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부동산 공약 1호 ‘도시재생 뉴딜사업’ 실종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0.03.10 11:00
  • 호수 1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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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정책’은 없고 ‘아파트 대책’만 쏟아져

‘정책은 없고, 대책만 있다.’ 지난 2년 10개월여 동안 부동산과 관련해 문재인 정부가 해온 일을 복기해 보면 이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을 듯 싶다. ‘정치적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방책’이라는 뜻처럼 정책은 정부가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공격을 하는 것과 같다. 반면 대책은 상대적으로 수세적이다. 어떤 예상치 못한 일에 대처하는 수단이 대책이다. 그동안 널뛰는 서울․수도권 지역의 아파트값을 잡기 위해 손가락으로 다 셀 수 없을 만큼의 많은 관련 대책이 나왔다. 대통령이 천명한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 역시 사실은 수세적이다. 아파트값을 잡기 위해 계속해서 고강도 카드를 꺼내들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렇다면 원래문재인 정부가 2년 10개월 동안 하려고 했던 부동산 정책은 무엇일까. 문재인 정부가 그린 ‘큰 그림’은 무엇이었을까.

문 대통령이 당초 역점을 두고 추진하려 했던 부동산 정책의 핵심은 부동산 공약 1호로 내놓은 ‘도시재생 뉴딜사업’이다. ‘도시재생’과 ‘뉴딜’이라는 낯선 조합인 이 사업은 매년 10조원씩 총 5년간 50조원을 투입해 전국 500곳에 이르는 노후 주거지 환경을 개선하겠다는 목표를 가진 문재인 정부 주거 공약의 야심작이었다. 사업방식도 새로웠다. 기존의 재개발 사업처럼 개발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기존 주거지를 완전히 밀어버려 원주민의 상당수가 이전해야 하는 방식 대신, 주민과의 협의․참여를 통해 낡은 주택은 고치고 생활편의 시설은 확충해서 구도심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계획이 제시됐다. 포용·상생·공정·사람·생태 등 문재인 정부가 중점을 두고 있는 가치들과 연결된 정책이다.

처음에는 기대가 컸다. 국토교통부는 2018년 3월 5년간 추진 전략을 담은 ‘내 삶을 바꾸는 도시재생 뉴딜 로드맵’ 발표했다. ‘지역 공동체가 주도해 지속적으로 혁신하는 도시 조성, 살기 좋은 대한민국’을 비전으로 3대 추진전략과 5대 추진과제도 설정했다. 2017년 1차 도시재생뉴딜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매년 관련 사업이 추진됐다. 사업이 추진되는 곳으로 지목된 지역의 부동산값이 들썩거리기도 했다.

그런데 정권이 전환점을 돌고 만 3년차가 곧 다가오는 현재 도시재생 뉴딜사업은 잘 보이지 않는다. ‘내 삶을 바꾼다’는 슬로건에 걸맞지 않게 체감도도 상대적으로 낮다. 물론 정부로서는 아직 시간이 충분치 않았을 수 있다. 전문가들이 이미 수차례 밝혔듯 도시재생 사업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 손정원 런던대 도시계획학과 교수는 국토부가 2018년 개최한 도시재생 국제 콘퍼런스에서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도시재생 성공 사례 중에 초기에 희생을 치르지 않은 게 없다. 그 시기를 다 견디고, 지혜를 모두 모아야 할 정도로 어려운 작업”이라고 말했다. 같은 콘퍼런스에서 송준환 일본 야마구치대 교수는 “도시재생은 중간에 부작용도 많고 장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일반 건설사업과 다른 관리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석 서울시립대 교수는 최근 <경향신문> 기고를 통해 재생사업은 우리 안의 ‘개발병’을 치유해야 성공가능하다며 ‘천천히’ ‘차근차근’ 그리고 ‘오래오래’ 가도록 사업을 진행할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의 역점 사업인 도시재생 뉴딜사업의 씨앗이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와 마을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는 따져봐야 한다. 문 대통령도 지난 2월27일 국토부 업무보고에서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언급하면서 “올해는 구체적인 성과를 내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어 보인다는 지적이 많다. 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재생사업을 추진 중인 28개 지역 가운데 14개(50%) 지역이 민간투자 없이 공공 재원만으로 사업이 진행 중이다. 주민들이 정말 필요로 하는 도로, 공원, 주차장 같은 기반시설을 제대로 확충하려면 공공 재원 외에 민간부문의 참여와 투자가 필요할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이 말한 ‘구체적 성과’까지 연결되려면 아직 적잖은 과제가 남은 셈이다.

도시재생 뉴딜사업의 밑그림을 그린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저서 《부동산은 끝났다》에서 도시재생의 성패와 관련해 이렇게 밝혔다. “아무리 좋은 방식을 얘기하더라도 재정 지원 없이는 공염불이다. 공공의 지원이 아무 것도 없는 상황이라면, 누구든 개발이익 극대화에 나서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대안적 개발 방식, 주민 참여, 단계적이고 점진적인 개발, 이런 것들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공공이 믿음을 줘야 한다. ‘이만큼 돈을 확보해서, 이런 비전을 가지고, 이렇게 추진할 테니 체계적으로 가자’는 얘기를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도시재생 뉴딜사업에 상당한 예산을 투입했다. 눈에 띄는 성과가 잘 보이질 않고 체감도가 낮은 것은 그렇다면 공공이 충분한 믿음을 주지 못해서 일까, 비전이 못미더워서 일까, 추진방식이 체계적이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시간이 더 필요한 문제일까.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핵심 정책인 도시재생 뉴딜사업에 ‘대책’이 필요해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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