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작가부터 판사까지…‘드라마 新작가’ 전성시대
  • 정덕현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3.07 14:00
  • 호수 158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다양한 직업군 작가들과 협업 “리얼리티 살려라”

최근 종영한 tvN 《사랑의 불시착》은 로맨틱 코미디 장르지만 북한을 소재로 했다는 데서 주목을 끌었다. 즉 사랑하는 남녀와 그 사랑을 막는 걸림돌로서 남북 간의 분단 상황을 끌어들이면서 색다른 로맨틱 코미디의 이야기를 그려냈던 점이 이 드라마가 무려 21.6%(닐슨코리아)라는 tvN 사상 최고 시청률로 종영하게 된 중요한 요인으로 해석된다.

당초 이 드라마는 초반에 돌풍을 타고 북한에 불시착해 벌어지는 좌충우돌 로맨틱 코미디라는 과감한(?) 설정으로 자칫 ‘황당한 이야기’로 보일 수 있는 약점이 존재했다. 그렇지만 그 약점을 넘어설 수 있게 해 준 건 다름 아닌 철저한 고증이었다.

《사랑의 불시착》은 물론 드라마적 판타지가 코믹하게 그려진 작품이지만, 이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북한의 모습에 있어서는 리얼리티를 추구한 작품이었다. 우리가 막연히 뉴스 정도를 통해 알고 있는 모습과는 사뭇 다른 북한의 실상이 리얼하게 담겼다. 사투리 등도 철저한 고증을 거쳤다는 점 역시 높이 평가됐다. 탈북자들이 유튜브 등을 통해 이 드라마의 “고증이 장난이 아니다”는 이야기를 내놓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런 리얼리티를 담을 수 있었던 건 박지은 작가의 철저한 사전 취재와 백경윤 북한말 전문가를 통한 자문 등이 바탕이 된 것이지만, 보조작가로 탈북자 출신 곽문안 작가가 참여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처럼 최근 드라마 작가군은 보다 높은 리얼리티를 요구하는 시청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보다 다양한 직업들을 끌어들이는 중이다.

《사랑의 불시착》 ⓒ
《사랑의 불시착》 ⓒtvN

《사랑의 불시착》의 철저한 고증 비결

이런 변화는 이미 2018년 JTBC 《미스 함무라비》를 문유석 전 판사가 직접 대본을 쓰면서 그 징후를 보인 바 있다. 동명의 소설을 쓴 문 전 판사는 이미 《개인주의자 선언》이라는 에세이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최근 판사직을 내려놨지만 판사 경험이 그의 저서에 고스란히 녹아들면서 독자들을 팬으로 만들었다. 그는 《미스 함무라비》의 경우 애초 드라마 집필 자체가 낯선 세계라 직접 드라마 작가로 나서는 일을 꺼렸다고 한다. 하지만 이 드라마 연출자인 곽정환 감독이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해 드라마 작가로 데뷔하게 됐다. 《미스 함무라비》는 다소 드라마적인 극적 요소들은 적었지만 무엇보다 실제 현실 경험에서 우러나는 리얼한 판사들의 이야기로 시청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얻었다.

《미스 함무라비》
《미스 함무라비》 ⓒJTBC
《이태원 클라쓰》 ⓒJTBC
《블랙독》 ⓒtvN

최근 종영한 tvN 《블랙독》 역시 기간제 교사 경험을 실제로 2년간 했던 박주연 작가가 쓴 작품이었다. 역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밀도 있는 리얼리티로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우리가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교사들의 세계가 생각보다 녹록지 않다는 걸 충분한 경험치를 녹여내며 담아냈다. 또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아이들의 입시교육이 가진 여러 문제들을 작품을 통해 끄집어냈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블랙독》을 ‘교사판 미생’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영화 같은 드라마와 밀접한 연관을 가진 장르로부터 드라마 작가로 영역을 넓히는 사례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애니메이션 《서울역》과 영화 《부산행》의 감독으로 유명한 연상호 감독이 작가로 데뷔한 tvN 《방법》이 대표 사례다. 최근 들어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같은 새로운 플랫폼들의 등장으로 영화와 드라마는 그 경계가 점점 사라지는 추세다. 그래서 영화 인력들이 드라마 제작에 진출하는 일은 낯설지 않게 됐다. 하지만 연 감독은 드라마 진출을 작가로서 시작하는 새로운 길을 열었다. 감독 특유의 연출적 시각은 대본에도 효과적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태원 클라쓰》 ⓒJTBC
《방법》 ⓒtvN
《이태원 클라쓰》 ⓒJTBC
《이태원 클라쓰》 ⓒJTBC

리얼리티 담보하자 달라지는 드라마들

웹툰 역시 드라마나 영화 같은 영상 콘텐츠의 원작으로 점점 입지를 마련하고 있어 이 분야에서 드라마 작가로 진출하는 사례도 생기고 있다. 동명의 유명 웹툰 원작을 드라마화한 《이태원 클라쓰》의 대본을 원작자인 광진이 쓴 건 단적인 사례다. 그간 웹툰 원작의 드라마화는 또 다른 드라마 작가가 투입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원작을 가장 잘 아는 원작자가 직접 드라마 리메이크를 하면서 원작의 색깔을 잘 살려내면서도 드라마에 알맞은 변형을 하고 있다는 점은 눈에 띄는 대목이다. 광진 작가의 경우는 향후 웹툰 원작자들의 드라마 작가 진출이 많아질 걸 예상하게 만드는 중요한 사례가 되고 있다.

최근 종영한 JTBC 《검사내전》 같은 경우 에세이 원작을 바탕으로 하는 또 다른 리메이크 드라마의 가능성을 열었다고 평가될 수 있는 작품이다. 현업에서 일했던 김웅 검사가 쓴 동명의 에세이를 바탕으로 리얼리티 있는 소재를 가져와 박연선 작가가 크리에이터로 참여하고 서자연, 이현 작가가 드라마를 집필했다. 기존의 영역을 초월한 새로운 방식의 협업으로 드라마의 새로운 제작 형태를 보여준 작품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직접 드라마 제작에 참여한 건 아니지만 이런 타 분야 종사자들이 간접적으로 참여하는 리메이크는 앞으로 점점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검사내전》
《검사내전》 ⓒJTBC

최근 드라마들은 보다 디테일한 리얼리티를 요구받기 시작했다. 따라서 해당 직업군을 경험했거나 현직으로 갖고 있는 이들이 드라마 작가라는 새로운 세계로 들어오고 있다. 물론 드라마 작가는 ‘드라마타이즈’로 불리는 작법(한 편의 드라마처럼 만드는 것)이 필수적이지만, 리얼리티를 가진 이야기 소재들이 근간이 되지 않으면 일종의 ‘드라마 게임’에 머무르게 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OTT를 통해 해외의 철저한 현실 고증을 거친 드라마들을 접하게 된 시청자들은 ‘무늬만 전문직’을 내세워 적당히 극적으로 담아내는 드라마들을 식상해하기 시작했다. 오히려 다소 드라마틱한 요소들은 적다 하더라도 실제 현실 자체가 주는 심지어 ‘다큐적인’ 스토리에 더 몰입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래서 최근에는 하나의 작품을 쓰는 데 ‘드라마타이즈’하는 시간보다 철저한 사전 취재와 고증을 거치는 시간이 훨씬 많이 든다고 작가들을 말한다.

이런 변화 속에서 타 직업군 종사자들은 드라마 작가라는 새로운 기회를 갖게 됐다. 그리고 이들의 참여는 우리네 드라마에 훨씬 더 치밀한 리얼리티를 더해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