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국가보다 국민
  • 소종섭 편집국장 (jongseop1@naver.com)
  • 승인 2020.03.02 09:00
  • 호수 1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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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가 일상화했습니다. 불안한 나날이 계속됩니다. 약속이 속속 취소됩니다. 출퇴근 지하철엔 사람이 확 줄었습니다. 퇴근길에 들른 국밥집은 텅 비었습니다. 거리에서는 마스크를 하지 않은 사람을 보기 힘듭니다. 마스크를 사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은 전율마저 느끼게 합니다. 박물관들은 문을 닫았고 공연장의 불은 꺼져 있습니다. 경제의 활력은 꺼졌고 자영업은 붕괴 직전입니다. 2020년 초입에 위기를 맞은 대한민국의 풍경입니다.

‘띵동~’ 카톡이 옵니다. 주변 지인이 보내온 ‘확진자 동선’ 안내입니다. 카톡을 뚫어져라 살펴봅니다. 혹시 나와 관련 있는 곳이 있는지 한 곳 한 곳 기억을 떠올립니다. ‘띵동~’ 카톡이 또 옵니다. 이번엔 주변 병원이 보낸 안내문자네요. ‘코로나19 확진자가 본 병원을 방문한 것으로 질병관리본부에서 통보 받았습니다. 문을 닫고 소독에~’ 정신이 번쩍 듭니다. ‘나도 며칠 전에 갔던 곳인데 괜찮을까’ 하는 불안이 엄습합니다. 1339에 전화를 해야 하나, 선별진료소를 가봐야 하나 따위 온갖 생각이 머릿속에서 왕복달리기를 합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일단 저녁 약속부터 취소합니다. 2020년 초입, 불안에 젖은 일상의 풍경입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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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만에 국가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합니다. 지도자의 역할은 어떠해야 하는가도 곱씹습니다. 정치의 본질에 대해서도 되돌아보게 됩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당당해야 합니다. 격을 지켜야 합니다. 상대가 미국이든 중국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지도자의 말 한마디는 국가 전체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희망을 사실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신중하고 정제된 메시지를 내야 합니다. 상대방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하는 정치는 이제 끝내야 합니다. 부귀영화는 부질없고 권력은 언젠가 끝이 납니다. 잘못한 것은 진솔하게 인정하고 겸손해야 합니다. 실질을 숭상해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국가적인 위기에서 빛난 것은 민간이었습니다. 국가가 아니었습니다. 임진왜란 때 선조 임금은 평안도 의주까지 피난을 갔습니다. 여차하면 중국(명나라)으로 갈 태세였죠.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나 왜군에 대항했습니다. 한국전쟁 때는 이승만 대통령이 서울 시민들을 버려둔 채 본인만 한강을 건넜습니다. ‘국군이 잘 싸우고 있다’는 거짓 방송을 하도록 하고 말이죠. 낙동강 전선에서 얼마나 많은 학도병들이 목숨을 나라에 바쳤습니까. 외환위기 때는 또 어땠습니까. 국민들이 결혼반지, 돌반지를 모아 위기를 넘겼습니다. 우리는 저력이 있는 국민입니다.

새로운 형태의 국난인 코로나19 사태에서도 민간이 빛이 납니다. 마스크는 살 수 없고 치료를 받지 못해 환자가 죽는 상황이니 국가가 희망을 주지 못합니다. 의료인들 수백 명은 자발적으로 대구로 모여듭니다. 시민들은 어려운 자영업자들을 찾아 돕습니다. 대기업들은 성금과 물품을 모아 지원합니다. 개인들은 모임을 취소하고 위생 관리에 힙씁니다. 국가보다 국민이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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