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진영 장관, 리스계약 안 끝난 전용차를 1억원대 제네시스로 교체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0.03.11 10:00
  • 호수 1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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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행정기관 전용차 100대 전수조사…행안부 “차가 재난현장 돌아다녀 잘 안 나가 바꿨다”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의 전용차(專用車)는 국내 최고급 대형 세단인 제네시스 G90이다. 가격은 1억원대에 달한다. 이 차량의 교체 과정이 석연치 않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전 차량과 3년 리스 계약을 맺었는데, 기간 만료 전에 바꾼 것이다. 더군다나 이전 차량은 무상 보증 주행거리를 절반도 채우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시사저널은 2월 초 기준 중앙행정기관 50곳에서 보유한 전용차 100대를 전수 공개 청구해 분석했다. 전용차는 장관이나 차관, 또는 각급에 해당하는 공무원에게 배정된다. 의전용이나 업무용과는 별도로 분류∙관리된다.

이 가운데 진 장관의 전용차는 G90 중에서도 최상위 모델인 ‘3.8 프레스티지’다. 배기량 3778cc에 최대출력은 300마력이 넘는다. 공식 판매가는 1억1200만원. 국내 시판 중인 국산차 중 ‘G90L(1억2100만원)’과 ‘G90 3.3 가솔린 터보 AWD 프레스티지(1억1600만원)’에 이어 세 번째로 비싸다.

진 장관의 전용차는 지난해 6월 사용 등록됐다. 그가 취임한 지 2개월 뒤다. 전임 장관인 김부겸 의원이 타던 전용차는 2017년 1월 임차(리스)한 제네시스 EQ900 3.8이었다. 2년5개월 만에 새 차로 바꾼 것이다.

행안부 운영지원과 관계자는 “(전임 장관 전용차는) 3년 임차계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계약 만료까지는 7개월을 남겨둔 상황이었다. 교체 이유에 대해 관계자는 “국민안전처(2017년 7월 행안부에 흡수) 장관이 재난 현장에 타고 다니던 차를 행안부 장관이 이어 타게 돼 (차가) 잘 안 나갔다”고 해명했다.

1월30일 진영 행안부 장관이 충남 아산시 초사동에서 주민대표와 대화를 나누고 차에 탔다. 해당 차량은 장관 전용차가 아닌 업무용 승합차로 추측된다. ⓒ연합뉴스
1월30일 진영 행안부 장관이 충남 아산시 초사동에서 주민대표와 대화를 나누고 차에 탔다. 해당 차량은 장관 전용차가 아닌 업무용 승합차로 추측된다. ⓒ연합뉴스

행안부, “차가 잘 안 나가 바꿨다”

행안부 재난연감에 따르면, 박인용 전 국민안전처 장관이 EQ900을 타고 다녔던 2017년 1~7월 사회재난은 총 14건 발생했다. 사회재난이란 중앙정부나 지자체가 안전대책본부를 운영할 만큼 피해가 큰 재난을 뜻한다. 이 가운데 주변 노면 상태가 나쁠 것으로 추정되는 화재 사건은 8건이었다. 그리고 언론 보도로 확인된, 박 전 장관이 들른 재난 현장은 2곳 정도였다. 2017년 3월 수산시장 화재가 일어난 인천과 그해 5월 산불이 번진 강원도 등이다.

EQ900을 교체할 당시 주행거리는 약 4만~5만km였다고 한다. 이는 해당 차량의 무상 보증구간인 12만km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공용차량 관리규정도 12만km를 전용차 교체 기준으로 삼고 있다. 박병일 자동차 명장은 “요즘 차량은 내부 부식에 강해 연식보다는 주행거리를 기준으로 상태를 따진다”며 “5만km를 뛰었다면 사람으로 치면 20대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박 명장은 “중고시장에 내놓아도 새 차 취급을 받을 텐데, 정부가 아닌 개인이라면 자기 돈 주고 절대 안 바꿀 것”이라고 꼬집었다.

EQ900의 임차 방식인 리스는 중간에 차량을 반납할 경우 중도해지 수수료를 내야 한다. 한 자동차 매매업체 관계자는 “개인사업자의 경우 리스가 절세 차원에서 유리하지만, 정부가 짧은 기간 리스로 차를 쓴다는 건 국민 세금을 눈먼 돈으로 보는 낭비 행위”라고 지적했다.

3월3일 정부서울청사 주차장에 중앙행정부처 전용차량들이 출입하고 있다. ⓒ시사저널 고성준
3월3일 정부서울청사 주차장에 중앙행정부처 전용차량들이 출입하고 있다. ⓒ시사저널 고성준

“국민 세금을 눈먼 돈으로 보는 낭비”

국민권익위원회는 2012년 “임차 기간을 단기(2~3년)로 계약해 운영하는 경우 구매에 비해 예산 낭비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단위 기간당 리스료나 렌털비가 구매 할부금보다 비싸기 때문이다.

임차의 맹점은 또 있다. 임차계약 기간만큼 차를 타고 돌려주면 되기 때문에 운행연한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물품관리법에 따르면 구매한 전용차는 교체 기준(주행거리 12만km)을 초과해도 운행한 지 9년이 안 되면 못 바꾼다. 행안부 협업정책과 관계자는 “규정상 운행연한은 차량을 구매했을 때만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행안부 스스로도 일부 지자체장을 향해 “2~3년 운행한 차량을 부단체장 또는 의전용으로 전환하고 신차를 구입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2008년 발표한 ‘지방자치단체 관용차량 관리·운영 개선 방안’을 통해서다. 그런데 비슷한 일이 지금 행안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이 밖에 시사저널 입수자료에 따르면 중앙행정기관 51곳 중 차관(급)이 G90을 타는 곳은 행안부와 국무조정실 등 단 2곳이었다. 실무를 담당하는 행정 각부만 따지면 사실상 행안부가 유일하다. 윤종인 행안부 차관과 김계조 행안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차관급)은 모두 G90 3.3 프리미엄 럭셔리를 타고 있다. 가격은 9750만원이다.

한편 정보공개를 청구한 중앙행정기관 50곳 중 대통령경호처와 대통령비서실 등 2곳은 자료를 공개하지 않았다. 보안상 이유였다.

 

국방부 에쿠스, 장관 4명 모셨는데 3만km도 안 뛰어

중앙행정기관 전용차 100대 이모저모

한때 장관 전용차 목록을 휩쓸었던 에쿠스는 2015년 단종됐다. 장관들은 속속 후속 모델인 EQ900이나 G90으로 갈아탔다. 국방부는 예외였다. 2012년 8월 등록한 에쿠스 3.8을 지금도 전용차로 굴리고 있다. 중앙행정기관 중 최장 운행이다. 그사이 장관만 3번 바뀌었다.

운행 8년째인 지금 총 주행거리는 약 2만4900km다. 월 평균 300km도 안 된다. 현재 중고시장에 내놓으면 2000만원 가까이 받을 수 있는 수준이다. 국방부 근무지원단 관계자는 “주로 대내외 행사에 참석할 때 쓰기 때문에 많이 탈 일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다음으로 오래된 전용차는 식품의약품안전처 차관급 차량이다. 2013년 5월 등록한 체어맨으로, 총 주행거리는 20만3900km다.

평균 주행거리가 가장 긴 전용차는 국민권익위원회 행정심판부위원장(차관급)의 카니발 럭셔리다. 1월21일 등록한 지 한 달도 안 돼 11만3600km를 달렸다. 권익위 운영지원과 관계자는 “단기 렌터카라 주행거리가 쌓여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이 차량은 K7 하이브리드로 교체를 추진 중이라고 한다. 이를 빼면 월 평균 주행거리가 가장 긴 전용차는 행안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의 G90 3.3이다. 주행거리는 6800km. 서울-부산(약 400km)을 8번 왕복한 것보다 더 멀리 달렸다.

한편 조사 대상 전용차 100대 중 가장 흔한 모델은 준대형급인 그랜저로 20대인 것으로 확인됐다. 두 번째는 18대인 대형차 K9이다. 뒤를 이어 G80(15대), EQ900(13대), G90(10대), 체어맨(8대) 등의 순으로 집계됐다. 정부의 수소경제 정책에 발맞춘 수소전기차 넥쏘는 6대였다. 에쿠스는 국방부와 법제처, 두 곳에만 한 대씩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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