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열풍] 트로트의 ‘봄’, 산업 전반을 움직이다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0.03.15 12:00
  • 호수 1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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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업계·음원 사이트 판도까지 바꿔

트로트의 ‘생명력’을 논할 때가 있었다. 유구한 역사 속에서 한(恨)의 정서와 맥락을 같이해 온 장르로 표현돼 왔고, 전성기가 지나면서는 위기 속에서 변화하며 생명을 이어 온 하나의 대중음악 영역 정도로 여겨졌다. 어쩌면 비주류, 그리고 중장년층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트로트가 제대로 ‘봄’을 맞이했다. 트로트가 다시 피어나고 있다. 단순히 트로트 붐에 그치지 않는다. 음원 사이트는 당연하거니와, 공연업계와 광고계, 지역경제까지 산업 전반을 움직이는 힘을 발휘하고 있는 대중음악 장르. 그것이 바로 지금의 트로트다.

지하철 광고판에 임영웅과 이찬원이 등장했다. 그동안 아이돌 가수의 전유물로만 여겨지던 지하철 광고판에 TV조선 트로트 예능 《미스터트롯》 출연자들이 등장했다는 사실은, 트로트의 높은 인기를 프로그램 밖의 다양한 곳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는 방증이었다. 일명 ‘트롯돌’이라는 명칭까지 생겨났고, 인기 트로트 가수와 노래를 찾아보는 사람도 크게 늘었다. 이노션 월드와이드의 빅데이터 분석 결과에 따르면 트로트 관련 검색량은 2018년 3만7230건에서 2019년 37만9583건으로 10배 가까이 급증했다.

보해양조는 지난해 말 잎새주 모델로 송가인을 발탁하고 송가인의 고향 진도를 찾았다. 잎새주의 지난 1월 매출은 전년 동월 대비 20% 증가했다. ⓒ보해양조 제공
보해양조는 지난해 말 잎새주 모델로 송가인을 발탁하고 송가인의 고향 진도를 찾았다. 잎새주의 지난 1월 매출은 전년 동월 대비 20% 증가했다. ⓒ보해양조 제공

광고계, 트로트를 입다

트로트 인기의 정점에 있는 《미스트롯》 ‘진’ 송가인은 현재 광고계의 블루칩이다. TV 광고에서도 송가인의 구성진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삼겹살데이로 불리는 3월3일부터, 송가인은 ‘한돈송’을 부르면서 한돈 홍보에 나서고 있다. 보해양조는 지난 연말 소주 ‘잎새주’의 광고 모델로 송가인을 발탁했다. 보해양조는 “천부적인 재능과 피나는 노력으로 인기 가수 반열에 오른 송가인씨와 69년 동안 좋은 술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온 보해양조의 철학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그렇게 올해 초부터 잎새주 병 뒷면에는 한복을 입은 송가인 사진이 등장했다.

‘송가인 효과’는 즉각 나타나고 있다. 보해양조에 따르면 송가인을 잎새주 광고 모델로 기용한 후 잎새주의 1월 매출은 전년 동월 대비 20%가량 증가했다. 지역 소주 특성상 잎새주의 출고 물량 96%가 광주·전남에서 판매되고 있는데, 다른 지역에서도 잎새주에 대한 주문과 관심이 늘고 있다는 후문이다. 

빙그레는 최근 아이스크림 제품 슈퍼콘의 새 모델로 유산슬을 선정했다. 지난해 손흥민을 모델로 일렉트로닉 음악을 사용해 광고를 만들었던 빙그레는 최근 트로트 대세를 따라 광고 음악을 트로트로 하기로 결정했다. 일명 ‘유벤져스’라 불리는 ‘박토벤’과 ‘정차르트’ ‘작신’이 유산슬이 부를 ‘슈퍼콘송’을 만드는 영상이 3월11일 유튜브를 통해 공개되면서 트로트 슈퍼콘송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공연 연기에도 기대 모아

중장년층이 보내는 당연한 사랑에, 트로트 예능을 타고 진입한 2030세대의 인기까지 업었다. 이수진 이노션 데이터커맨드팀장은 “과거 중장년층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트로트가 예능과 즐거움, 다양한 플랫폼을 기반으로 모든 세대가 공감하고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 콘텐츠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며 “앞으로도 대중의 관심이 지속되며 확장성 있는 콘텐츠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공연업계 역시 트로트 붐이다. 《미스터트롯》 콘서트의 인기를 보더라도 그렇다. 비록 코로나19로 인해 공연 시작 날짜가 확정되지 않았고 일부 티켓 오픈 일정은 당분간 연기됐지만, 공연을 기다리는 팬들의 열기는 대단하다. 《미스터트롯》 서울 콘서트는 티켓 오픈 10분 만에 2만 석 전석이 매진됐다.

이 중 20대 예매자는 43.3%에 달했다. 자식들이 대신 예매 경쟁에 나선 경우도 있겠지만, 2019년 판매된 콘서트 티켓 전체와 비교할 때 20대 예매자 평균 비율(42%)보다 높은 수치였다. 접속자 수가 16만 명까지 몰려 일시적으로 서버가 마비될 정도로 콘서트 예매는 뜨거운 인기였다. 수원, 울산, 강릉, 광주, 청주 5곳의 전국 투어 티켓 역시 오픈과 함께 동났다.

국내 최대 티켓 예매 사이트 인터파크가 발표한 ‘2019년 공연 결산’에 따르면 2019년 전체 공연 티켓 판매금액(5276억원)은 전년(5441억원)보다 3% 줄었지만, 콘서트 판매 금액은 전년 대비 10.7% 증가한 2474억원으로 나타났다. 인터파크는 콘서트 분야 성장과 관련해 “트로트 장르가 부활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한 것이 콘서트 호황 배경 중 하나”라고 설명한 바 있다.

특히 중장년층의 음악 소비가 활발해지면서 트로트 공연 시장은 크게 확장됐다는 평가다. 대표적 베이비부머 세대를 뜻하는 58년생이자 활기찬 인생을 살아가는 신노년층, 일명 ‘오팔(Old People with Active Lives) 세대’가 주요 문화 콘텐츠 소비층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트렌드 코리아 2020》을 통해 분석한 내용에 따르면 이들은 탄탄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나를 위한 소비’를 아끼지 않는 특성을 보이며, 주로 문화 측면에서 활발한 소비력을 과시한다. 이제 중장년층이 스트리밍을 하고, 응원봉과 슬로건을 들고 응원하는 모습을 찾아보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당연히 커진, 음원 사이트의 ‘트로트 입지’

SBS 예능 《트롯신이 떴다》, MBC에브리원의 《나는 트로트 가수다》 등 트로트 장르를 활용한 프로그램들도 ‘트로트 특수’를 누리고 있다. 트로트 뮤지컬도 등장했다. 국내 최초 트로트 뮤지컬 《트롯연가》는 쇠락한 클럽을 무대로 ‘천하제일가왕전’에 출전하는 가수의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배우 김승현과 가수 홍경민, 방송인 홍록기를 비롯해 《미스트롯》 출신 정다경과 《미스터트롯》 출신 영기 등 가수들을 섭외하며 화려한 등장을 예고했다. 3월 중순으로 예정된 공연은 코로나19에 대한 우려와 관객 보호 차원에서 3월말로 연기됐지만, 예매를 마친 트로트 팬들의 기대를 받고 있다.

ⓒ시사저널 미술팀
ⓒ시사저널 미술팀

음원 사이트에서 트로트를 듣는 사람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특히 인기를 견인하고 있는 것은 《미스터트롯》이다. 멜론과 벅스는 ‘성인가요 차트’를 운영하고 있는데, 지난 1월 《미스터트롯》 예선곡 베스트 앨범이 발매된 직후, 앨범 수록곡 32곡 중 무려 30곡이 멜론 성인가요 차트에 올랐다. 트로트는 일부 음원 사이트의 구조도 바꿨다. 지니뮤직은 지난 1월 아예 ‘트로트 차트’라는 이름으로 애플리케이션에 차트를 신설했다. ‘트로트 전성시대’ 코너를 마련해 매주 진행되는 트로트 방송 프로그램 음악을 소개하고, 트로트 트렌드를 짚어주는 음악 칼럼도 게재할 계획이다.

지니뮤직이 자체 분석한 결과 지난해 사이트 이용자가 트로트 음악을 스트리밍한 비율은 2018년과 비교해 74%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큰 인기를 끌었던 《미스트롯》과 트로트 가수 유산슬의 등장이 스트리밍 비율에도 큰 영향을 줬다는 평가다. 특히 트로트 음원 소비율은 《미스트롯》이 상승세를 타던 4월(71%), 5월(108%), 6월(100%)에 급격하게 증가했다. 또 유산슬이 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 ‘뽕포유’를 통해 데뷔한 10월(69%)과 11월(70%), 12월(71%)에 다시 증가세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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