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다 금지법’으로 보는 스타트업 규제의 흑역사
  • 차여경 시사저널e. 기자 (chacha@sisajournal-e.com)
  • 승인 2020.03.18 10:00
  • 호수 1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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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 비용‧원격의료 등 규제 산적…“공급자 간 경쟁 허용해야 규제 개선”

스타트업 규제의 역사는 정보통신기술(ICT)의 시작과 맞물려 있다. 1990년대 토종 검색엔진이 등장했다. 제1 벤처붐도 함께 시작됐다. 하지만 인터넷 관련 법안은 전무했고, 오히려 규제가 없어 산업을 키우거나 보호할 수 없었다.

2010년대 유료 문자메시지의 틀을 깬 카카오톡이 등장했다. 일상을 혁신하겠다는 모바일 앱과 스타트업들도 나타났다. 제2 벤처붐이 태동한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법안이 스타트업 사업을 막거나 중단시키는 ‘규제 진입장벽’이 되고 있다.

규제는 어디에나 있다

사단법인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이하 코스포)은 2018년 2분기부터 2019년 4분기까지 총 39개 규제 개선 이슈를 공식 건의했다. 규제 개선을 건의한 산업은 모빌리티, 핀테크, 의료, 데이터, 유통, 숙박관광, O2O(온·오프라인 연계 서비스) 등이다. 개선된 규제는 11개며 28개 과제는 현재까지 미해결 상태다. 코스포 측은 “국회 법제화 지체, 업계와의 갈등, 소관부처의 개선 검토 및 판단 지체 등이 규제 미해결 사유”라고 설명했다.

모빌리티 모빌리티는 규제로 인한 서비스 중단이 가장 많은 산업이다. 택시업계와의 갈등 탓이다. 글로벌 승차공유 기업 우버도 2014년 택시단체의 시위와 검찰 기소로 사업을 중단했다. 국회는 이듬해 우버 금지법을 통과시켰다. 2015년 심야버스 공유 서비스 콜버스는 국토교통부 고시 변경으로 사업을 이어갈 수 없어 전세버스 예약 서비스로 탈바꿈했다. 지난해 7월 카풀 서비스를 운영하던 스타트업 풀러스도 규제 탓에 사업을 축소했다. 국회가 출퇴근 시간에만 카풀이 가능하도록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을 개정했기 때문이다.

타다와 차차 등 11~15인승 승합차 알선 플랫폼들은 새로운 규제를 마주했다. 박홍근 의원이 발의한 여객운수법 개정안은 11~15인승 차량을 빌릴 때 관광 목적으로 6시간 이상 사용하거나 대여·반납 장소가 공항 또는 항만일 때만 사업자의 운전자 알선을 허용하는 것이 골자다. 유예기간을 합쳐 1년6개월 뒤면 타다 서비스는 금지된다. 타다는 개정안에 따라 기여금을 내고 택시총량제를 따르면 영업할 수 있다. 그러나 스타트업들은 대부분 투자유치로 사업을 운영하기 때문에 1대당 6000만~7000만원대 택시면허를 구매할 수 있는 자본이 부족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전동킥보드 등 1인 퍼스널 모빌리티에 대한 규제도 있다. 현행법은 전동킥보드 등 퍼스널 모빌리티를 원동기로 정의한다. 주행 안전 기준, 제품 인증 등 퍼스널 모빌리티에 대한 규제 제반도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 퍼스널 모빌리티 안전 규정을 포함한 도로교통법 개정안은 아직도 국회 계류 중이다.

핀테크·원격의료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은행, 공공기관, 언론사 홈페이지 사이버 테러로 생긴 ‘망 분리’ 규제의 경우 핀테크 스타트업과 원격근무 플랫폼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전자금융법에 따르면 내부통신망과 연결된 내부 업무용 시스템은 인터넷 등 외부통신망과 아예 분리된다. 그러나 2020년 기준 보안기술이나 데이터 기술이 발달된 가운데 전자금융사업자 일괄 망 분리 적용은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핀테크 스타트업의 또 다른 장애물이었던 데이터3법(개인정보보호법·신용정보법·정보통신망법)은 오랜 숙원 끝에 국회를 통과했다.

원격의료의 경우 정보통신기술(ICT)산업과 의료업계의 첨예한 논쟁이 오랜 기간 지속되고 있다. 의사가 ICT 진단 시스템을 활용해 환자를 진단, 처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은 2010년 이후 단 한 번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피해로 일부 지역의 대형병원이 의료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원격의료 실증특례를 시행 중이다.

콘텐츠·O2O플랫폼 국내 OTT(Over The Top·온라인동영상서비스) 왓챠플레이는 ‘망 비용’이라는 규제를 만났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상호접속고시 때문이다. 상호접속고시는 콘텐츠 제공자와 통신사업자가 데이터를 주고받을 때 돈을 누가 낼지 결정해 놓은 고시다. 2016년 고시가 상호정산 방식으로 바뀌면서 통신사업자들이 더 많은 데이터 이용료를 콘텐츠 제공자들에게 요구했다. 페이스북, 넷플릭스 등 외국계 기업은 비싼 망 비용을 피하기 위해 서버를 외국으로 옮겼다. 하지만 왓챠플레이 같은 국내 콘텐츠 기업들은 비싼 망 비용을 떠안게 됐다.

빈집 재생 숙박 사업을 하는 스타트업들은 되레 법령의 부재로 영업정지 등 행정처분을 받고 있다. 빈집 재생 숙박은 빈집 소유주가 유휴공간을 무상 제공하고 중개 플랫폼과 수익을 공유하는 사업이다. 그러나 현재 농림축산식품부는 단독주택 재생 모델은 건축법상 숙박시설로 분류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숙박업 승인을 금지하고 있다.

1월9일 국회 본회의에서 개인정보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이 통과됐다. ⓒ연합뉴스
1월9일 국회 본회의에서 개인정보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이 통과됐다. ⓒ연합뉴스

“규제 샌드박스 법의 맹점은 혁신성”

정부는 지난해부터 스타트업 규제를 해결하기 위해 ‘ICT 규제 샌드박스’를 시작했다. 규제 샌드박스는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가 출시될 때 일정 기간 동안 기존 규제를 면제·유예시켜주는 제도다. 그러나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혁신성을 평가하는 기준이 애매하고 입법 과정에서 정치적 갈등이 생기면서 규제 샌드박스 도입 취지가 훼손됐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규제 샌드박스 평가 기준을 바꾸고 서비스 공급자 간 경쟁을 허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태언 법무법인 린 파트너변호사는 “규제 샌드박스 법의 맹점은 혁신성이다. 규제 샌드박스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공무원과 민간 위원들에게 혁신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네이버와 카카오톡이 처음 등장했을 때 혁신적인 서비스였다. 수많은 사람이 서비스를 이용해 공감을 얻으면서 혁신이 만들어진 것”이라며 “혁신은 검증할 수 없다. 규제 샌드박스는 기존 이해관계자와 법 제도를 떠나 다양한 사업을 실증특례로 임시 허가해야 한다. 혁신은 결과로 나온다”고 말했다.

구 변호사는 이어 “소비자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공급자 간 경쟁을 허용해야 한다. 택시와 원격의료 사업이 그동안 혁신하지 못했던 이유는 경쟁 상대가  없었기 때문”이라며 “규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관치에서 벗어나 국민이 선택할 수 있는 자치가 돼야 한다. 닫힌 규제가 닫힌 시장을 만든다. 사회적 대타협은 강요다. 국민이 새로운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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