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원이라는 애달픈 소년의 목소리, 전 국민 울렸다
  • 하재근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3.01 11:00
  • 호수 1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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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살 소년이 트로트에 마음을 빼앗긴 이유

TV조선 《미스터트롯》이 《미스트롯》 이상의 신드롬을 일으키며 잇따라 스타들을 탄생시키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임영웅, 이찬원, 김호중, 정동원이 ‘4대 핫스타’라 할 만한데,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열네 살 정동원이 이 자리까지 올라 눈길을 끈다.

기존에도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아동 출연자가 화제를 모으는 경우는 많았다. 귀엽고 순수한 모습 그 자체가 사랑스럽고, 어른도 마이크를 든 손을 떨며 음이탈 사고를 내는 무대에서 어린아이가 의연하게 노래하는 모습은 감탄을 자아낸다. 아이가 어른 수준의 가창력을 보여줄 때 시청자가 느끼는 ‘경이’의 감정이 있다. 그래서 오디션 초반에 아동 출연자가 화제의 중심에 서곤 했다. 이번 《미스터트롯》에서도 홍잠언 등 깜찍한 어린이들이 트로트 신동이란 간판으로 등장해 크게 사랑받았다.

ⓒTV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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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던 恨도 생기겠어”

하지만 오디션 아동 도전자들은 예선을 거쳐 본선 무대들을 소화하면서 차츰 아쉬움을 드러냈다. 처음엔 완벽한 가창력 같은 느낌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지만, 그건 미숙한 아이의 모습에서 뿜어져 나오는 실력이 사람들을 경악시키면서 착시효과가 나타난 측면이 있다. 회가 거듭되면서 경탄은 줄어들고 좀 더 냉정한 시선으로 평가하게 된다. 또 처음엔 스스로 골라 완벽하게 준비한 노래로 도전하지만, 오디션 미션이 거듭되면서 다양하게 주어지는 노래와 동료와의 조합을 짧은 시간 안에 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아이로서는 역부족일 수 있다. 노래에 인생 희로애락의 감정을 담는 것도 미숙하다. 이런 이유로 초반의 어린이 스타들이 본선에 이르러 하나둘 정리되고 결국 성인들의 대결로 압축되는 것이 그동안 오디션의 패턴이었다.

바로 그래서 정동원이 중반을 넘어 후반으로 치닫는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이 놀랍다. 단지 살아남은 수준이 아니라 심지어 4대 스타 반열에까지 올랐다. 여러 미션을 거치며 탈락 위기를 이겨내는 것은 아이의 귀여움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진짜 실력이 뒷받침됐을 때만 가능한 이야기다. 또 언제나 투표에서 우위를 점할 만큼 관전자로부터 지지를 끌어내는 힘이 강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미스터트롯》은 정동원의 노래에 눈물짓는 관객을 보여주며 “없던 한도 생기겠어”라는 자막을 내보냈다. 바로 이것이 정동원 가창력의 핵심을 말해 준다. 구슬프다. 애달프다. 이 아이의 목소리에선 한이 느껴진다. 정동원이 임영웅과 더불어 정통 트로트 애수의 정서를 가장 잘 전달해 주는 《미스터트롯》의 도전자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정동원은 변성기 전이어서 목소리가 낭랑하고 청아하다. 성인 트로트 가수들의 탁성과 대비된다. 그런데 트로트 초창기 시대에 사랑받았던 남성 트로트 가수의 목소리가 바로 낭랑한 미성이었다. 정동원이 전해 주는 구슬픈 정조와 더불어 그 미성이 정통 트로트를 떠올리게 하는 이유다. 《미스트롯》 당시 송가인이 한 서린 정통 트로트로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미스터트롯》에선 정동원이 그런 셈인데, 어린아이가 그렇게 깊은 가창을 선보이는 것에 대한 경탄까지 덧붙여져 중노년층의 반응이 뜨겁다.

정동원의 구슬픈 정조는 첫 곡인 《보릿고개》에서부터 나타났다. 대선배 진성은 눈물을 흘렸고, 김준수는 “갑자기 왜 울컥하지?”라고 했다. 이 노래 영상은 380만 조회 수를 넘겼다. 1:1 데스매치에선 먼저 나선 남승민이 CD와도 같은 완벽한 가창력을 과시해 정동원의 탈락을 예감하게 했다. 하지만 무대에 오른 정동원이 능숙한 색소폰 연주를 선보여 음악적 내공이 심상치 않음을 보여줬다. 이 대목에서 정동원을 그저 귀여운 프로그램 마스코트 정도로 바라봤던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졌다. 그리고 이어진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 CD 같은 가창력 이상의 애달픈 감동을 전해 주며 무려 10:1로 다음 회에 진출했다. 이변의 시작이었다.

팀 미션 메들리에서 정동원은 가창력으로는 최고 반열인 김호중, 록밴드 보컬 출신인 베테랑 고재근, 최고 인기를 누리는 젊은 스타 이찬원과 한 팀이 됐다. 놀라운 건 정동원의 목소리가 여기서도 들렸다는 점이다. 이 정도 팀원이면 아이의 목소리가 묻혀도 이상하지 않은데, 정동원의 목소리가 그 틈을 비집고 나왔을 뿐만 아니라 솔로곡 《청춘》으로 감동적인 순간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리고 이어진 마지막 곡 《희망가》가 대한민국 오디션 사상 최고의 순간 중 하나로 기억될 장면을 연출했다. 시청자를 눈물의 도가니에 빠뜨린 이 노래에서, 마지막 순간 사람들 가슴에 비수처럼 꽂힌 것이 바로 정동원의 목소리였다. 갑자기 잦아든 반주 속에 이 소년은 주눅 들지 않고 혼자만의 가창으로 대미를 장식했다.

ⓒTV조선

처연한 호소력으로 심금 울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소원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아이에게 어울리는 가사는 아니다. 하지만 정동원의 목소리는 그 어떤 성인의 목소리보다 더 이 노래의 회한 어린 정조를 듣는 이의 가슴에(귀가 아니다) 저미도록 전해 줬다. 세상의 때가 타지 않은 순수한 아이의 목소리라서 오히려 더 폐부를 찌르며, 자신을 반추하게 만드는 일성이었다. 바로 이 순간에 정동원은 초반의 귀여운 분위기 메이커에서 우승 후보 중 1인으로 격상됐다.

정동원 가창력의 바탕은 정확함과 정직함이다. 음정, 박자가 정확하다. 그리고 쓸데없는 잔재주와 기교를 부리지 않는다. 이것이 낭랑한 목소리와 어우러져 순수한 느낌을 강화한다. 장민호는 “너무 정확하잖아. 어른처럼 멋 안 부리고”라고 했다. 여기에 호소력으로 결정타를 날린다. 심금을 울리는 처연한 호소력이다. 이 부분에서 CD 같은 정확함을 뛰어넘는다. 정확함과 청아함이 마음을 정화시키고 호소력이 감동을 끌어내는 구도다. 영탁은 “애가 어떻게 (이렇게) 슬프게 부르냐”라고 했다. 아이가 알 수 없는 어른들 인생의 가사인데도 그 정조를 자기 식으로 받아들여 다시 듣는 이에게 전달하는 힘이 있다. 어린 나이에 이런 능력은 노력만으로 생기는 게 아니다. 주현미는 한마디로 “타고났다”고 했다.

무엇보다 떨지 않는다. 마치 무대의 중압감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홀로 무중력의 세계를 활보하는 듯하다. 설운도는 “어린애가 간도 크다. 저 나이 애들이 큰 무대 서면 벌벌 떠는데, 보통 놈이 아니다”고 했다. 이런 부분이 시청자를 경이롭게 한다.

게다가 성장하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 출연하는 중에 몸도 컸고(4cm), 가창력도 단단해졌다. 이런 성장의 서사는 더욱 시청자를 몰입하게 한다. 여기에 귀여우면서도 의젓한 외모, 천진난만한 행동의 매력이 더해졌다. 무대에서 몰입할 때면 세상 단맛, 쓴맛 다 겪은 사람처럼 깊은 가창을 보여주다가도 대기실에선 형들과 장난치는 아이의 모습 그 자체다. 이 해맑음이 시청자를 무장해제시킨다. ‘트롯 왕세자’ ‘하동 프린스’ ‘갓기(god+아기)’ 같은 시청자의 애정 어린 별명들이 그래서 나왔다.

그런데 음악적인 아이디어와 소신이 심상치 않다. 쟁쟁한 선배들과 함께 한 팀 미션에서 주제를 ‘청춘’으로 하자는 아이디어를 자신이 냈다. 그러면서 몇 곡을 선곡했고 그대로 무대에 반영됐다. 14세 아이면 보통 어른들이 하자는 대로 따르면서 시키는 대목만 부를 것 같은데, 본인이 음악적 리더십을 보인 것이다. 음악적 성숙함도 놀랍고, 그런 아이디어를 속으로 삭이지 않고 표출할 수 있는 배포도 놀랍다. 그만큼 음악에 몰입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태도일 것이다. 남진은 “나이만 어리지 우리보다 머릿속에 음악이 더 꽉 차 있다. 노래만 부르는 게 아니라 음악적인 실력을 저 나이에 맞지 않게 딱 갖췄다”고 했다.

2019년 9월 KBS 《인간극장》은 정동원이 할아버지와 생활하는 사연을 방송했다.ⓒKBS
2019년 9월 KBS 《인간극장》은 정동원이 할아버지와 생활하는 사연을 방송했다.ⓒKBS
2019년 9월 KBS 《인간극장》은 정동원이 할아버지와 생활하는 사연을 방송했다.ⓒKBS
정동원은 실력과 배포, 음악적 ‘리더십’까지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TV조선

키워준 할아버지 작고한 스토리까지 더해져 애틋함 절정

여기에 인간적인 스토리가 더해진다. 정동원과 할아버지의 이야기다. 정동원이 세 살 때 부모님이 이혼했다. 바쁜 아버지 대신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정동원을 키웠다. 할머니는 식당일을 했기 때문에 특히 할아버지가 정동원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 부모와 떨어진 정동원은 마음의 문을 닫았다. 어린 나이에 겪은 이런 풍파가 정동원 노래의 감정선을 깊게 했는지도 모른다.

어린 정동원은 할아버지가 부르는 트로트를 따라 부르며 밝아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손자를 위해 손수 연습실을 만들고 드럼과 색소폰을 사줬다. 정동원은 드럼이 세 번 부서질 때까지, 입술이 터져 피가 날 때까지 드럼과 색소폰을 연마했다.

할아버지는 손주 손을 붙잡고 지역 노래자랑을 찾았고, 내친김에 전국노래자랑까지 지원했다(2018년). 여기서 우수상을 받으며 정동원은 유튜브 스타가 된다. 2019년엔 SBS 《영재발굴단》에 트로트 신동으로 출연했고, 앨범 발매에 콘서트까지 하게 된다. 마침 트로트 가수로 활동하던 유산슬이 이 콘서트에 참여했고, 2019년 9월 KBS 《인간극장》에서 정동원의 사연이 소개됐다. 팬클럽까지 결성된 상태에서 마침내 올 1월 《미스터트롯》이 터진 것이다. 첫 방송에서 폐암 말기 판정을 받은 할아버지를 위해서 나왔다며 눈물지었는데 결국 본선 중에 할아버지가 작고하고 말았다. 이런 스토리가 인간적인 애틋함을 만들면서, 대중이 효심 깊고 외로워 보이는 소년을 밀어주고 싶도록 한다. 이 정도면 웬만한 실력에도 팬심이 생길 판인데 실력까지 역대급이니 열광이 나타나는 것이다. 장윤정은 “얘가 10년만 지나봐요. 어떻게 되겠어요?”라고 했다. 우린 지금 레전드의 탄생을 목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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