다. 판매 개시와 동시에 마감된 것이다. 연 5.0%는 카카오뱅크 1년 만기 예금 금리 2.0%의 2.5배에 달한다. 특별 상품의 1인당 가입 가능 금액은 100만원에서 1000만원까지였다. 너무 이른 가입 마감에 볼멘소리를 낸 고객도 있었으나, 결과적으로 카카오뱅크는 대내외에 금융시장 연착륙 사실을 당당히 알리게 됐다. 

은행권 관계자는 “일차원적인 광고는 대중을 스쳐 지나갈 뿐인데 하나은행, 카카오뱅크 등의 특별 상품은 그 자체로 고객들의 능동적인 관심을 끌어내고 모든 언론에 소개된다”면서 “예·적금 말고도 다양한 금융상품을 취급하는 은행 입장에선 추가·잠재 고객 확보 효과 역시 톡톡히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제2금융권도 고수익 상품으로 자금 몰이 

제2금융권도 마찬가지다. 갈 곳 잃은 시중 자금을 끌어들이기 위한 고수익 추구 상품이 최근 고객의 눈길을 끌고 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운용 중인 주식형 펀드 ‘미래에셋코어테크펀드’는 지난해 10월 출시 후 설정액 800억원을 넘어섰다. 미래에셋코어테크펀드의 2월14일 기준 수익률은 16.39%로 같은 기간 4.88%를 기록한 코스피 지수 성과를 훌쩍 뛰어넘는다. 이 펀드는 코스피와 코스닥의 반도체, 2차전지, 5G 통신장비 등 IT 관련 종목에 투자하는 상품이다. 진입장벽이 높은 기술이나 핵심 기술을 국산화할 수 있는 잠재력을 보유한 기업, 고성장이 예상되는 국내 IT 관련 기업이 투자 대상이다. 

미래에셋대우는 투자 성향에 따라 전략을 선택할 수 있는 ‘글로벌 X(Global X) 포트폴리오 자문형랩’도 판매하고 있다. 혁신성장형과 인컴형, 밸런스드 등 3가지 포트폴리오 중 하나를 선택해 투자하는 글로벌 랩어카운트 상품이다. 혁신성장 포트폴리오는 로봇, 빅데이터, 헬스케어, 전기차 등 사회에 구조적 변화를 일으키고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상장지수펀드(ETF)에 주로 투자한다. 인컴 포트폴리오는 고배당주, 리츠(REITs·부동산투자신탁), MLP, 커버드콜 전략 ETF로 구성됐다. 밸런스드 포트폴리오는 혁신성장과 인컴 포트폴리오에 균형 있게 투자한다. 투자자가 시장 상황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하며 고수익을 노릴 수 있는 이 상품 판매액은 2월20일 기준 1000억원을 돌파했다. 미래에셋대우 관계자는 “국내 저성장 기조의 장기화로 해외 주식과 ETF 투자에 대한 관심이 증가한 것이 판매 증가를 견인했다”고 설명했다.   

 

저축은행도 1%대 ‘쥐꼬리 이자’ 시대 

그동안 저축은행은 상대적으로 제1금융권에 비해 이자가 높은 것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이제는 저축은행 예금으로 연 2%의 금리도 받기 힘든 시대가 됐다. 

저축은행중앙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 1월23일 기준 저축은행 79곳의 1년 만기 정기예금 평균 금리는 1.99%다. 연초만 해도 2.12%였다가 조금씩 하락해 2% 아래로 내려왔다. 6개월 전(2.47%)과 비교하면 더 낙폭이 크다. 2년, 3년 만기 예금 평균 금리는 각각 2.02%, 2.03%로 2%대를 겨우 턱걸이했다. 6개월 전에는 각각 2.52%, 2.54%였다. 

시중은행보다 높은 금리를 제공하는 저축은행의 장점은 이제 옛말이 됐다. 그 배경에는 퇴직연금 정기예금의 성공이 있다. 최근 주요 저축은행이 내놓은 퇴직연금 정기예금 상품에 투자자가 몰렸다. 이에 저축은행들은 예대율(예금액 대비 대출액 비율) 여유를 확보하게 됐다. 올해부터 시행되는 예대율 규제를 맞아 운신의 폭이 넓어진 것이다. 굳이 예금 금리를 높여 추가 자금을 확보하지 않아도 됐고, 이는 ‘쥐꼬리 이자’로 이어졌다. 

저축은행 예금 금리의 하락세는 앞으로도 이어질 여지가 많다는 분석이다. 올해 기준금리 추가 인하 가능성이 남은 가운데 금융 당국은 저축은행에 대출 금리를 낮추라고 주문하고 있다. 대출 금리를 낮추면 예금에 붙는 이자도 줄어든다. 

자연스레 시중은행들이 내놓는 고금리 예·적금 상품의 인기가 더욱 높아지는 모습이다. 하지만 제1금융권의 고금리 상품 판매도 지속되거나 확대되긴 힘들 것이라고 김정환 GB투자자문 대표는 내다봤다. 김 대표는 “아무리 마케팅 효과가 있다 해도 은행들이 기본적으로 ‘밑지는 장사’를 상시적으로 할 순 없다”며 “당분간 정부에서도 저금리 기조를 이어갈 거라 예상되므로 고금리 상품 출시가 보편화할 유인은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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