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우리 당은 ‘기-승-전-손학규 퇴진’뿐이었다”
  • 송창섭‧박성의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20.03.03 08:00
  • 호수 1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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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 전 바른미래당 대표 격정 토로 “안철수는 철학 없이 대통령 욕심만”

1993년 1월부터 1994년 12월까지의 언론보도를 한국언론재단의 빅카인즈 분석 툴로 돌려보면 ‘손학규’라는 단어와 많이 언급되는 연관어 중 하나가 ‘개혁정치’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 같은 기준으로 분석 툴을 돌려보면 ‘내홍’ ‘비상행동’ 등이 검색된다. 개혁정치의 아이콘이었던 손 전 대표로선 격세지감이 들 것이다. 손 전 대표가 2월24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바른미래당 대표 자리에서 물러났다. 2018년 9월2일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에 선출된 지 1년6개월 만이다.

ⓒ시사저널 임준선
ⓒ시사저널 임준선

“중도+실용주의만이 한국 정치 살릴 수 있다”

유승민-안철수-호남계로 주체만 뒤바뀌었을 뿐 ‘손학규 사퇴부터’라는 메시지는 언제나 똑같았다. 그럴 때마다 손 전 대표가 대안으로 내세운 것은 ‘중도 성향의 제3정당’이다. ‘저녁이 있는 삶’으로 유권자들의 심금을 울린 그가 정치인생의 마지막 승부수로 내세운 것은 유럽식 중도 정당 건설이다. 여기에 그는 ‘실용’이란 단어를 붙이고자 했다. 100일간의 민심대장정, 생사를 오간 단식투쟁을 벌이며 정치인 손학규가 지키려 한 가치는 무엇이었을까. 그게 무엇이기에 ‘노욕의 화신’이란 소리까지 감수했던 것일까. 시사저널은 손 전 대표에게 격식에 구애받지 않는 ‘프리토킹’을 제안했으며, 흔쾌히 ‘좋다’는 답을 받았다. 손 전 대표와의 인터뷰는 2월26일 오후 서울 충정로에 위치한 동아시아미래재단에서 이뤄졌다. 코로나19가 대유행하는 것을 의식해서인지 손 전 대표는 취재진과 오른손 주먹을 가볍게 마주쳤지만 정작 대담이 시작되자 그동안 가슴에 쌓아 두었던 격정을 마구 토해 냈다.

‘손학규 징크스’라는 말을 들어봤나.

“2006년 ‘민심대장정’을 마치고 올 때 서울역에 1000여 명이 모여 있었는데, 그날 북한의 첫 핵실험이 있었다. 그래서 내 기사가 완전 죽었다. 대구역쯤 와서 핵실험 뉴스를 들었는데 그때 ‘이건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했다. 민심을 쉽게 얻을 거라 생각지 말라고 말이다.”

돌이켜보면 유승민-안철수 조합 자체가 실현 불가능한 것 아니었을까.

“난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1993년 국회에 들어오면서부터 쭉 중도 개혁을 외쳤다. 개혁이 뭔가. 잘못된 것을 고쳐서 바로잡는 거 아닌가. 난 중도에 길이 있다고 봤다. 국민들 삶의 질을 높여주는 게 실용적 정치다. 그래서 중도와 실용은 같이 갈 수밖에 없다. 내가 2000년 《진보적 자유주의의 길》을, 2010년에는 춘천에서 2년간 칩거하다 나오면서 《함께 잘사는 나라》란 책을 내지 않았나. 2012년 대선 땐 ‘저녁이 있는 삶’이란 캐치프레이즈를 냈다. 또 2016년 강진에서 나오면서는 대통령제와 거대 양당제를 끝내고 의회 중심, 좀 더 자세히 말하면 다당제 아래서 연합정치로 가는 제7공화국을 주장했다. 나는 일관되게 중도와 개혁, 실용을 이야기하고 있다.”

바른미래당 구성원들의 생각이, 거기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인가.

“대표로 나설 때만 해도 난 우리 당이 대한민국 최초의 좌우, 영호남이 합쳐져 중도 개혁의 길을 갈 수 있을 거라고 봤다. 지방선거에서 안철수·유승민계가 극도로 대립해 선거를 망쳤지만, 그때까지도 기대했다. 그런데 끝까지 대립과 갈등뿐이더라. 인사 탕평책을 썼는데 양쪽 모두로부터 거부당했다. 그러고는 작년 재보선 때부턴 손학규 쫓아내기가 본격화됐다. 솔직히 내가 당 대표 되고 나서 유승민 의원이 회의에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다. 하태경·이준석 최고위원이 나를 내쫓자고 하니까 그때부터 나오더라. 아마 그때부터 유승민계·안철수계는 보수 통합을 생각한 것 같다.”

이태규 의원이 사무총장에서 물러나면서 안철수 대표와 사이가 멀어졌는데.

“이 당(바른미래당)이 안철수·유승민이 함께 만든 당이기에 그 둘이 같이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바른정당계 출신인 오신환 의원을 사무총장에 임명하니, 이태규 의원이 반발하더라. 그때부터 안철수 대표하고 연락이 끊겼다.”

그 전에는 소통이 됐나.

“독일 가고 나서도 초반에 2~3번 정도는 통화했다.”

유승민계는 왜 손 대표 체제를 흔들었을까.

“그 사람들(유승민계)의 퍼스낼리티(성격)나 문화가 정치적 예의나 금도가 없다.”

계파 수장인 유승민 의원과는 어떻게 지냈나.

“당 대표 되고 두 번 식사를 했다. 두 번째는 3시간 동안 막걸리 마시며 이야기했다. 그때 내가 ‘당신 개혁보수 해라. 다만 진보를 빼자는 말은 하지 말라’고 했다. 진보를 배제한다는 말은 당에서 호남 세력을 빼겠다는 걸로 들릴 수 있어서였다. 이야기를 듣더니 유승민 의원이 대뜸 그러더라. ‘박주선·김동철 의원이 어떻게 나보다 진보냐’고. 그 양반(유승민 의원)은 자기가 주인이 아니면 뭘 할 수 없는 사람이다.”

유 의원이 말하는 통합 3원칙을 어떻게 보나.

“유승민다운 얘기지. 모든 사람이 내 앞에 와서 무릎 꿇지 않으면 난 안 한다는 건데, 정치는 그런 게 아니다. 타협이고 양보다. 그게 민주주의인데 그걸 거부하는 거다.”

안철수 대표 쪽에 ‘함께하자’는 메시지는 여러 차례 줬나.

“솔직히 안철수 대표에게 큰 기대를 걸었다. 1월초 안 대표가 페이스북에 귀국한다고 밝혔는데, 난 사실 그보다 이틀 전에 이메일을 보냈다. 돌아오시라고. 답은 없었다. 그러고는 페북에 귀국하겠다는 글을 올렸기에 또다시 장문의 이메일을 보냈다. 환영하며, 오면 내가 잘 모시겠다고 했다. 그런데도 답이 없더라. 1월17일에도 이메일을 보냈는데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그러고는 처음 본 게 1월27일이다. 20~30분가량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물었다. 언론 보도를 보니 창당 얘기도 있던데 어떻게 할 거냐고. 그랬더니 ‘조직을 개편해야죠. 비대위를 구성해야죠’라고 하는 게 아니겠는가. 그래서 내가 ‘비대위? 그럼 누구를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대뜸 ‘제게 맡겨주시면 제가 잘하겠습니다’라고 했다.”

애초에 안철수계 쪽에 ‘잘 모시겠다’고 말하지 않았나.

“일단 그날은 그랬다. 안 대표가 내일(1월28일)까지 답변을 주시면 된다고 하더니, 바로 일어서는 게 아니겠는가. 수고했다,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없었다. 난 그때 직감했다. 처음부터 다른 살림 차릴 걸 생각한 거라고. 여하튼 작년부터 우리 당은 ‘기-승-전-손학규 퇴진’뿐이었다.”

차라리 안 대표에게 비대위원장 자리를 넘겨줬으면 어땠을까.

“정치인을 떠나 인간적 도리로 볼 때도 안 대표가 그래선 안 된다. 내가 당 대표를 1년 반 했으면 그동안 갖춰놓은 체제도 있는데. 안 대표가 예의만 갖췄다면 자리에 연연하지 않았을 거다. 평소 난 당 대표는 물론이고 선거대책위원장도 안 대표 주도로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너 물러나, 이젠 내가 할 게’ 그건 좀….”

안 대표에게 많이 실망한 모습이다.

“안 대표의 그날 발언은 기업 오너가 전문경영인에게 ‘너 나가’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안 물러나? 그럼 내가 따로 차릴게,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안 대표가 오늘날 이렇게 온 것은 자기 정치노선을 확고하게 갖지 못해서라고 본다. 안 대표는 확실한 중심 철학 없이, 대통령이 되겠다는 생각밖에 없다. 이 나라를 어떻게 이끌고 나가겠다는 확고한 철학이 없다는 말이다.”

그런 면에서 유승민 의원은 어떤가.

“거긴 뭐 보수꼴통이고. 그 사람이 개혁적인 게 뭐가 있는가. ‘증세 없는 복지 없다’고 말한 거 말고는 없다.”

지금까지 손 대표의 이미지는 대표 자리에 너무 연연하는 모습이었다. 지난해 추석 전 당 지지율을 10%까지 끌어올리지 못하면 사퇴하겠다는 말을 번복한 것도 그렇고.

“나보고 사람들이 물러나라고 할 때 내가 혁신위를 꾸리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혁신위를 꾸리자마자 나온 말이 ‘손학규 물러나라’다. 그 상황에서 어떻게 추석 전 10%를 이루나. 당 혁신위가 아니라 손학규 퇴진 혁신위였다.”

단식투쟁까지 하며 만든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이상한 모습이 됐다.

“그걸 보면서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가야 할 길이 참 멀구나’라고 느꼈다. 타협의 정치를 하자고 도입했는데 비례 정당을 만들어 결국 양당제로 가려고 하니 참 안타깝다. 민주당도 비례 정당을 만들려 한다는 보도가 있던데, 안 만들었으면 좋겠다.”

이번 총선을 어떻게 전망하는가.

“선거는 흐름과 물결, 바람이 중요하다. 지금 코로나19 사태가 어떤 변화를 가져다줄지 아무도 모른다. 문재인 정부의 실정은 회복할 길이 없다. 하지만 미래통합당을 국민들이 믿고 맡길 만한 정당으로 보는지 모르겠다. 결국 중간지대가 넓어질 수밖에 없다는 건데, 그래서 내가 호남 3당이 통합해선 안 된다고 한 거다. 청년세대를 결합시키려 한 것도 그런 이유고.”

현실정치에 대한 기대는 접은 건가.

“그렇진 않다. 호남 의원들의 에너지를 모아야지. 포기한 건 아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민생당 지지율이 워낙 낮다. 수도권에는 국회의원 하나 없다. 주변에서 어디 나가라, 비례라도 나가서 존재감을 보여주라 하는데, 솔직히 내가 뭘 하겠다는 생각은 없다. 다만 민생당이 의미 있는 선거를 하는 데 무슨 역할을 맡아야 할지 생각하고는 있다.”

총선 연기론을 언급했다.

“이래 가지고 선거가 제대로 될까. 선거는 국민의 참여를 전제로 하는데, 참여가 불가능해진 상태다. 6월 개원을 목표로 선거일을 뒤로 늦추는 것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손학규 전 바른미래당 대표가 2월24일 국회에서 퇴임 기자회견을 마친 뒤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손학규 전 바른미래당 대표가 2월24일 국회에서 퇴임 기자회견을 마친 뒤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청년정치 세력, 너무 무리한 요구해 연대 깨졌다”

손학규 전 바른미래당 대표는 대표직에서 물러나기 전까지 언론에 나와 신진정치 세력과의 연대를 강조했다. 이날 인터뷰에서도 손 전 대표는 ‘시대전환’(이원재, 조정훈 공동대표)과의 통합 준비를 인정했다. 통합 후 시대전환 쪽에 당 대표까지 양보하는 방안도 모색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뜻을 펼치진 못했다. 왜 그랬을까.

손 전 대표는 “2월18일 아침 시대전환 쪽에서 ‘비대위 대표와 위원회 구성 전권을 달라’면서 그러지 못하면 같이하기 힘들다고 해 결국 깨졌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손 전 대표는 “나 혼자만 생각하면 시대전환 요구를 들어줄 수 있었지만, 당직자와 전국 지역위원장, 당원들 입장까지 고려하면 시대전환의 요구는 너무 과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시대전환으로 대표되는 정치 세력과의 연대를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인터뷰 내내 여러 차례 강조했다. 손 전 대표는 “이번 총선의 중요 과제는 정치구조 개혁과 세대교체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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