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탄희 “사법부 개혁의지 허탈…국회가 주도해야”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0.02.21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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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총선 영입 인재 이탄희 변호사 “미래를 위한 제도 설계한 정치인 되고 싶다”

2017년 2월, 판사 이탄희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처음으로 바깥에 알린 이유는 ‘좋은 판사가 되고 싶어서’였다. 그의 폭로를 시작으로 초유의 사법농단 전말이 공개됐고, 양승태 대법원장을 비롯한 관련 법관들에 대한 수사가 시작됐다. 그로부터 3년 후, 문제가 된 법관들에 대한 사법부 판결은 무죄. ‘재판에 관여한 건 맞지만 처벌을 할 수 없다’는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근거를 들었다.

사법농단 법관에 대한 첫 무죄 판결이 나온 무렵인 지난 1월, 공익변호사로 활동 중이던 그는 더불어민주당 인재로 영입돼 정치권에 첫발을 내디뎠다. 정치인 이탄희의 일성은 역시나 일관되게 강조해 온 ‘법관 탄핵’과 ‘사법개혁’이었다. 사법개혁에 소극적이고 무능했던 정치권에 대해 이 변호사는 누구보다 불신도 환멸도 컸을 터. 그는 “참여하지 않으면 바꿀 수 없다”고 말한다.

2월19일 민주당은 이 변호사를 불출마 선언을 한 표창원 의원의 지역구 경기 용인정에 전략공천했다. 영입 한 달여 만에 본격적으로 선거전에 뛰어들 준비에 나선 이 변호사를 공천 발표 하루 전인 18일 여의도 민주당 당사에서 만났다. 그는 인재로 영입된 후 다른 영입 인재들과 모여 배움을 나누고 특히 멘토인 표창원 의원에게 여러 고민을 상의해왔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선거 일정들을 앞두고 긴장과 걱정을 내비치기도 한 이 변호사는 일관성을 지키며 미래를 위한 제도를 설계해나가는 ‘좋은 정치인’이 될 각오를 전했다.

경기 용인정 출마가 확정된 더불어민주당 영입인재 이탄희 변호사 ⓒ박은숙
경기 용인정 출마가 확정된 더불어민주당 영입인재 이탄희 변호사 ⓒ박은숙

정치에 대한 실망도 피로도 컸을 텐데 정치인의 길을 택하게 된 동력은 무엇이었나.

“참여를 하지 않으면 바꿀 수 없다. 바꾸기 위해선 결국 좋은 사람들이 해당 영역에 진출해야 한다. 그래야 개혁작업이 가능해지고 국민이 울분을 덜 수 있는 상황을 만들 수 있다. 법관 탄핵이 중요하다고 1년 내내 외쳐왔다. 그간 그렇게 귀 기울이지 않던 사람들이 지금 내가 정치참여를 하겠다고 선언하면서 탄핵을 얘기하니 훨씬 진지한 사회적 논의로 삼았다. 내가 얘기해 온 것들을 이젠 실천해야 하는 상황으로 흘러왔다는 게 실감이 났다. 되돌아봐도 정치참여는 내게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사법개혁에 대한 민주당의 의지는 확인했나. 그동안 개혁에 소극적이었던 것 같다.

“20대 국회 자체가 사법개혁 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평가가 좋지 않았다. 20대는 촛불 혁명 이전에 구성된 국회였다. 따라서 촛불 이후 처음 구성되는 21대 국회에선 사법개혁을 비롯한 여러 국가적 개혁 과제가 반드시 이행돼야 한다. 그런 과정에 민주당도 적극적으로 동참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는 걸, 내가 확인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확인을 했다. 스스로 결단할 수 있을 정도의 확인은 충분히 했다.”

 

“고민 있을 때 표창원 의원과 충분히 상의”

인재로 영입된 후 총선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

“영입 인재들은 멘토가 한 명씩 있다. 내 멘토는 표창원 의원이다. 지난해 가을 표 의원, 박주민 의원 등과 만날 기회가 있었다. 표 의원은 그때부터 내게 정치참여가 필요하다고 강하게 설득했다. 희망을 이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내가 정치참여로 인해 겪게 될 모함이나 억측을 우려하자 ‘자기중심적인 생각일 수 있다’며 날 단호하게 꾸짖기도 하신 분이다. 그 인연을 시작으로 중요한 고민이 있을 때 지금도 표 의원과 충분히 상의를 하고 있다.”

민주당 입당 선언 당시 ‘사법개혁을 통해 평범한 정의가 실현되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어떤 방법을 구상 중인가.

“제왕적 대법원장 체제가 50년 가까이 이어진 사법부를 개혁하는 과정은 단연 ‘대장정’이 될 것이다. 우선 꾸준히 강조했던 법관 탄핵을 통해 직업윤리의 기준을 정할 것이다. 그리고 전관예우방지법·현대판 장발장 방지법, 그리고 안전사고근절법을 추진할 계획이다. 안전사고근절법은 안전사고와 관련해 판사들이 독점적으로 형량을 정하는 현 시스템을 바꿔, 그로 인한 폐해를 줄이기 위한 법안이다.”

신설을 주장해 온 ‘개방형 사법행정기구’도 그 때문에 필요한 건가.

“큰 변화를 일으키려면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게 중요하다. 외국 정치인 중 엘리자베스 워렌을 좋아한다. 금융소비자들과 미국의 평범한 시민의 이익을 옹호하기 위해 시스템 자체의 변화를 꾀했고 ‘금융소비자보호국’이라는 조직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개혁을 위해선 풀어야 할 개별적인 과제가 아주 많다. 그런데 일단 기구가 만들어지면, 기구는 그 스스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게 된다. 금융소비자보호국이 만들어진 덕에 지속적인 개혁이 가능해졌고 역할은 점점 커졌다. 사법개혁도 마찬가지다. 물론 국회에서 개별 과제들을 열심히 추진하겠지만 이들을 끌고 갈 수 있는 기구가 분명 필요하다. 그러한 기구로 생각했던 게 바로 개방형 사법행정기구다.”

손에 쥔 권력을 나누고 포기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우린 검경 수사권조정을 비롯해 여러 곳에서 목격했다. 사법부에 대한 설득이 가능할까.

“확실하게 하고 싶은 건 개혁의 주체는 기본적으로 ‘국회’라는 점이다. 모든 개혁은 제도의 개혁이며, 제도의 개혁은 법률로써 완성된다. 법률을 만드는 건 국회다. 국회가 국민의 선택으로 들어온 이들로 구성된 이유다. 판사들은 재판에 집중하고, 국회는 사법개혁의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 재판보다 사법부 행정에 참여하는 걸 더 중요시하는 지금의 법관상(像)을 다시 세우는 작업이 필요하다.”

경기 용인정 출마가 확정된 더불어민주당 영입인재 이탄희 변호사 ⓒ박은숙
경기 용인정 출마가 확정된 더불어민주당 영입인재 이탄희 변호사 ⓒ박은숙

“대법원장 개혁 의지, 기대에 훨씬 못 미쳐”

사법개혁은 왜 미진한가.

“지금 사법부는 법원행정처를 통해 사법행정을 독점하는 구조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법개혁 과제 중 하나가 법원행정처 폐지인데, 이를 포함한 사법개혁을 바로 이 법원행정처가 주체가 돼 하고 있다. 없어져야 할 기구가 개혁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니 개혁의 방향도 계속 바뀌고 축소되고 있다. 전 사회에 긍정적 파급력을 미치는 개혁이어야 하는데 사법부 울타리 내에서, 판사들 사이에서의 주도권이 바뀌는 수준의 개혁에 머물고 있는 우려되는 상황이다.”

김명수 현 대법원장의 개혁 의지는 어떻게 보나.

“기대보다 훨씬 못 미쳤고, 개인적으로 허탈하고 배신감도 느낀다. 2017년 2월 퇴직하고 나올 때 난 내 역할을 안에서 최대한 했다고 생각했다. 그때 대법원장과 법원에 남은 분들께서 나머지 몫을 열심히 해주겠다고 직접 약속을 해줬다. 그런데 법관 징계 문제를 시작으로 계속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다. 분노를 느끼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일 거다.”

문제 법관들은 무죄 선고가 나고 복귀를 앞두고 있다. 사법농단 처벌이 흐지부지 되는 걸까.

“우선 판결 자체에 대해 동의하기 어렵다. 지위는 이용했지만 권한을 남용하지 않았다? 지위라는 게 권한에서 나오는 건데, 비상식적이다. 재판 개입은 있었지만 영향은 받지 않았다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개입한 사람 요구대로 판결이 바뀌었는데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게 이해할 수 없다. 애초부터 이건 형사재판으로 해결이 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정도(正道)로 다시 가야 하며 그것이 곧 헌법에서 예정하고 있는 절차인 법관 탄핵이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 난생 처음 변호사 활동을 하면서 판사 때와 어떤 차이를 느꼈나.

“30년 경력의 한 판사님이 자신의 책에 ‘변호사 30일 하며 깨달은 점이 30년 판사 하면서 깨달은 것보다 더 커서 너무나 당혹스럽다’는 문장을 쓰신 바 있다. 공감의 변호사를 하며 비슷한 경험을 했다. 변호사로서의 1년이 없었으면 아마 세상을 많이 이해하지 못했을 거다. 판사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직업이다. 변호사는 같이 눈을 마주치고 함께 몸으로 겪는 사람이다. 감정을 같이 느낀다. 특히 사회적 약자의 권익을 옹호하는 공감에서 변호사를 하며 느낀 점은 사회적 약자 권익 보호라는 게 결국 우리 평범한 다수 시민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는 점이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준다면.

“지하철 단체 소송을 진행했다. 전동차와 플랫폼 사이 간격이 넓어 장애인들이 여러 위험과 곤란을 겪는 문제였다. 소송을 시작한 건 장애인들의 어려움을 시정하기 위함이었지만 이 소송이 잘 돼 안전한 방향으로 바뀌면 어린이나 노약자까지 모두 이익을 볼 수 있었다. 사회적 약자라 하면 우린 마치 시혜를 베풀어야 하는 대상으로만 보고, 이익적으로는 오히려 우리와 배치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경기 용인정 출마가 확정된 더불어민주당 영입인재 이탄희 변호사 ⓒ박은숙
경기 용인정 출마가 확정된 더불어민주당 영입인재 이탄희 변호사 ⓒ박은숙

“사회·경제적 불평등 문제 해결 위해 노력할 것”

국회에선 젊은 정치인으로 분류될 거다. 정치권 세대교체나 청년들의 역할도 고민하고 있나.

“일단 (나는) 청년이 아니다. 40대는 우리 사회에서 엄청난 기득권인데, 우리 국회 현실을 보여주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사회·경제적 불평등에 특히 관심이 많다. 저성장·노령화 사회가 되다 보니 젊은 층에게 기회가 더 이상 보장되지 않는 사회가 돼가고 있고 그 과정에서 사회가 공정한 기회를 주지 않는 데 분노가 쌓이고 있다. 몇 년 전 서울대 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40% 이상이 우울증으로 힘들다고 답한 것을 봤다. 사회적 신뢰 측면에서도 사법시스템을 비롯해 신뢰수준이 전부 낮아져 있다. 결국 사회·경제 불평등의 문제는 사회적 약자의 기회 문제, 신뢰 문제, 정신건강의 문제와 다 연결돼 있다. 이 모든 것에 진지하게 접근해 최대한의 성과를 내려 노력하겠다.”

국회에 법조인들이 지나치게 많다는 지적이 있다. 이에 관해 직접 여러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는데.

“나에 대해서만 말하자면, 사실관계가 잘못 알려진 게 너무나 많다. 정식으로 퇴직한 지 이미 1년이 넘었고 재판을 진행한 지는 3년이 됐다. 현직에 있을 때 누구보다 정치적 논란 여지를 없애려 노력했다. 언론 인터뷰도 사표를 내기 전까지 고사했다. 만일 퇴직 이후 일정 기간 정치 참여를 할 수 없게 그 기간에 대해 제도적 논의를 할 필요가 있다고 하면 다 같이 차분하게 논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에 대해 사실관계를 비틀어가며 공격하는 부분에 대해선 좀 더 명확하게 해주시길 말하고 싶다.”

4년 후 어떤 정치인으로 평가받고 싶나.

“아직 이른 것 같지만 그때그때 필요한 일에 몰두해 하루하루를 채워 4년을 보내다 보면 국민께서 적절히 평가해주지 않을까 싶다. 임기를 계산하며 과업을 하지 않으려 한다. 욕심을 좀 내본다면, 4년 후 지금 말해던 그대로 ‘미래를 위한 제도를 설계했던 사람’으로 기억되면 행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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