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규모 20조, 중고장터의 '이유 있는' 변신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0.03.05 10:00
  • 호수 1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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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보다 사용과 경험 중시하는 소비 트렌드 반영…중고나라·번개장터·당근마켓 등 중고 거래 플랫폼 ‘빅3’가 견인

‘중식 대가’ 이연복 셰프도 중고 거래를 한다. 이연복 셰프는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중고 거래를 해 본 적이 있다”면서 자신이 중고로 판매하고 싶은 물건들을 소개했다. 성능 테스트를 위해 밥솥으로 밥을 짓고, 커피머신을 판매하기 위해 기능도 점검한다. 중고 거래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저렴하게 내놓은 밥솥은 봉사활동에 사용하고 싶다는 구매자에게 성공적으로 거래됐다. 쌍둥이를 키우는 플로리스트 문정원은 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레고를 내놨다. 직거래를 통해 레고를 저렴하게 구입한 아이 아빠는 사진 후기를 남기며 구매를 ‘인증’했다.

최근 JTBC에서 방영되고 있는 《유랑마켓》 얘기다. 스타가 직접 자신의 중고 물품을 지역 주민들과 거래하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나의 ‘불필요’가 타인의 ‘필요’가 되는 중고 거래가, 이제는 TV 예능 프로그램의 주제로 등장할 정도로 자연스러운 트렌드가 됐다. 이렇게 중고 시장이 변했다. 벼룩시장 신문의 ‘팝니다’ 코너를 보고 물건을 사고, 벼룩장터가 열리는 분주한 곳에 가서 물건을 뒤적거리던 시대는 지났다. 발품을 팔지 않아도 된다. 오프라인으로 열리던 벼룩시장이 온라인과 모바일로 이동한 지금, 휴대전화만 있으면 집 안에서 선호하는 카테고리의 물품을 구경할 수 있고,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 채팅을 통해 대화할 수 있다. 거래는 가까운 위치에서 만나서 한다. 시간이 여의치 않으면 택배 거래도 가능하다.

당근마켓, 번개장터, 중고나라(왼쪽부터)는 대표적인 중고 거래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당근마켓, 번개장터, 중고나라(왼쪽부터)는 대표적인 중고 거래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중고 거래, 쇼핑 앱 시장 트렌드로 부상

시장조사기관 트렌드모니터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중고·리퍼 제품 구매’를 선호하는 소비자는 68.3%(복수응답)에 달했다. 지난해 말에는 방탄소년단 멤버 RM이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중고로 구입한 의류를 착용한 사진이 포착되면서 ‘똑똑한 소비’라며 이목을 끌기도 했다. 더 이상 중고 거래를 어색하게 생각하지 않는 소비 트렌드를 타고, 중고 거래 플랫폼 시장은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쇼핑 앱 시장의 새로운 트렌드가 된 중고 거래 플랫폼들은 이제 대형 이커머스 업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특히 대표적인 중고 거래 플랫폼 중고나라의 2019년 거래액은 3조5000억원에 달하고, 모바일 중고 마켓 번개장터의 거래액은 1조원을 넘어섰다. 모바일 중고 거래 시장에 혜성처럼 등장한 당근마켓의 지난해 거래액도 7000억원에 달한다. 개인 간 거래가 많은 중고 시장의 특성을 감안하면, 이 거래액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업계는 중고 시장 규모가 10조~20조원 이상으로 성장한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중고 거래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빅3’는 중고나라와 번개장터, 당근마켓이다.

각 플랫폼의 색깔도 각기 다르다. 중고나라의 시작은 네이버 카페였다. 2003년 이승우 중고나라 대표는 흩어져 있던 중고 거래 매물들을 판매자 허락을 받고 카페로 모았다. 현재 1800만 명의 회원을 둔 국내 최대 중고 거래 커뮤니티로 성장하기까지, 중고나라는 많은 변신을 꾀했다. 중고 거래를 통해 벌어지는 각종 사기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카페 운영만으로는 어렵다고 생각하고, 2014년 새롭게 법인을 설립한 것이다. 스타트업 형태로 전환한 중고나라는 IT 기술자들을 영입해 사기 이력을 조회할 수 있는 ‘사이버 캅’ 서비스를 선보였다. 스마트폰 이용자가 늘어나면서, 2016년에는 모바일 앱을 론칭했다. 그러면서 실명인증과 안전결제, 편의점 택배와 용달배송 등 안심하고 편리하게 중고 제품을 거래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중고나라의 특성은 회원이 곧 판매 채널이 된다는 것이다. 지난해 서비스를 도입한 ‘평화시장’은 개인이 중고나라 인증 셀러로 스스로 등록한 후 물건을 판매하는 플랫폼이다. 개인 물건뿐 아니라, 중고나라가 제공하는 물품을 셀러들이 직접 판매할 수 있다. 구매자들이 인증된 셀러를 통해 중고나라가 직접 발송하는 물건을 구입하면서 신뢰를 갖게 되고, 이로 인해 지속적인 거래가 가능도록 하는 것이 평화시장의 취지다.

JTBC 예능 프로그램 《유랑마켓》 ⓒJTBC 화면캡처
JTBC 예능 프로그램 《유랑마켓》 ⓒJTBC 화면캡처

‘슬세권’에 주목해 지역 기반 플랫폼 키워

《유랑마켓》에서 스타들이 중고 물품 직거래에 사용하는 앱인 당근마켓은 ‘지역’을 기반으로 성장한 플랫폼이다. IT와 벤처기업이 모인 판교에서 중고 물품을 거래할 수 있게 만든 ‘판교장터’라는 모바일 중고 물품 중개 앱이 그 시작이었다. 판교 주변의 기업을 대상으로 이메일 인증을 거친 직장인들 사이에 중고 물품이 활발하게 거래됐고, 지역 주민들의 니즈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2015년 10월 지금의 당근마켓이 됐다. ‘당신의 근처에서 만나는 마켓’이라는 이름이 의미하듯, 당근마켓의 거래는 철저하게 지역이 기반이 된다. 거주하거나 활동하는 지역에서 GPS를 통해 위치 인증을 받아야만 그 지역 판매자가 올린 물건을 구매할 수 있다.

지역 기반 플랫폼은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내놓은 《트렌드 코리아 2020》에서 2019년 10대 소비 트렌드로 꼽혔다. 불특정 다수가 아니라 동네에서 언제든 마주칠 수 있는 이웃이 거래 상대가 되기 때문에 사기 행위가 발생할 가능성이 줄어드는 데다, 오프라인 체험에 대한 니즈가 커지고 있는 것도 한몫했다는 것이다. 그 예로 든 것이 당근마켓의 직거래 서비스와 중고나라가 2019년 1월 론칭한 ‘우리동네’ 서비스다. 번개장터 역시 위치 정보를 바탕으로 동네에서 판매하는 제품을 볼 수 있는, 직거래에 특화된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슬리퍼를 끌고 나갈 수 있는 구역을 뜻하는 일명 ‘슬세권’에서의 직거래 방식은 쓸 만한 물건을 저렴하게 살 수 있다는 경제성이라는 장점과 더해져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중고 거래 플랫폼을 키웠다.

‘원스톱 서비스’를 자랑하는 번개장터는 2011년 만들어졌다. 물품 등록과 구매, 결제, 배송 등의 과정을 한 번에 할 수 있다는 것이 번개장터의 장점이다. 지금까지의 중고 거래 플랫폼이 단순히 판매자가 올린 제품을 구매자가 볼 수 있는 ‘장터’에 그쳤다면, ‘번개톡’을 이용해 거래하고 ‘번개페이’로 결제할 수 있는 번개장터는 그야말로 번개처럼 중고 거래를 할 수 있는 배경이 됐다. 모바일 앱이 본격적으로 성장한 시기, 모바일에 익숙한 10대와 20대 이용자의 이용률이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번개장터는 중고 거래 플랫폼을 웹에서 모바일로 옮긴 성공 사례로 기록됐다.

지난해 닐슨코리아가 발표한 조사 결과(2019년 4분기 기준)에 따르면 중고 거래 앱 5개 이용자는 총 531만 명으로, 2018년 292만 명에 비해 239만 명 늘었다. 개별 앱 이용자 수(중복응답)는 당근마켓이 404만 명으로 가장 많았고, 번개장터(127만 명), 중고나라 앱(67만 명)이 그 뒤를 이었다. 특히 번개장터는 Z세대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이 입증됐다. 번개장터는 20대들이 많이 쓰는 앱 10위, 10대들이 많이 쓰는 쇼핑 앱 3위에 올랐다. 장원귀 번개장터 대표는 “번개장터 이용자 대부분은 10대이고, 이들은 스타 굿즈(인기 스타와 관련한 상품) 거래를 선호한다”며 “번개장터는 모바일 퍼스트 세대와 함께 성장하는 차세대 중고 거래 플랫폼”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밀레니얼·Z세대 공략해 함께 성장

중고 거래 플랫폼의 성장이 공유경제의 성장과 궤를 같이한다는 분석도 있다. 최재원 다음소프트 이사가 이코노미 인사이트에 기고한 ‘빅데이터로 보는 경제’ 분석 결과에 따르면 ‘중고’에 대한 사람들의 부정적인 감성 추이는 2015년 45%에서 2018년 28%로 줄어들었고, 긍정적인 감성 추이는 55%에서 72%로 늘었다. 중고 제품의 수요가 늘어난다는 게 ‘쓰다가 되판다’는 의미가 있다는 것으로 볼 때, ‘소유’라는 개념보다 ‘빌려 쓴다’는 인식이 확대되고 있음을 뜻한다는 것이다.

김익성 한국유통학회장은 “과거에는 중고 제품을 사는 것은 부정적이란 인식이 강했다. 특히 ‘소유’를 가장 큰 가치로 뒀기 때문에 새 제품을 사는 것을 선호했고, 중고 거래를 할 수 있는 공간도 충분하지 않았다”며 “지금은 모바일 시대에 맞춰 다양한 중고 거래 플랫폼들이 생겼고, 밀레니얼과 Z세대는 소유보다 ‘사용’에 초점을 맞춘다. 필요하면 중고 제품을 구매하거나 쉐어링을 해서 사용하는 것에 거부감을 갖지 않고, 필요가 없어지면 판매하는 현명한 소비를 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중고 거래 플랫폼이 성장하면서 판매자와 구매자들의 수준도 높아졌다. 중고 거래 시장의 가장 큰 문제는 ‘불신’이었다. 연이어 일어나는 사기 사건에 대응하기 위해 중고 거래 플랫폼의 시스템도 변하고 있다. 과거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해 익명으로 가입해 글을 올릴 수 있었던 것과 달리, 휴대폰 번호를 인증해야 가입할 수 있고, 일명 ‘평판 관리’ 시스템도 등장했다. 당근마켓은 구매자가 상대방의 매너를 평가해 ‘매너 온도’를 조정할 수 있다. 평가가 좋을수록 온도가 높아지며, 나쁜 평가를 받게 될 경우에는 온도가 떨어진다. 다수에게 좋지 않은 평가를 받으면 일정 기간 활동이 정지되기도 한다. 구매자는 이 매너 온도를 보고 판매자의 신뢰도를 확인할 수 있다.

중고나라의 인증 셀러 역시 레벨과 별점, 단골 수를 조회할 수 있게 돼 있어 판매자 검증이 가능하다. 김익성 회장은 “소비 트렌드의 변화에 맞춰 중고 거래 플랫폼은 앞으로 더 커질 여지가 충분하다. 다만 제품에 대한 정보의 질이 담보돼야 하고, 사기 사건도 계속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중고 거래 플랫폼들이 성장하는 이 시점에 정확한 정보와 신뢰를 확보할 수 있는 시스템을 추가적으로 구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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