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는 이제 무용지물, 이미 애물단지가 됐다”
  • 세종취재본부 김상현 기자 (sisa411@sisajournal.com)
  • 승인 2020.02.28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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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원자력통제기술센터장 김병구 박사 인터뷰
처리 곤란 핵탄두, 유지관리 비용 때문에 구소련 붕괴 주장
국내 원전은 美 TMI 원전 사고 때 이미 안전 증명

베트남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이 끝난 후 1년이 지났음에도 북핵 문제에 대한 아무런 진전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남북의 관계는 껄끄러워졌고 유럽연합(EU)조차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북한의 핵실험, 핵무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은근슬쩍 함께 나오는 말이 한반도 핵무장론이다. 주로 보수진영에서 국가 안보를 이유로 '핵에는 핵'이라는 원칙으로 맞서자는 주장을 내세운다. 방식도 전술핵무기 재배치, 핵무기 탑재 잠수함 순항 가동 등 다양하다.

이러한 핵무장론에 대해 우리나라 원자력계 전문가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1975년부터 일평생을 원자력 발전을 위해 땀 흘린 원로 과학자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만난 김병구 박사는 미국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에서 학위를 마치고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 근무하다 한국원자력연구소(현 한국원자력연구원) 초대 수장이던 윤용구 박사의 권유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후 영광 3·4호기 원자로 설계 사업책임자, 원자력통제기술센터(TCNC, 현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 초대 센터장, IAEA 유럽, 아시아/태평양 기술협력국장, 사우디아라비아 원자력·재생에너지청 원자력 고문관 등을 지냈다. 얼마 전에는 동료 원자력 원로들(장인순, 전재풍, 박현수, 이재설)과 함께 한국 원자력 발전 역사를 다룬 《아톰 할배들의 원자력 60년 이야기》라는 책을 출간하고 전국을 돌며 우리나라 원자력 역사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김병구 박사는 1975년부터 한국원자력발전을 위해 일해온 대표적 원자력계 원로 과학자다.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
김병구 박사는 1975년부터 한국원자력발전을 위해 일해온 대표적 원자력계 원로 과학자다.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

핵무기 소유는 이제 쓸데없는 국력 낭비일 뿐이다

"지금 시대에 핵무기는 무용지물입니다. 각 나라에서 애물단지가 됐어요."

단호하다. 핵무기를 만들었지만 함께 멸망할 것을 뻔히 알면서 사용하진 못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것 자체가 국력 낭비다.

우리나라도 1970년대 초반에는 핵무기 개발을 준비했다. 김 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지금 대덕에 있는 한국원자력연구원도 애당초 핵무기 개발을 위한 시설이었다. 박정희 정권 당시 서울 공릉 연구소에서는 원자력 발전 관련 연구를, 그리고 대덕 연구소에서는 핵무기 개발을 도모했다.

하지만 1970년 핵확산방지조약(NPT)가 발효되고 국제 사회의 압박이 가해지면서 정부가 고민하기 시작한다. 결국 박 대통령은 1975년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고 NPT 정식 비준국 등록을 결정한다. 대덕 연구소도 핵무기 연구를 포기하고 원자력 발전과 안전 등에 대한 연구로 돌아선다.

"사실 핵무기보다 원전을 만들고 돌리는 것이 훨씬 더 고차원적인 기술입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는 애초부터 핵무기에 손을 대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같은 경제 발전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핵무기를 고집한 북한은 굶어 죽기 직전 아닙니까?"

구소련의 붕괴도 핵무기와 관련 있다고 보는 것이 김 박사의 시각이다. "1970년대, 냉전이 극에 달했을 때 핵탄두가 소련에 2만 개, 미국이 수천 개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라며 "단 한 개만 있어도 유지가 어려운 핵탄두를 그렇게 많이 가지고 있는데 문제가 없을 수 없다"라고 설명했다.

핵탄두는 해체가 어렵다. 버릴 곳도 없다. 만에 하나 테러나 사고로 국내에서 터지거나 탈취라도 당한다면 심각해진다. 그러므로 유지관리에 많은 비용을 쏟아 부어야 한다. 김 박사가 애물단지라고 표현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러시아, 미국 모두 지금은 핵탄두를 줄여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국제적으로 핵무기를 범죄로 인식하고 있죠. 프란치스코 교황이 일본 나가사키에 방문해 헌화한 것만 봐도 세계의 인식 변화를 느낄 수 있지 않습니까?"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해 11월 일본 나가사키 폭심지 공원을 직접 찾아 헌화하고 "핵무기가 없는 세계가 가능하고 필요하다는 것을 확신하자"는 메시지를 발표했다. 김 박사는 "신사(神社)의 나라 일본에 교황이 방문한다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이벤트인 만큼 비핵화에 대한 세계적인 요구가 강해진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우리나라 원자력 발전소는 이미 검증된 안전한 원자로 사용

하지만, 현 정권이 벌이고 있는 탈원전 정책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표현했다.

"일본 후쿠시마에서 큰 사고가 터지고 나니까 원전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데, 오히려 우리는 행운아들입니다. 왜냐면 이미 1980년대 원전 표준화를 통해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원전을 선택했으니까요."

저서 '아톰 할배들의 원자력 60년 이야기'를 펼쳐 보여주는 김병수 박사. 이 책에는 우리나라 원자력 60년 역사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담겨있다.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
저서 '아톰 할배들의 원자력 60년 이야기'를 펼쳐 보여주는 김병수 박사. 이 책에는 우리나라 원자력 60년 역사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담겨있다.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

1980년대 우리나라는 기술 축적과 관련 산업 부흥을 위해 국내 건설 원전을 표준화하기로 한다. 그렇게 결정한 것이 가압경수로(PWR)다. 1986년 체르노빌 사고가 일어나자 세계 각국에 탈원전 기조가 일어났다. 때마침 영광 3·4호기 건설을 준비하는 우리나라는 해외 원전 업체들과 협상에 유리해졌다. 덕분에 우리는 당시 국가 기밀로 여기던 원자로 핵심 기술을 100% 이전받는 행운을 얻을 수 있었다.

이후 우리나라는 다른 형식의 원자로를 건들지 않고 가압경수로만 건설했다. 김 박사는 "지금 돌이켜보면 그게 큰 행운이었다"라고 평가한다. 가압경수로가 현 시대 가장 안전한 원자로이기 때문이다.

김 박사는 가압경수로의 안전을 미국 스리마일섬 원자력 발전소 사고(TMI 원전 사고) 사례로 증명한다. 1979년 3월 미국 도핀 카운티의 서스쿼해나 강 가운데 있는 스리마일섬 원자력 발전소 2호기에서 노심 용해 사고가 일어났다. 이 사건은 아직도 미국 원자력산업 역사상 가장 심각한 사고로 평가한다.

"그때 사고난 2호기가 가압경수로입니다. 사고 난 지 40년이 지났지만, 방사성물질에 대한 피해 보고가 없습니다. 인명피해도 없습니다. 1m 두께의 격납 용기 덕분에 발전소 부근에서 받은 피폭선량이라고 해봐야 엑스레이 2~3번 찍은 정도였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사용하는 가압경수로는 그보다 더 발전한 가압경수로 타입이다. 그럼에도 탈원전을 주장하는 정권 인사들은 전문가의 의견을 너무 무시하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원전은 설계부터 제작, 관리, 보수까지 함께하는 기업이 700여 개, 관련 종사자가 3만여 명입니다. 기술도 전부 국산화돼 있어서 수출까지 하고 있죠. 자연에너지라고 해도 태양광 패널 전부 중국산이고 LPG 가스는 전량 수입해 쓰고 있습니다. 이건 국부가 달린 문제입니다."

김 박사는 현 상황에 대해 "선배로서 안타깝다"며 "원자력에 대한 정확한 사실을 후배들에게 제대로 알려주고 싶다"고 당부했다. "우리나라의 원자력 기술이 어떻게 세계적 수준이 됐는지 제대로 알고 반대를 하더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희망도 함께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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