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코로나19 이후
  • 소종섭 편집국장 (jongseop1@naver.com)
  • 승인 2020.03.16 09:00
  • 호수 1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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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것을 즐깁니다. 습관입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산 넘고 물 건너 십 리 길을 걸어 다녔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거나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아이들이 그렇게 부러웠습니다. 최근에는 서울 시내를 많이 걷습니다. 광화문이나 충무로에서 저녁을 한 뒤 집까지 걸어가곤 합니다. 걸어서 30여 분 거리인 출퇴근 때도 웬만하면 걸어 다닙니다. 건강에도 좋고 코로나19 감염도 피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것저것 떠나 그냥 걷는 게 좋습니다.

걷다 보면 소소한 것들이 많이 보입니다. 푹 꺼진 보도, 길가에 세워져 있는 자전거, 횡단보도를 침범해 정차 중인 택시, 공원 벤치에서 쉬는 어르신들…. 애완견을 데리고 다니는 사람들은 또 왜 이리 많은지. 지하철이나 자가용, 버스를 이용할 때는 잘 보이지 않던 것들입니다. 걷다가 멈춰 서서 이것저것 지켜보는 것도 작은 재미입니다. 그중에서도 제일 흥미로운 것은 역시 사람 구경이지요. 오가며 스쳐가는 많은 사람들은 순간일지라도 그만큼의 생각거리를 던져줍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확산하는 가운데, 30일 오후 서울역 대합실을 지나는 시민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확산하는 가운데, 30일 오후 서울역 대합실을 지나는 시민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요즘에 부쩍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두 가지입니다. 마스크의 물결입니다. 거리에서도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입니다. 밀폐된 공간이 아니면 굳이 마스크를 안 써도 된다고 하지만 쓴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이미 불안과 공포가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다른 하나는 손님이 없는 음식점들과 매물로 나온 점포들입니다. 걸으면서 언뜻언뜻 바라본 길가 음식점들의 빈자리가 눈에 들어옵니다. 저녁 먹으러 들어간 분식집에는 다 먹고 나올 때까지 손님이 우리 일행뿐입니다. 주인 아주머니는 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렵다며 연신 불만을 토해 냅니다. 긴 한숨소리가 제 마음에 스며듭니다.

지금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본격적인 코로나19 여파는 여름을 지나면서 닥쳐올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3월11일 현재 한국인의 입국을 제한한 나라가 117개 국에 달합니다. 국민 자존감이 상처를 입었습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세계적인 경기침체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도 심상치 않습니다. 방역 대응을 잘했느니 못했느니 갑론을박할 때가 아닙니다. 장기전입니다. 국민이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시간문제지 극복합니다. ‘코로나 이후’가 중요합니다. 어쩌면 더 큰 위기에 직면할 수도 있습니다. 무역으로 먹고사는 우리 경제가 멍들어가고 있는 양상입니다. 선제적으로 정부 차원의 대응팀을 가동할 필요가 있습니다. 11조7000억원 규모의 추경안은 ‘임시 대응’ 정도일 것입니다. 훨씬 더 큰 자금이 요구될 가능성이 큽니다.

우울하고 답답한 나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기댈 곳 없는 시대, 노래로 마음을 달래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일까요. 이번 주 결승전을 진행한 TV조선 《미스터트롯》은 종편 사상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습니다. 불안한 단절의 시대에 왜 트로트가 유행하는 것일까요. 커버스토리에서 만나 보시죠. 건강에 유의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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